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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IS h-well 문학콩쿠르
내 생애 최고의 작품

어렵고 힘들어도 뿌듯한 그 무언가를 성취한 기억은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이 나기 마련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그 무엇은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바꿔준다. 내 삶을 아름답게 바꿔준 ‘내 생애 최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리 편집실

 
삼세판 만에 따낸
국민고시
이선기(서울시 구로구)

“사법고시보다 더 어려운 공인중개사 합격률 0.9%” 지난 연말에 발표한 15회 공인중개사를 두고 어느 일간지가 뽑은 제목이다. 분노한 수험생들이 건교부 건물을 점거하자, 장관께서는 시험출제기관을 교체하고 부랴부랴 5월 22일에 추가 시험을 치른다는 공고까지 냈다.
시작은 간단했다. 덤이라고 생각하며 다니던 회사를 M&A시키고 지루함을 이기려고 서점에 들렀다가 남녀노소 누구나 합격할 수 있다는 중개사 수험서를 만나게 되었다. 기출문제를 보며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여러 수험서 중에서 1차 요약집을 샀다. 두 달간 2백 여 페이지의 책을 운전면허학과시험 공부하듯이 하니 더 이상 할게 없었다. 다시 2차 서적을 구입하여 한 달을 더 공부한 후 응시했으나 개론과 민법에서 각각 한 문제씩이 모자라 불합격했다. 작년 6월, 다시 백수가 되면서 학원에서 실시하는 설명회에 가 보고서야 책 선정이 잘못되었음을 알고는 기본서 5권을 구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5개월을 공부한 뒤,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며 시험지를 받았으나 문장은 너무 길었고 보도 듣지도 못한 문제가 많아 머리가 멍해지며 분별력까지 잃었다.

시험장을 나서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다리가 후들거려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전철역까지 갔다.
다음 날부터 신문과 인터넷에서는 전면무효를 외치는 한편, 과목당 20점의 가산을 요구했다. 추가시험을 위하여 5시 반에는 책상에 앉는 나를 보며 처자식이 ‘그러다가 수석 하겠어요.’ 라며 진담인지 놀림인지 한마디씩 했다. 어쨌든, 내년이 환갑인 나의 끈기와 집념만은 알아주는 눈치다.
어느 날 처에게 “저번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심심해서 어쩔 뻔했지.”라니 눈이 휘둥그래진다. 이건 빈말도 거짓말도 아니다. 공부가 내게는 딱이었다. 이번 준비에는 1원도 투자하지 않았다. 가슴조리며 펼쳐본 문제는 평이한데다, 10분씩 시간이 늘어나 여유가 있었다. 결과는 합격. 한번에 딸 수 있는 평이한 자격증을 3번 만에야 따고보니 젊음이 부러웠다.
“노느니 염불한다”는 식으로 한 공부지만, 3년이라는 세월과 바꾼 종이 한 장-마누라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해방증명서일까? 무료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탈주증명서일까?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용돈이나 만질 수 있는 복덕방이라도 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