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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정리 김희란 기자
2015년 
건강검진 체험 수기 
공모 최우수상 영유아 건강검진으로 
내 아이의 자폐를 알다 글 허현정

준비 없이 첫 아이와 마주하다
2007년 4월 23일, 예정일이 가까워질 때까지 아기가 자리를 바로 못 잡아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오전 일찍 수술했지만 체온 조절로 오후 5시쯤 돼서야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새까맣고 다부지게 생긴 민혁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민혁이는 백일도 되기 전에 뒤집었고 빨리 앉았으며 기는 단계를 잠깐 거치고 만 10개월이 지났을 때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신체발달이 이리 빠른데 다른 것도 당연히 빠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민혁이는 또래 아이보다 느리게 자라는 듯했다. 15개월이 됐는데도 인사 모방이나 도리도리, 짝짜꿍, 곤지곤지 등을 따라 하지 않았고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했다. 발달장애? 자폐? 뭘 검색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민혁이의 행동과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조금 늦을 뿐이라며 위로했고, 민혁이는 자동차 바퀴를 굴리며 시간을 보내고 엄마인 나와도 소통하려 하지 않은 채 몇 개월이 흘렀다. 민혁이가 태어난 해인 2007년 11월부터 ‘영유아 건강검진’이라는 제도가 생겼는데 민혁이는 제2차 때부터 검진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18개월이 됐을 때 제3차 영유아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예약하고 문진표를 받아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문진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다섯 항목 중 ‘언어’와 ‘사회성’에 문제가 있었다. ‘언어’는 ‘0점’, ‘사회성’은 ‘평균 미달’이었다. 몇 달 전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수치로 확인할 수 없어 막연히 답답하기만 했는데 내 아이가 또래보다 느림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작성한 문진표를 들고 다니는 소아과를 갔다. 그동안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소견서를 써주며 소아정신과로 가라고 했다. 자폐 성향이 있고 장애등록을 해서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자폐? 자폐가 뭐지? 뭐더라?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혹시 그거?’
내 아이가 자폐라니 믿을 수 없어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형적인 자폐는 아니지만 치료를 빨리 시작하는 게 예후가 좋다고 했다. 결국 민혁이는 19개월부터 엄마 등에 업혀 병원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동생을 낳아줘야겠다
제3차 영유아 건강검진 이후 민혁이는 치료를 시작했고 두 돌쯤 되었을 때 동생이 있으면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엄마의 조력자로도 동생이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물론 동생도 민혁이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임신 동안 계속 했다. 막상 출산이 다가오자 만약 그렇다 해도 그건 부모의 몫이라 여기기로 했다.
첫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아서 둘째는 자연분만이 위험했지만 빨리 회복해서 민혁이 치료하러 다녀야 했기에 2010년 1월 18일 민혁이가 33개월일 때 자연분만으로 민준이를 낳았다.
민준이는 무럭무럭 자라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주었다. 돌이 다가올 무렵 돌 사진을 찍으며 민혁이 장애복지카드를 만드는 데 쓰일 증명사진도 덤으로 찍었다. 그렇게 민준이가 돌이 되고 민혁이가 5살이 되던 겨울, 민혁이에게 ‘장애인’ 타이틀이 붙었다. 복지카드를 신청하러 동사무소에 간 날, 창피한지도 모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고 아리다.


민준이도 치료를 시작하다
민혁이와 세 살 차이 나는 민준이는 총 7차까지 영유아 건강검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구강검진도 따로 2회 추가되었다. 첫 아이 때 영유아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민준이도 꼬박꼬박 검진했다. 형에게 말을 배울 수 없을 것 같아 일찍 어린이 집에 보냈지만 말이 늘지 않는 민준이가 걱정스러웠다. 제3차 영유아 건강검진 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