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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은 병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만으로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성인의 대략 3분의 1가량이 비만으로 분류되고 있다. 즉, 비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가 된 셈이다. 특히 비만인 사람은 심혈관계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 등 다른 합병증 발병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사회가 비만해지면 사회의 건강 상태 역시 그만큼 나빠진다.
탁월한 조직인 지방, 문제는 ‘지나치게’ 많이 쌓인 지방
비만은 비만 자체로도 질병으로 간주된다. 비만인은 제2형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관상동맥 질환, 간질환, 담낭 질환, 골관절염, 수면 무호흡증, 일부 암 등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과도한 체중 자체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고 비만에 의한 대사 이상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의 비만도가 높아지면 이들 질병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들의 치료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 역시 증가한다.
그렇다면 비만을 유발하는 지방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 많은 매체에서 비만을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몸 안에 쌓 인 지방은 나쁜 것’이라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지만, 지방은 인체에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많이 쌓인 지방이다. 동물에 게 지방 조직은 여러 면에서 아주 탁월한 조직이다. 지방 조직은 단위 부피나 무게당 저장할 수 있는 열량이 아주 높은 효율적인 에너지 저장고이다. 또 부드럽기 때문에 어지간히 많이 늘어나지 않는한 동물의 행동에 장애를 주지 않는다. 피하지방은 열 전도율이 낮아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충격을 흡수함으로써 내부 장기를 보호한다. 생존의 측면과 에너지 저장고 역할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조직이 지방 조직이다.
뚱뚱해진 현대 인류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진화 현상
뚱뚱해지는 것은 진화의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인구 집단이 기아에 허덕이지 않고 먹을게 남아 도는 상황이 된 것은 불과 몇 십 년만의 일이다. 수만 년 동안 인류는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사람의 몸은 먹을 것이 보이면 식욕을 느끼고, 먹을 것이 있을 때 이것을 몸 안에 집어 넣고, 만일을 대비해서 남은 열량을 저장하고, 같은 열량으로도 많은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열효율이 높아지는 상태로 진화했다. 먹을 것이 많아지고 덜 움직여도 생존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뚱뚱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비만은 인간의 유전자와 풍요롭고 편리한 사회 환경으로의 급격한 변화가 결합된 현상이고, 체중을 감량하려는 노력은 진화를 거스르는 부자연스러운 행위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만큼 비만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비만으로 가는 길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만 예방은 현대인의 평생 숙제와도 같다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한 것은 비만 또한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다. 비만이 불치의 병이 아니고 금세 되돌릴 수 없는 합병증을 유발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비만인들이 자신이 비만해져 가고 있는 과정에서 바로 대응하지 않고 더 심각해지기 전에 예방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비만에서 예방이 중요한 이유는 비만의 치료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체중 감량은 유전적 진화과정을 거스르는 행위여서 치료가 쉽지 않다. 또, 한번 비만해지면 정상일 때에 비해서 피하지방이 많아진다. 그러면 체온 유지가 훨씬 쉽고 에너지 효율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기초대사량이 낮아지기 때문에, 체중 감량을 위해서 훨씬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결국, 비만이 되기 이전에 건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비만이 된 상태에서 체중을 감량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체중 조절은 평생의 문제이다. 나이가 적을 때에는 체지방률이 낮고 근육량이 많다. 또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쉽게 비만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서 활동량이 적어져 근육량 역시 적어지는데도 열량 섭취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기 때문에 체중이 점차 늘어난다. 특히 직업이 바뀌거나 결혼과 출산 등 삶에서 커다란 생활 변화가 일어날 때 체중이 크게 늘어나곤 한다. 단기간에 체중을 빼 보려고만 하지 말고 삶의 전 기간에서, 특히 나이가 점점 많아질수록 활동량을 유지하고 필요 없는 열량 섭취를 줄이는 데 신경 써야만 비만을 평생 계속해서 예방할 수 있다.
비만 예방을 위해서는 정책적 노력도 필요
비만을 예방하는 데 있어서,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정책적 노력 역시 열량 섭취와 열량 소모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열량 섭취를 늘리지 않기 위해서, 열량이 적고 영양소가 골고루 함유된 건강한 음식에 대한 가격 장벽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반면, 열량이 많고 영양소가 적은 건강에 나쁜 음식에 대해서는 구성원들의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 급식이나 규모가 큰 음식 사업장과 같이 사회 구성원의 영향력이 큰 곳에서부터 건강한 음식을 취급하는 것이 좋다. 건강에 나쁜 음식을 취급하는 것은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도록 정책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많은 음식의 영양 정보를 표시하도록 하여 개인이 음식을 구매할 때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도록 돕는 것 역시 좋은 정책의 한 예이다. 외식업계에도 판매 음식의 영양 정보를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
열량의 소비, 즉 활동량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는 정책도 다양하게 시도될 수 있다. 비만인들에게 운동을 권유하면 가장 많은 반응은 “시간이 없어서 하기 어렵다”라는 말을 한다. 다양한 종류의 재미있는 운동 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다면, 비만인의 운동에 대한 장벽을 낮출 수 있다. 더 나아가 신도시를 개발하는 단계나 구도심을 재개발하는 경우, 도시 계획이나 마을 설계에서 사람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구성원들이 활동량을 늘리도록 장려하는 방법을 고안한다면 더욱 건강한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아 비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비만 예방 정책에서 소아 비만을 주목할 만하다. 소아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비만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 활동량과 운동량을 높이기 위한 교과과정, 건강한 생활 습관에 대한 교육 등 다양한 정책들을 실현하여 성인 비만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다.
비만 치료의 첫 걸음은 명확한 동기 부여
체중 감량의 어려운 길에 들어선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왜 이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맵시 나는 몸매를 가지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자신감을 찾기 위해서 등 사람마다 그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단순한 체중 감량이 목표가 아니라, 체중 감량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결정하고, 중도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이를 상기시켜 자신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의 성공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를 믿는만큼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거에 몇 번 실패한 적이 있더라도,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체중 감량의 길에 들어서자. 그러자면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과거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체중 감량을 결심했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꾸준히 바꿀 것이라고 결심한다. ‘한 달에 10kg씩 세 달 동안 감량하자’라는 식의 단기간 체중 감량은, 하기도 어렵지만 어렵사리 체중을 줄였다 하더라도 금세 요요현상을 겪게 된다. 주위에 간식을 항상 비치하거나 TV시청 시 계속 음식을 먹는 습관 등 내 삶에 건강하지 않은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장기적인 건강 유지를 위해 정말 해야 할 일이다. 몇 달 하고 말 다이어트가 아니라 평생 유지할 건강한 식단을 찾는 연습도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간단한 다이어트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자기 관찰을 통해서 발견한 자신의 식습관의 문제점을 몇 가지만이라도 바꾸어서 그 삶을 지속한다면 조만간 체중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재미있는 운동을 찾는 것도 방법. 체중 감량을 위해서 억지로 하는 운동보다는, 오랫동안 자주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운동이 더 낫다. 저항성 운동(근력 운동)을 통해 근육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기초대사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당장의 체중 감량은 눈에 띄지 않더라도 장기간의 체중 감량에 도움을 주고 빠진 체중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볼링, 골프, 싸이클, 인라인 스케이트 등과 같은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이 복합된 재미있는 운동을 찾아보라.
비만을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이 비만 치료의 시작
비만 치료를 위한 정책적인 노력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비만을 만성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선언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만성 질병으로 대하는 실제적인 정책이 필요한데, 아주 작은 부분부터라도 비만에 대한 치료 행위에 의료 보험 급여를 시행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현재 비만에 관한 모든 의료 행위는 의료보험의 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다. 비만으로 인해 여러 질병이 유발된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는데, 비만으로 유발된 질병의 치료만 급여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 뒤늦은 조치이다. 시작 단계에서는 체질량 지수 40kg/m² 이상의 초고도 비만을 먼저 급여 대상으로 시작하고, 비만 치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식사 요법과 운동 요법을 인정비급여(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인정한 급여항목에 해당하지 아니한 것)로 인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초고도 비만에 대한 수술적 요법은 체중 감량에 대한 효과 및 합병증 치료에 대한 효과가 뚜렷하다. 치료의 효과와 그 긍정적인 여파가 뚜렷한 치료 방법에 대한 공공의료 지원은 타당하다. 하지만 재원은 한계가 있고 지원해야 할 의료 부분은 아주 많기 때문에, 연간 지원액이나 지원 수술 건수를 정해놓고 수혜 대상자의 선정 작업과 이들의 추적 관리를 민간 전문 단체에 맡겨 운영해 나간다면, 시작 단계에서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투입한 비용의 효용성 평가도 가능하다.
비만은 극복이 어려운 질환이다. 단기적 노력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다. 예방과 치료 모두에 있어서 평생 지속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법들을 찾아서 실행해야 한다. 비만에 대해 사회 환경의 영향도 크기 때문에, 예방과 치료를 개인의 노력에만 맡기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앞으로도 다양한 정책적 아이디어가 논의되고 시행된다면 우리나라의 비만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경곤 교수(가천의대 가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