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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is 행복한 만남
SoS! 노인장기요양보험

은영 씨는 연신 손부채를 부쳤다. 같은 골목을 서너 번쯤 왔다 갔다 했더니 목이 마르고 다리도 후들거렸다.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359번지. 아무리 봐도 같은 번지다. 그런데 출입구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이 일대 다세대 주택들은 대개 구조가 비슷하다. 골목 양쪽으로 10여 개의 문이 늘어서 있고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나 방으로 이어진다. 문마다 번지가 적혀있는데, 희한하게도 358번지에서 360번지로 바로 넘어갔다. 359번지는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어서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남은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마음이 바빴다. 이경(소설가) 일러스트 성영란

파킨슨병 어르신을 찾아가는 길
은영 씨는 장기요양보험 담당 직원이다. 장기요양이 필요한 어르신이나 가족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신청을 하면 직접 댁으로 찾아가 ‘인정’조사를 하게 된다. 어르신이 어느 정도 불편하신지, 실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 찾아가는 집은 파킨슨병을 오래 앓고 계신 할아버지다. 거동이 몹시 불편하신 상태라고 했다. 올해 71세로, 같이 살던 아들이 직장 때문에 부산으로 가는 바람에 서울에 혼자 남게 됐다고 했다.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게 되면 등급에 따라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방문 서비스도 신청할 수 있다. 장기요양요원이 집으로 방문해 목욕을 해드리거나, 일시 보호를 해 드리기도 한다. 아들은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걱정돼 장기요양급여를 신청했다고 했다.
은영 씨는 지나온 골목을 찬찬히 되돌아봤다. 골목 밖으로 작은 항아리가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장 항아리였다. 예전엔 된장이며 간장을 항아리에 넉넉하게 담아 일 년 내내 두고 먹었을 테지만, 장 담을 사람도 없고, 장독대도 없어지면 하나둘 대문 밖에 버려지다시피 한다. 젊은 사람들이야 애초에 항아리 같은 건 장만하지 않으니 어르신들 살림살이가 틀림없다. 혹시나 싶어 다가가자 거짓말처럼 문이 나타났다. 할아버지의 집은 골목 중간에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쯤에 있었다. 골목에서는 보이지 않고 계단에 진입해야 문이 보이는 구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