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시절, 아끼는 후임병으로부터 한 여자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렇게 춥다는 군대의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저에게 생긴 것입니다. 홀로 외롭게 겨울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기뻤습니다. 소개를 받은 그녀와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서로 생각이 잘 통했고, 서로에 대해 호감이 생겨 휴가를 나가 복귀 전날까지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다음 휴가에 만남을 약속했고, 저는 그때 고백을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복귀 후에도 서로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다음 휴가를 손꼽아 기다렸고, 긴 기다림 끝에 특별 포상 휴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쁜 소식을 그녀에게 알리고 만날 약속 날짜를 정했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이틀 전. 부대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오면 낭만적이고 아름답다고 좋아하는데 군인들에게 눈은 그냥 눈일 뿐 기쁘지 않습니다. 눈이 내리면 제설 작업이란 고행의 시간을 며칠에서 몇 주 동안 해야 합니다. ‘하필이면 휴가 이틀 전에…’ 눈이 너무도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눈은 하염없이 내렸습니다. 그녀와의 약속을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하던 저는 눈이 그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눈은 멈추지 않았고, 폭설로 인해 부대는 몇 주간 고립이 되어 휴가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몇 주 후, 저는 그녀에게 ‘연락도 없이 약속을 어긴 못된 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잘 설명해달라고 후임병에게 부탁했지만, 눈 때문에 휴가를 못 나온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그녀의 싸늘한 대답만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그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때는 눈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나니, 한편으로는 눈 때문에 엇갈린 그 사랑이 고맙기도 합니다. 그 눈 때문에 지금의 아름답고 착한 아내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