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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IS h-well 문학콩쿠르
까치까치 설날이 왔어요

어린시절 설날은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세뱃돈 때문이었겠지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세뱃돈보다 가족, 친척들이 모여 왁자지껄 정을 나누던 그 따스함이 더욱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모두의 마음속에 하나쯤 있는 설날에 대한 추억을 나눠봅니다. 정리 김희란 기자

 
종합선물세트의
추억
김미옥(인천시 계양구)

제 고향은 경상북도 봉화,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곳입니다. 우리 형제는 모두 여덟 명.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언니 오빠들은 중학교만 졸업하고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나야 했습니다. 저와 동생들은 설날과 추석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지요. 그날은 언니와 오빠들이 오는 날이었으니까요.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설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무섭게 신작로로 언니와 오빠들을 마중하러 나갔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다섯 차례밖에 안 다니는 버스가 네 대나 지나고… 하필 날은 또 얼마나 추운지, 온몸이 꽁꽁 얼어붙을 지경이었지요. 날은 저물고 급기야 나이 어린 막냇동생은 집에 가자며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막차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막차가 도착했고 우린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언니 오빠들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끝내 언니와 오빠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울다 지친 막내를 들쳐 업고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 춥던지요? 입 속까지 얼어 말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저보다 더 실망했을 동생들을 다독이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 그런데! 집 근처에 이르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토록 기다리던 큰언니였습니다. 그 해 설날 언니와 오빠들은 이웃동네 친구들과 승합차를 얻어 타고 온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 줄 모르고 버스정류장에서 한나절이 넘도록 떨고 있었던 겁니다. 반가운 큰언니의 목소리를 들은 막내도 잠에서 깨어 여간 반가워하는 게 아니었지요. 언니가 사 온 종합선물세트를 풀어놓고 서로 먹겠노라 다투던 그날의 정경이 눈에 선합니다. 온갖 과자며 사탕, 껌, 초콜릿 등이 들어 있던 종합선물세트는 그 시절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거든요. 너나없이 가난하던 그 시절, 우리는 어쩌면 언니 오빠들보다 종합선물세트를 더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가난했지만 늘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설날이야말로 인생의 종합선물세트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