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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 for Healthy Life 인문학 산책
시대에 따라 달라져 온 설날의 변천사 설날 vs 설날

설날은 추석과 함께 우리네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다. 하지만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네 설날이 한때는 구정(舊正)으로 불리며 변화를 겪다 지금처럼 제 자리를 찾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불과 몇십 년 전이다. 요즘은 설날이 과거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르게 변모했고 그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그 변천사와 의미를 되짚어보자. 정덕현(문화평론가)

농경사회에서 현대사회로,
정월 초하룻날의 달라진 의미

설날이 중요한 것은 농경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날짜를 계산하고 그 흐름에 따른 계절 변화를 예측하는 역법이란 그해의 농사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월 초하루는 물론 농번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그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설날의 갖가지 제례와 놀이, 금기 등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도 한 해가 잘 되라는 기원의 의미가 크고, 마을 단위로 정초에 풍어제나 농제를 하는 것도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크다. 하다못해 윷놀이나 널뛰기 같은 놀이에도 그해의 운수를 본다거나 액운을 떨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농경사회에서 벗어나 산업사회를 거쳐 지금의 정보사회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설날의 의미나 풍속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여전히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거나 윷놀이를 하지만 그것은 농사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더 크다. 또 농경사회의 대가족에서 지금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핵가족화된 상황에서 설날은 고향을 찾는 일과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명절로 자리하고 있다.

구정으로 밀려났다 제 자리 찾은 설날
한 때 우리는 설날을 구정(舊正)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양력설이었던 신정(新正)과 비교해 비하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본래 음력 초하루를 설날로 정한 것은 앞서 말했듯 농사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서양력을 가져와 그 첫날인 1월 1일을 설날로 세우는 건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1896년 1월 1일 고종이 태양력을 수용하면서도 전통명절인 설날을 고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전통문화 말살정책이 시행되면서 설날도 일본식으로 양력설을 강요받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양력설과 음력설은 모두 지내는 변칙적인 풍속이 생겨났다.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우리네 정부가 들어서면서도 본래의 음력설인 설날은 한참 동안 복원되지 못했다. 신정과 구정을 모두 지내는 것이 낭비라는 지적이 있었고 근대화 시절에는 외국과의 무역통상 관계를 들어 신정이 권장되기도 했다. 논리는 경제적인 이익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 추석 명절이 그대로 남아있던 걸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였다. 그러다 1985년에 우리의 설날이 ‘민속의 날’로 지정돼 하루 공휴일이 되었고 89년에 비로소 음력 초하루를 ‘설날’로 공식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신정은 99년에 하루의 휴일로 바뀌었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본래 설날이 음력 초하루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우리에게 맞는 우리의 설날이 복원된 것은 농경사회에서 비롯된 설날의 본래 의미를 떠올려보면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