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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 for Healthy Life 두 발로 행복 여행

강원도 영월에는 ‘김삿갓면’이 있다. 사람 이름을, 그것도 별명을 공식지명으로 삼은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김삿갓’으로 알려진 방랑시인 김병연(1807~1863)이 은거했고 영면한 곳이 바로 여기다. 예로부터 전란을 피하기 좋다는 ‘십승지’에 들지만 그만큼 교통이 불편하고 세상과 동떨어진 산중 별세계이기도 하다. 깊은 산속에 숨은 듯 자리한 그의 무덤과 집터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방랑시인의 절망과 고뇌를 읽는다. 글・사진 김병훈(여행칼럼니스트)

지금도 멀고 깊은 산속, 
현대판 김삿갓의 
넉살은 넉넉하기만 방랑시인 김삿갓의 생생한 흔적

이것은 차라리 출가다. 시골마저 번잡하다고 느껴 높은 산을 넘고 길고 긴 계곡을 거쳐야 겨우 당도하는 골짜기. 지금도 고개를 몇 개나 넘고 인적 드문 산악지대를 한참을 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 김삿갓이 은거한 곳은 너무나 깊고 멀다. 150년 전에는 그야말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격오지였을 것이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속세를 등지는 승려의 ‘출가’ 바로 그것이다.
저 아래 계곡까지 도로가 뚫리고 기념관과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휴일이면 관광객들로 떠들썩하지만 협곡을 따라 1.8km나 더 올라온 해발 520m의 생가는 여전히 적막강산이다. 이렇게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은둔생활로도 부족해 김삿갓은 스물둘에 아예 ‘가출’을 감행한다. 집을 나간 뒤에는 겨우 몇 번만 들렀을 뿐 결국에는 죽어서 돌아와 골짜기 입구에 묻혔다. 35년간의 방랑생활을 시작하고 마무리한 곳이 바로 여기다.
김삿갓이 10여 년을 살았고 뼈를 묻은 이곳은 2009년 지명조차 하동면(下東面)에서 ‘김삿갓면’으로 바뀌었다. ‘김삿갓’은 이 산간오지에도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관광 브랜드가 된 것이다.

150년 전 전국을 누볐던 방랑시인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다. 불과 15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전설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워낙 많은 일화가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김삿갓은 1807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평안도 선천부사를 지내던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중과부적으로 반란군에 투항한 죄로 1812년 처형된 사건은 그의 일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아버지는 남해로 귀양을 갔고 김삿갓 등은 노비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했다가 다행히 사면되어 경기도 가평에 잠시 살았다. 그러다 ‘역적 집안’이란 멸시를 피해 산간지대인 영월(영월읍 삼옥리)로 10살 때 옮겨온다. 지금의 와석리 골짜기로 더욱 은둔한 것은 17세에 결혼해서 분가하면서부터다.
영월 관아에서 열린 백일장(정식 과거시험은 아님)에서 조부 김익순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로 장원이 된 것은 꽤 알려진 일화다. 나중에야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했다는 자책감에 빠진 김삿갓은 노모와 처자식을 깊은 산골짜기에 둔 채 홀로 방랑의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