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서천에 도착하니 보슬보슬 비가 내린다. 한적한 시골 마을, 어느 단층 벽돌집 앞에 차가 멈추었다. 차에서 내려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한 여인이 현관 밖으로 나와 일행을 반갑게 맞아준다. "어서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요양보호사 김춘자 씨다. 그의 안내로 조심히 들어선 집안에는 훈훈한 온기가 돈다. 거실 한쪽에는 한 눈에도 무척 연로한 수급자 부부가 앉아 있다. 노부부는 거동이 불편해 일어나지 못하고 소파에 묵묵히 앉아 있지만 찾아온 손님들이 반가운지 표정이 밝다.
김춘자 씨가 요양보호사로 3년 전 이 집에 왔을 때 수급자인 부부의 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할아버지는 췌장염으로 입원했고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끝내는 임종을 준비할 정도로 위독한 상태였다고 한다.
"제가 처음 이 집에 와서 뵀을 때 할아버지는 췌장염으로 발이 심하게 부어올랐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어요. 전립선도 안 좋고 관절 약도 먹고 계셨어요. 당장 붓기를 빼는 것이 중요해 매일 족욕과 마사지를 해주었어요. 할아버지가 평소 말을 안 하세요. 다리에 힘이 없다보니 걷다가 넘어져 많이 아플 텐데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참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씀하시라고 얘기해요."
김춘자 씨는, 연로하고 건강이 안 좋아서 그렇겠지만, 할아버지가 말이 너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건강도 안 좋은데 마음까지 위축돼 말을 안 하면 희망이 안 보일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말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계속 옛날이야기를 해주어요.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니 성경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기억이 살아난 듯 대꾸를 하시고 말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