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일에서 물러난 남편들이 집에서 몇 끼를 먹느냐를 가지고 만들어낸 영식(零食)님, 일식(一食)씨, 이식(二食)군, 삼식(三食)이 같은 농담도 이젠 옛말같이 들립니다. 만두를 잔뜩 빚어 냉동실에 넣어 두거나 곰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놓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아내들 이야기 역시 하도 많이 들어 시큰둥할 정도입니다. 물론 당사자인 남편들에게는 여전히 난감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어도 어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묵묵히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남편과 아내의 처지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고 해도, 중년 이후의 아내들이 쏟아내는 남편에 대한 불평불만은 오랜 세월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마누라 나이 든 건 생각하지도 않고 아직도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귀찮고 성가시고 힘들어요…. 아이들 다 크고 이제 드디어 자유구나 했더니 남편이 퇴직하고 들어앉았어요.
그동안 고생한 건 알지만 나도 좀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요…. 자기만 바깥에서 힘든가? 위로 부모님 챙기고 아래로 아이들 신경 쓰느라 나도 힘들다고요…. 아직도 바깥에만 나간다고 하면 못마땅해하고 잔소리를 해요. 내가 애도 아니고, 가만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자녀들이 다 집을 떠나고 부부만 남게 되는 시기를 '빈둥지기(empty nest period)'라고 합니다. 자식들 다 떠난 둥지에서 부부 둘이 마주 보고 지내야 하는데, 사이가 나쁘거나 서로 소 닭 보듯 한다면 인생의 후반부가 얼마나 괴로울까요. 황혼이혼을 계획하고 있다면 모를까, 배우자와 헤어지지 않고 같이 늙어가고 싶다면 미리 미리 대책을 세워야겠지요.
우리 속담에 '열두 효자 악처만 못하다', '이 복 저 복 해도 처복이 제일이다', '이 방 저 방 해도 서방이 제일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중년 이후의 부부관계를 잘 설계해서 '살아서는 함께 늙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힌다'는 '해로동혈(偕老同穴)', 즉 생사를 같이 하는 부부 간의 사랑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