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 술을 안마셨잖아요. 그래서 술이 잘 안 받나?
정간장 : 이상하다…, 몸은 가뿐했는데….
유달리 : 나이도 들었는데 이제 천천히 마셔요. 매번 술만 마시면 순식간에 말술을 비워대니 몸이 남아나질 않지….
결국 유달리 여사는 정간장 씨를 끌고 닥터 쿨을 찾기로 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일로 선생님을 찾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제의 과음으로 후유증이 심각하다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하루 종일 졸음은 기본이요, 판단력도 흐려져서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반나절 동안에만 두 번이나 잘못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을 빚기도 했다. 매사에 빈틈이 없는 건강인 대리가 현명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으면 난감할 뻔했다. 이런 일이 생기자 덜컥 겁이 난 정간장씨는 유달리 여사가 오기도 전에 닥터 쿨을 찾았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닥터 쿨은 상황을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닥터 쿨 : 저런, 과음을 하셔서 필름이 끊겼었군요. 회사에서도 실수를 하셨던 이유가 어제 기억을 잃은 것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정간장 : 전에는 이런 일까지는 없었는데….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면 몸에 큰 무리가 가나요?
닥터 쿨 : 당연하죠. 과음하고 기억을 잃는 것은 단기 기억상실증의 일종인데,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해마'가 손상되기 때문에 나타나요. 평소보다 술을 많이, 급하게 마시면 해마가 손상되어 필름이 끊기는 것이죠.
정간장 : 술이 센 편인데도 이런 일이 생기네요. 역시 나이가 들었나?
닥터 쿨 : 술이 센 것과는 상관이 없어요. 알코올은 뇌의 해마에 직접 영향을 주거든요. 앞으로 술을 줄이고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정간장 : 그냥 기억 한 번 나지 않은 일이 그렇게 심각한가요?
닥터쿨 : 그냥 한 번이 아니에요. 알코올이 해마에 그만큼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는 뜻이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해마가 점점 기능이 떨어져서 회복이 되지 않지요. 처음에는 술 마신 다음에만 기억이 없겠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일상생활에서도 건망증이 나타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회복할 방법이 없죠. 흔히 말하는 알코올성 치매에요. 요즘 부쩍 피곤하지 않으세요?
정간장 : 네. 젊을 때는 밤을 새도 거뜬했는데 요즘은 조금만 무리해도 피곤하네요. 이것도 나이 때문인가?
닥터 쿨 : 나이보다는 간이 혹사당해서 그래요. 올해부터 관리하기는 하셨지만 오랫동안 과음하시다보니 간과 신장도 약해졌을 것입니다.
정간장 : 큰일이네요. 그렇다고 직장생활 하는데 마실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닥터 쿨 : 적당히 양만 조절하면 돼요. 물론 그러려면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자제력도 필요하지요. 대부분은 자신의 상태는 잘 아는데 분위기에 휩쓸려서 과음하는 경우가 많으니 다들 술을 많이는 마시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큰 도움이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