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시로 이런 물음을 스스로 던져보곤
한다. 철학은 이런 물음에서 시작된다. 이런 물음은
무엇보다 누가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고 사유(思惟)를 통해 주체적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속에 이미 답의
절반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질문은 인문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으로 가는 왕도(王道)인 셈이다.
그런데 이 말이 철학책에서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로 바뀐다. 요즘 인문학 열풍
속에 출판되는 서적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를
꼽으라면 아마도 ‘존재(存在)’일 것이다. 똑같은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쓴 문구는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고 무엇인가 부족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 왠지 지루하고 따분했던 대학 철학과 수업의 강의
제목으로만 쓰일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한자어로서 ‘존재’는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종종 답해야
할 때가 있다. 그저 ‘있음’으로 이해해도 될 말을 굳이
존재라는 한자를 써서 이런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존(存)은 ‘있음’을 뜻하며 有(있을 유)와 같은 의미다.
在(재)는 ‘~에 있음’을 가리키는 글자다. 이 두 글자가
합쳐진 ‘존재(存在: being, existence)’라는 인문학적
개념어는 1870년대 이전까지 우리가 살고 있던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는 쓰지 않았던 단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들어온 서구철학의 ‘being’이나 ‘existence’의
번역어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존재의
이해 없이는 말도 사유(思惟)도 행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존재라는 말이
단지 ‘있음’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오는데 반해 서구의
언어에서는 ‘있음’과 ‘~이다’라는 두 가지 의미로서,
하나는 ‘실재(實在)’의 의미(있다, 없다)이며, 다른
하나는 ‘~이다’라는 ‘무슨 무슨 존재’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 개념과 서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