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B

본문영역

컨텐츠 영역

NHIS STORY

보장성 강화 체험수기

어?! 병원비 계산이
틀렸는데요?

보장성 강화 체험수기
최원용
(부산 금정구)
최우수상

2016년 7월, 사랑스러운 둘째가 태어난 날. “에엥~” 작고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와 기쁜 소식을 전해줄 의사 선생님을 바라봤다. 환한 얼굴로 기쁜 소식을 전해주리라 생각했는데, 어딘지 모를 당혹스런 기색을 느꼈다. 우리 아기를 보고서 나는 그 당혹스러움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아이의 몸은 온통 짙은 커다란 검은색으로 덮여있었다. 배꼽에서부터 허벅지까지. 기존의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던 피부색과는 확연히 다른 검은 색 점들. 갯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하다 생각될 만큼 많은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 선생님도 신생아에게서 처음 이런 모습을 본듯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천성거대모반, 신경피부흑색증은 희귀병이라, 보통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경험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와 우리 딸은 제왕절개 수술로 마취도 제대로 깨지 않은 아내를 놓아두고 큰 종합병원으로 서둘러 가야만 했다. 아직 마취가 덜 깨서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아내에게는 그냥 아이에게 좀 더 검사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말만 남기고.
20만분의 1의 확률로 발생하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태어난 지 1주일이 되지 않은 아이를 눕혀 전신마취를 하고 조직검사를 했다. 뇌신경 MRI검사를 통해서는 신경조직 안에도 점이 있어 이 점의 이동, 성장에 따라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워낙 사례수가 적다보니 정보를 많이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해외 의학논문을 번역해가며 찾아봤다. 지방에 있어서 더 많은 임상 경험을 가진 의사를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속상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아이의 병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 나 또는 아내가 임신 중에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자책감. 온갖 부정적인 마음들과 싸우며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며 국내에서 이 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는 가장 유명한 몇몇 병원에서 진료를 보게 되었고,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의 서울 치료 여행기는 시작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치료에 몇 년이 걸릴지 확정할 수 없고 완전히 치료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희망과 낙담이 동시에 드는 순간이었지만, 우리 아기를 위해 힘을 내자고 아내와 약속했다.
아직은 아기가 너무 어려 돌이 지난 이후부터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확장기라는 장치를 통해 피부를 늘려 점을 덮어가는 치료방법인데, 우리에게 가장 큰 어려운 점은 이 치료를 위해서는 3~4개월간 매주 서울을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를 안고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려야 할 아내도 걱정이었고, 또 이동 경비 또한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큰 비용이었다. 동시에 더 큰 걱정이 있었다. 피부암으로 변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꼭 치료해야만 하는 병인데도, 점을 치료하는 성형외과 치료 과정은 보험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멀리 서울을 오르내리는 비용만 계산해도 우리 가정 형편에 무리가 되는데, 병원비 역시 보험에서 보상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깊은 한숨만이 나올 뿐이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으로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돕던 나는, 정말로 지금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퇴근 후 대리운전 등 심야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느덧 아이의 수술 날짜가 다가왔다.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수술대로 보내는 일은 참 마음 아픈 일이였고, 그러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걱정을 해야 하는 내 처지가 슬펐다. 아내에게는 다 잘 해결될 것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의 슬픔은 스스로에게도, 아내에게도 감추지 못했다.
부모의 걱정과 상관없이 항상 밝은 우리 딸은 수술을 잘 견뎌 내줬다. 수술 후 보통의 아이들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데, 성격이 밝은 우리 아이는 몸을 활발하게 움직였다. 걱정스런 마음을 모르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우리를 웃게 해주었다.
수술 후 병원에서 회복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매일 로비로 내려가 중간정산 금액을 확인했다. 하지만 몇 번을 확인했지만 퇴원 하루 전날 까지도 내가 볼 수 있는 금액은 내가 예상했던 금액보다 너무나 작은 금액이었다. ‘아직도 처리가 안 된 거야?’ 병원행정 절차에 화가 났다. 당장 내일이 퇴원인데 아직도 치료비를 입력하지 않은 건가? 그렇게 나의 마음은 답답한 채로 퇴원을 맞았다.
그런데 웬걸? 최종 결재 금액이 중간정산에서 확인한 그 금액이었다. 물론 내가 입원 전에 예상한 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금액이었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잘못된 걸 거야. 누가 실수로 숫자 ‘0’을 하나 빠트렸나? 다음번에 치료 때 청구되는 것인가?
원무과를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다 정산된 금액 맞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나의 의문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곧 해결되었다. 벅찬 감동과 함께.
치료를 결정하고 수술을 진행하기까지 기다린 1년여의 시간동안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15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 본인부담률 인하(10∼20% → 5%)로 인해 우리에게 적용되는 부담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더 컸던 것은 서울대학병원이라는 3차 병원에서 ‘국민 부담이 큰 특진비(선택진료비) 폐지’가 시행되어 우리 영수증에는 특진비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의료 파산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우리 가정에 찾아올 수도 있겠다 싶은 걱정을 하던 우리에게 문재인 케어의 이 두 가지 변화가 가져온 마법은 가히 놀라운 것이었다. 비슷한 병으로 입원해서 수술받은 아이들 보호자들 사이에서도, 또 작년 이 맘 때쯤 수술을 받고 많은 비용을 지불했던 부모들 사이에서도 이 놀라운 변화는 마냥 마법같은 소식이었다. 물론 나는 이 마법이 보장성 강화 덕이라는 말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과 며칠 전, 우리 딸은 올 해 세 번째 수술을 받았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28개월 된 우리 딸은 여전히 수술실을 들어갈 때도 해맑다. 근심, 걱정이 많던 우리도 딸을 웃는 얼굴로 보내고 또 수술을 마친 딸을 맞이한다. 올 한 해만 스무 번을 넘어가는 부산, 서울 왕복으로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옆에서 함께 걱정해주고 기도해주는 사람들, 작은 마음이지만 커피 한잔 마시라며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늘 든든하다. 거기다 걱정했던 의료비마저 줄면서 국가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든든한 마음까지 생겼다. 아직은 몇 년간 딸아이와 함께 하는 수술 여행을 다녀야 하지만, 큰 걱정 없이 이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수술로 봉합사와 붕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한 깁스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천진난만한 얼굴로 누워있는 딸 아이가 참 사랑스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