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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요양 10주년

체험수기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장기요양보험이 필요한 이유

최우수작
장용석
(서울 은평구)

지난 3월 말, 우리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시던 한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이전시켜 드렸다. 보호자와 오랜 상의 끝에 결정한 일이었고,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왜 필요한지 생각할 수 있었다. 신 모 어르신은 아들의 손에 이끌려 처음 센터를 방문하셨다. 어르신은 참 고우시고, 체구도 작으신 분이셨다. 하지만 보호자와의 상담시 우리는 어르신이 모시기 힘들 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들은 어르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으며 센터에서 요청하는 사항이 있다면 무엇이든 맞추고 돕겠다고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어르신은 다른 어르신을 공격하거나 욕설을 하는 심각한 문제행동으로 이미 여러 시설을 전전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문제행동은 상관없지만, 같이 이용하고 있는 다른 수급자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경우 퇴소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어르신은 여러 시설을 옮겨 다니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신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행동은 ‘배회’

신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행동은 배회였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특정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이 매우 짧았고, 공백시간이 생기면 항상 배회 증상이 나타났다. 하루 종일 “문 열어, 문 좀 열어줘!” 하는 말을 반복하시며 문을 발로 차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셨다. 누군가 그 행동을 저지하면 욕설을 하고 심해지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셨다. 직원들은 어르신을 모시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어르신을 공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먼저 해결했다. 다행히 우리 시설은 층이 2개 층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어르신과 다른 분들을 다른 층으로 분리해 문제행동이 나타나는 경우 상황을 통제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어르신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경우 직원이 옆에 꼭 붙어서 진행했다. 또한 배회행동을 해결하기 위해 어르신과 함께 산책을 나가 보기도 했다. 문을 열어드리고 어르신이 가는 데로 그대로 가게 하시되, 직원 1명이 따라붙어 위험한 행동을 할 때만 도움을 드리는 방법이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신호등이 없는 찻길을 그냥 건너시려 하거나 신호등에서 멈추지 않고 빨간불에도 그냥 건너시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배회를 관찰 중 가장 큰 어려움은 어르신이 센터에서 너무 멀리 나가려 한다는 것. 1시간 넘게 걸어도 센터로 돌아오지 않으려 해 다시 센터로 돌아오도록 안내하는 것이 어려웠다.
단기기억과 장소 지남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셨기 때문에 중간 중간 방향을 전환해 센터 근처를 빙글빙글 돌 수 있게 안내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어르신이 고집을 부리면 힘들었다. 더구나 직원 한 명이 붙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기 때문에 센터 운영 전반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그래도 밖에 나갔다 오시면 나가려고 하는 행동이 조금 줄어드는 경향이 있어 건물 안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옥상에 올라갔다오는 방법을 종종 사용하곤 했다.

어르신의 배변 관련 일화

어르신을 모시면서 또 다른 어려움은 화장실 이용 관련 문제였다. 어르신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서 대·소변 처리를 혼자 하시기 어려워졌다. 기저귀를 처음 착용하였을 때는 자존심이 강한 어르신이 케어하는 직원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기저귀 케어를 할 때는 공격적인 경우가 많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욕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항상 욕을 하기만 하셨던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평소에 변비가 있어 며칠을 변을 보지 못했던 어르신께서 기저귀에 설사를 하셨다. 기저귀 교체를 위해 직원이 변기에 앉혀 드리자 갑자기 손으로 변과 항문을 문질러 변기와 화장실 벽에 닦으셨다고 했다. 본인이 뒤처리를 하려고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 손으로 다시 옷을 입으려고 하셔서 옷에 다 묻는 일까지 발생해 목욕을 시켜드리고 새 옷으로 교체해드렸다고 했다. 어르신을 먼저 케어한 이후 앉혀드리고 그 직원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나왔을 때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어르신께서 청소하고 나온 직원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평소 문 열어달라고 하시거나 화내는 일을 제외하고는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진심이 느껴졌다. 후에도 이 같은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욕설과 폭력에도 다양한 시도 해본 직원들

우리 직원들은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했다. 이불이나 수건더미를 드리고 정리해야 한다고 하며 일거리를 드리거나 색칠하기와 같은 활동지를 드려 관심 전환하기, 가짜 돈을 드리며 진정시키기,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등의 시도를 해 보았다. 어르신을 모시면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 실패하곤 했다. 결국 어르신의 문제행동을 해결 하는 묘책은 찾지 못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자 직원들도 그리고 어르신도 어느 정도는 어르신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데이케어 이후 시간에 배회 발생

그 무렵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르신을 집에 모셔다 드릴때에는 종종 아들이 일이 늦게 끝날 때면 야간근무자의 퇴근 때문에 집까지 어르신을 모셔다 드리고 나와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근무자가 어르신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나온 이후, 아들이 집에 도착하기전에 어르신이 혼자 집을 나와 배회 하시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다행히 집에서 나가셨을 때는 먼 곳을 가지는 않으시고 동네를 배회하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거나 동네 이웃 분들이 도와주시거나 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직원들도, 또 보호자도 그에 대한 걱정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병원에서 의사와 상담 끝에 저녁에 수면제 및 안정제의 투약을 변경하기로 결정하게 됐다. 문제는 안정제를 투약하자 어르신이 너무 무기력해지셨다. 온몸에 힘이 없어졌고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몸이 굽어 밥을 혼자 먹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해서 의자에 앉으실 때 비틀거리는 경우가 많아 낙상의 위험도 높아졌다. 반면 배회증상이 줄어들기는 했다. 덕분에 어르신을 돌보는 데에 필요한 노력도 줄었으나 우리는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잘 걷고 잘 먹던 건강하시던 어르신이 약 때문에 무기력해진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안쓰러웠다. 어르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용한 약물이 오히려 어르신을 구속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물 투약 후 어르신의 잔존능력도 더 저하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시간과 에너지를 더 쓰더라도 약물을 줄이는 방법은 없는지 보호자와 상담을 시도해 센터 이용 중에는 최대한 약물을 억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야간에 외출하시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급기야 어르신이 야간에 외출하셨다가 길에서 미끄러져 귀가 찢어져 응급실을 다녀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으로 더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어르신의 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요양원 가시는 날, 어르신 인사에 눈물로 배웅한 직원들

결국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아들과 논의를 하게 되었다. 사실 요양원으로 입소를 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진작부터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요양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장기요양기관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어르신을 케어하며 우리 직원들이 자주 연락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아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장기요양기관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어르신의 안전상에 문제가 커지자 더 이상 감상적인 이유로 어르신의 입소를 늦출 수 없겠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아들을 설득했다. 아들도 결국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요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직원들도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의 평가점수 등을 검토해 본격적으로 어르신을 잘 돌볼 수 있는 요양원을 수소문 하였고 결국 한 기관을 선정하게 되었다. 그 요양원은 이미 정원이 다 차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대기를 하였고 그 때까지만 어르신이 센터를 다니시기로 결정했다. 얼마 뒤 요양원에서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우리는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드리게 되었다.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출석하셨던 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단기 기억이 거의 없어 10분 전에 한 말도 기억 못하시던 어르신께서 마지막날은 어쩐지 정신이 또렷해 보이셨다. 마치 그날이 마지막으로 센터에 오시는 날인줄 아시는 것처럼 직원들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던 어르신이었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 모두가 시원섭섭해 하고 있었는데, 어르신께 “안녕히 가세요”라고 했을 때 어르신이 나를 안아주시며 내 귓가에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마워, 네가 나한테 잘 해준 거 알아.”
정말로 우리의 노력을 기억하셔서 그랬던 것인지, 혹은 다른 날처럼 그날도 그냥 기분이 좋아서 고맙다고 말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참 마음이 따뜻해졌던 말이었다. 어르신을 보내드리며 어르신 때문에 가장 고생을 많이 했던 직원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아들의 상황과 어르신의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가족에게 가장 적합한 조치를 할 수 있었다. 신 어르신을 통해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필요성과 우리의 역할을 정말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