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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지기 건강백세

신년 에세이
기쁨과 두려움 사이에서
무술년 개의 해를 맞으며

2017년 정유년이 가고, 2018년 무술년이 왔다. 어김없이 다시 날짜와 햇수를 세어봐야 하는 때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햇수와 나이를 헤아림은 효와 관련이 깊다. 『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父母之年不可不知也一則以喜一則以懼
부모지년은 불가부지야니, 일즉이희오일즉이구니라.
부모의 연세는 알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뻐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해야 한다.
― 『논어論語』「이인里人」제21장

부모님이 무탈하셔서 또 다시 함께 새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연세를 묻는 게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효도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두렵다. 기다려 주지 않고 달려가는 세월이 야속하지만 지나온 시간, 또 다가올 시간을 찬찬히 곱씹어 보는 감정에는 기쁨과 두려움이 섞여 있다.

내 나이를 돌아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나이에 1만 더했을 뿐인데 새로운 나이가 당분간 맞지 않은 옷처럼 헐렁하다. 누구나 난생 처음으로 들어선 나이 앞에 잠시 허둥댄다. 그 무게 또한 예전 같지 않다. 자녀들의 나이를 헤아릴 때에도 복잡한 생각이 든다. 해준 것도 별로 없었는데 어느새 쑥 자라 있는게 대견하고 흐뭇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막연하게 걱정이 되는 것도 막을 길 없다. 이런 새해의 기쁨과 두려움 속에, 그동안 준비해 둔 빳빳한 새 달력을 벽에 건다.

달력에는 무술년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다. 대중매체에서는 ‘황금개띠의 해’라는 백화점 바겐세일 홍보문구 같은 말로 새해를 포장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황금은 어디서 왔는지, 왜 개가 올해의 상징이 되는지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무(戊)’는 다섯 번 째 천간(天干)으로 음양 오행 사상에 따르면 흙 토(土), 즉 황색에 대응한다. 황금색은 황색을 그럴싸하게 꾸며 말하는 것일 따름이다. 재미있는 것은 ‘술(戌)’이 개를 상징하게 된 유래이다. 본래 술은 하루를 12등분했을 때 11번째 시간대를 가리켰던 것으로 술시는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에 해당한다. 이때 사람들은 잠이 들고 곧이어 집을 지키는 개 본연의 임무가 시작된다. 개야말로 술시에 가장 할 일이 많은 친구다. 이 두 연원을 종합해 보면 무술년의 상징인 개는, 황금개라기보다 초저녁 마당 한 켠에 웅크리고 앉아 바깥 소리에 귀를 쫑긋쫑긋 세워가며 집을 지키는 누렁이에 가깝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시간과 세월의 흐름에 민감해진다. 부모님의 연세를, 또 나와 가족들의 한층 무거워진 나이를 헤아리는 마음은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 불 꺼진 방, 잠든 식구들의 고른 숨소리를 들을 때면 속으로 ‘이런 게 행복이지’하며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지만, 대문 바깥의 춥고 어두운 곳에는 또 어떤 험로가 예비되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 한다.
무술년의 누런 개는 그런 우리의 기쁨과 두려움 사이, 1월의 해 저문 뜰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바깥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무술년 우리 가정을 든든히 지켜줄 개 한 마리는 새 달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 그 개의 총명함을 믿고 낯선 새해 1월의 밤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자.

글 : 백외준 성북문화원 향토사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