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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위협했던
전염병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백신과 공중보건이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했던 20세기 이전에는, 원인과 해결책을 모르기 때문에 전염병이 공포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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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위생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장티푸스의 퇴치를 자신해 왔지만, 여름철만 되면 간간이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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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수필에 표현된 말라리아

우리나라 역사 속에도 무서운 전염병이 등장한다. 민간에서는 말라리아를 삼일열, 학질 등으로 불렀다. 우리나라의 토착 말라리아의 경우 사망율이 낮고 치료가 비교적 용이한 편이라고 하여, 소설가 이태준은 한국 수필문학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자신의 수필집 『무서록』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생활이 하도 단조로울 때는 좀 앓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감기 같은 병은 가끔 앓으나 병다운 맛이 적고 또 누구나 걸리는 속환인데다, 지저분한 병이기도 하다. 병이라도 좀 앓았으면 싶을 때 마다 내가 생각한 것은 학질이었다. 벌써 8, 9년 전 동경에 있을 때 나는 2, 3년동안 여러 질의 학질을 앓아보았는데 나의 체험으로는 어느 병보다도 통쾌한, 일종의 스포츠미를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떨리기 시작할 때의 그 아슬아슬함이란 적이 풀 패스가 되고 우리 피취가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인 경우다. 그때 따스한 자리를 만나 이불을 푹덮는 맛이란 어느 어버이의 품이 그리도 아늑하고 편안하고 또 그렇게도 다른 욕망이 눈곱만치도 없게 해줄 것인가! 그리다가도 그 소낙비 같은 변조와 정열! 더구나 그 열이 또한 급행열차와 같이 지나가버린 뒤의 밤중의 적막, 연정처럼 비등(沸騰)하고 연정처럼 냉각하고 고독한 것이 ‘미스 말라리아’다!”
그러나 말라리아에 걸려본 환자들은 그렇게 무섭게 추웠다가 더웠다가 하는 경험을 다시 겪지 않기를 원한다.

삼국사기부터 이어져온 장티푸스

비속어인 ‘염병’은 장티푸스를 칭하는 말이었다. 1960년~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에 수천 명 이상이 감염되었다고 하며 그 기록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건 ‘삼국사기’에서다. 통일신라에 ‘여역(癘疫)’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장티푸스는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크게 유행했다. 중종 19년인 1524년에는 여역이 대유행하여 이를 물리치기 위해 나라에서 ‘간이벽온방(돌림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글을 모아놓은 의서)’을 발간했다고 중종실록은 전한다. 장티푸스의 원인은 살모넬라 타이피균인데, 장티푸스 환자나 보균자의 대변·소변에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 감염된다. 1990년 이후 위생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장티푸스의 퇴치를 자신해 왔지만, 여름철만 되면 간간이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OECD 주요국 결핵발생률

단위 : 명/10만명 당

자료 : 세계보건기구(WHO),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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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힌 결핵

기원전 7000년경의 화석에도 감염 흔적이 남아있는 결핵은 오랫동안 많은 사망자를 낳으며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이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당시 조선의 인구가 2,280만 명이었던 시기에 한 해에만 5,973명의 조선인이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객혈을 토하며 죽는 결핵은 당시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은 ‘결핵의 세기’라 불러도 될 만큼 지구상에 결핵이 만연했는데, 특히 젊고 아름답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감염돼 ‘미인과 천재의 병’이라고도 했다. 쇼팽과 안톤 체호프, 알베르 카뮈, ‘절규’의 화가 뭉크 등이 결핵을 앓았다. 한국에서는 이상과 김유정이 결핵 때문에 서른을 못 넘기고 요절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은 ‘결핵 공화국’이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 영양 상태, 주거 환경이 주원인이었다. 1954년에는 하루 평균 300명이 결핵으로 숨지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병’이지만, 한국은 20년째 OECD 가입국 중 결핵 발생률·유병률·사망률 모두 1위를 지키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의료진이 결핵감염으로 인해 신생아의 잠복 결핵이 문제가 되는 등, 한국에서 결핵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다시 일어나는 흑사병의 두려움

지난달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흑사병(黑死病·plague) 환자 3명이 발병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흑사병은 쥐벼룩을 숙주로 해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의해 옮겨지는 전염병으로 14세기부터 유럽에서 창궐했으나 근래에는 잘 확산되지 않는 감염병이다. 1333년부터 10년 가까이 중국을 강타한 가뭄과 홍수, 지진은 수백만의 사망자와 기근의 만연을 초래했고 이러한 재해는 끔찍한 전염병으로 이어졌으며 이 전염병은 1340년대 후반 페르시아 지방으로 번졌고 1348년에는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본토까지 퍼져나갔다. 수백 명의 환자가 매일 죽어가는 ‘저주’의 시작이었다. 병의 치료법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유대인을 흑사병의 원인으로 몰아 학살하기까지 했으며 영국에서 흑사병 사망률이 95%에 이르렀었다.

해외여행 중에는 피로가 누적되고 기후가 달라 신체의 면역이 낮아지는데다가, 여행객은 풍토병에 대한 면역체계가 없어 현지인보다 심한 증상을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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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후진국형’ 전염병이 다시 돌고 있을까

해외여행이 늘어나며 풍토병을 옮겨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해외여행 중에는 피로가 누적되고 기후가 달라 신체의 면역이 낮아지는데다가, 여행객은 풍토병에 대한 면역체계가 없어 현지인보다 심한 증상을 겪을 수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실제로 기온이 오르면 세균 번식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뿐 아니라, 모기나 진드기, 빈대와 같은 질병의 매개체가 성충이 되는 기간도 짧아진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은 기온이 1℃만 올라도 감염률은 10%씩 높아진다. 또한, 지구 평균 기온이 매년 높아지면서 겨울에도 모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감염병 지도도 바뀌고 있다. 열대·아열대성 질병인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등의 감염병도 계절과 관계없이 전세계에서 증가하는 추세이다.
과거 역사에서도 전염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전염병의 주 원인인 세균과 바이러스는 조금만 경계를 늦추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박윤선

글 :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감염내과 박윤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