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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NHIS 국민건강보험 40주년 공단의 역사는 내 인생의 역사

여기, 한 직장에서 한 우물만 깊게 판 이들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신입 초봉 4~5만 원 시절에 직장 의료보험 담당자로 시작해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 출범하기까지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기틀을 닦고 쌓아온 이들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동안 그루터기처럼 그 자리를 지켜온 건강보험의 ‘장인들’.
부산사하지사 김세영 부장, 광주북부지사 정봉순 부장, 고양일산지사 신민식 차장이 자긍심과 보람으로 함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40년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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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엊그제 입사한 것 같은데
지금은 둘째 딸의 친구와 함께 근무해요

지금은 한 직장에서 입사 40주년을 맞았지만 이들이 입사한 곳은 모두 다르다.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이 시작되기 전, 각 직장의 의료보험 담당으로 입사해 조합 형태로 일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500인 이상 걸출한 기업의 총무과와 노무과에 입사한 엘리트였다. “직장 의료보험으로 시작해 국민건강보험이 되기까지 기초를 닦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 과정까지 제 모든 인생과 노력이 서려 있어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웬만한 업무는 다 해봤죠.” 신민식 차장은 지금도 후배들이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수십 년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전한다. “40년 한 직장에 다니면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우리 아이들에게 통닭도 사줄 수 있었으니 저에겐 신이 선물한 직장이나 마찬가지예요. 자랑스럽고 뜻깊습니다.” 최근 한 드라마의 제목처럼 ‘힘센 여자 정봉순’이라는 별명을 지닌 정봉순 부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여성 리더십을 차근차근 쌓아왔다. “엊그제 입사한 것 같은데 지금은 둘째 딸의 친구와 같이 근무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워요. 이곳에서 비밀 연애도 하고 사내 결혼까지 골인했으니 성공한 셈이죠.” 자상하고 편안한 인상의 김세영 부장이 흐뭇한 웃음을 전한다.

건강보험이 걸어온 잊지 못할 순간들,
그 자리에 제가 있었죠

건강보험공단이 걸어온 40년의 역사가 곧 인생의 역사라고 말하는 이들에겐 매 순간이 소중하지만 그럼에도 잊지 못할 순간들이 있다. 김세영 부장은 “1970년대 후반 2,000여 명 이상의 여성 근로자가 있는 봉제공장 세 곳의 의료보험증을 만들고 보관하는 업무를 담당했어요. 당시만 해도 의료보험증에 근로자의 이름을 한자로 손수 적어야 했죠. 생산직이 많은 회사일수록 보험료가 그대로 쌓여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아파도 병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해온 수출 역군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신민식 차장은 국민보험공단에서 유난히 첫 사례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많았다. “교통사고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첫 구상금 소송도, 보증인을 상대로 한 보험료 체납 민사 소송도 공단 최초로 담당했어요. 법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데 법원을 참 많이 쫓아다녔죠.” 정봉순 부장은 특별한 기억보다 일상에서 악성 민원을 해결한 순간이 기억에 더 오랫동안 남는다고 전한다. “6개월 동안 여러명의 직원을 괴롭혔던 민원이 있었는데 발령받고 이틀 만에 해결했던 일이 있었어요. 막무가내인 민원인에게 원칙으로 승부했기에 가능했죠. 제 호가 ‘골통(滑統)’인데 ‘어지러운 것의 실마리를 풀다’라는 의미예요.”

건강보험증이 최고의 자격 증명이었던 시절
시대 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발전해

“건강보험이 생기면서 경력증명서가 사라졌어요. 건강보험 자격 취득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모든 자격을 증명하는 셈이죠. 그만큼 국민보험공단이 정확한 공신력을 갖췄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정봉순 부장이 이야기의 포문을 열자 김세영 부장이 나서서 말을 잇는다. “신용카드가 없었던 시절 건강보험증만 보여주면 술집에서 술도 외상으로 먹을 수 있었어요. 건강보험증이 곧 좋은 회사를 다닌다는 증명이 됐죠. 특히 공무원 건강보험증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대접이 달랐을 정도니까요.” 이들은 격동의 시대 변화 속에서도 건강보험제도가 탄탄히 발전해 왔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된 당시 부과팀장으로 있었는데 그 시기가 참 힘들었어요.
국민들은 보험료가 인상돼 불만과 사이버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공단 직원들은 매일 밤 자정이 다 돼서야 퇴근할 정도로 일이 많았죠.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 간 문제까지 공단에서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경우에는 저희도 어쩔 수가 없거든요. 그럼에도 국민으로부터 녹봉을 받는 공기관의 직원으로서 최대한 봉사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보험공단이 천직이라고 말하는 신민식 차장이 진솔한 마음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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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면 고생한 아내와 여행하고파
공단의 건강상담사로 제2의 인생 시작할 것

김세영 부장과 신민식 차장은 내년 말 퇴임을 앞두고 있고, 정봉순 부장은 2020년에 43년 직장생활의 마침표를 찍는다. 퇴임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김세영 부장은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셋인데 맞벌이하면서 양육하느라 제대로 된 여행을 못했거든요.
퇴임 후 1년은 여행만 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신민식 차장은 “자활센터에서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봉사를 하는 아내와 함께 봉사활동을 할 계획도 있고, 퇴직하면 귀농을 생각하고 있어요. 농촌 출신으로 작물 하나라도 성실하고 소중히 키우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퇴직 전에 소망이 있다면 세 자녀 중에 한 명이라도 출가를 시켰으면 하네요”라며 웃는다. 정봉순 부장의 직장 사랑은 퇴임 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공단의 건강상담사로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 “공단에 여성 건강상담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퇴임후에도 건강상담사로 친절하게 봉사하며 국민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한 직장 근속률은 낮아지고 이직률은 점점 높아진다는 요즘, 국민건강보험공단 입사 40주년을 맞은 이들이 전하는 울림은 크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감으로 걸어온 40년, 마지막까지 보람 있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이끌어갈  •  차세대 후배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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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보험의 선두주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세요!”

부산사하지사 김세영 부장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민연금은 바로 우리 직장의료보험의 자격을 기반으로 태동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그 자부심은 아직도 대단합니다. 여러분들도 4대 보험의 선두주자인 건강보험공단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세요. 올해도 대선 등으로 건강보험제도에도 많은 변화들이 예상되는데요. 지금까지 잘 해왔듯 앞으로도 국민의 건강뿐 아니라 국민들의 자격을 공인하는 기관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성실하게 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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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하고 주인의식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세요!”

광주북부지사 정봉순 부장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죠. 조직은 그 구성원이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복장, 품위, 근태부터 협업까지 무엇보다 기본이 가장 중요합니다. 공단에 여직원들이 많은데 특히 워킹맘들의 어려운 사정과 마음을 공감해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한민국 여성이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뽑혔는데 우리 세대와는 달리 발전된 복지 제도를 잘 활용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일 하시길 바랍니다. 일과 가사, 육아에 승진 공부까지 쉽지 않지만 앞으로 여성 리더십이 더욱 많아져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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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공단 민원인의 입장에서 한 번만 더 생각하세요!”

고양일산지사 신민식 차장

하루에도 몇 번씩 말도 안 되는 민원으로 스트레스 받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아무리 속이 뒤틀려도 민원인과 같이 맞상대하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호흡 한 번 하시고 민원인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베푼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복장 자율화가 되어 있지만 정장은 아니더라도 깔끔하고 단정한 복장으로 예의를 갖춘다면 민원인들도 자연스럽게 예의를 갖추게 됩니다. 우리 업무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자신이 맡은 소임을 최선을 다해 담당하시길 바랍니다.

글 : 곽한나 기자
사진 : 최병준 (Mage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