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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에 ‘어린 백성을 어엿비 여겨~’라는 말이 나온다.
세종대왕이 어여쁘게 생각하는 백성들이 제 나라 말을 읽고 쓸 줄을 모른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예쁘다’라는 말은 예전에는 ‘어엿브다’였다.
그런데 이 ‘어엿브다’는 ‘예쁘다’는 뜻과 함께 ‘가엽다’는 뜻이 있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에서 어리석은 백성을 ‘어엿비’ 여긴다고 했는데, 이때의 뜻이 ‘가엽게’였다.
예쁘다는 말 속에 담긴 가여운 마음

예쁜 것과 가여운 것은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조금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다르다. 예쁜 것은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꽃이 예쁘다면 함부로 꺾으면 안된다. 예쁜 아이를 보면 귀여워해주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예쁜 것을 보면 왠지 안쓰럽다. 아기들을 보면 다칠까봐, 아플까봐, 넘어질까봐 걱정이 된다. 예쁜 것을 볼 때 느끼는 감정 속에는 가여운 마음도 담겨 있다.

아이를 돌보듯이 예쁘다면 지켜주어야 한다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터질세라 아이를 예뻐하고 걱정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아이를 예쁘다고 하면서 오히려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비참한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어여쁜 아이들이 사랑받지 못하고,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아이들이 학대를 받게 된 원인 중에는 이웃사람의 무관심도 있다. 나중에 인터뷰를 보면 전혀 몰랐다는 답이 많다. 옛날에는 아이에 대한 학대가 별로 없었다. 아니 있기가 힘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다 알고,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같이 들어야 한다

예쁘다면 보호해주어야 한다. 예쁘다고 하면서 꽃을 꺾으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쁜 것을 보면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같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년 엄청난 수의 유기견이 발생한다. 버려진 고양이가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한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예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가엽게 여기지 않는다. 예쁘다면 가엽게 생각해야 한다

백성을 가여워 하는 마음이 훈민정음을 낳았다

예쁘다면 잘 살펴주고 보호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훈민정음에서도 세종대왕의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어여쁜 백성들이, 백성들이 너무 예쁜데 자기 말을 글로 쓰지 못하는 가여움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예쁘기 때문에 오히려 함부로 대한다면 그것은 예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예전에 할머니들은 아기들을 보면서 ‘아이고 가여워라!’라는 말도 자주 했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왜 예쁜 아이에게 가엽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하지만 한참 후 국어를 전공하게 되면서 예쁘다와 가엽다는 말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말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참 좋다. •

조현용 교수

글 : 조현용 우리말 어휘학자

우리말 어휘를 공부하고 있으며, 재외동포와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말 선물>, <우리말의 숲에서 하늘을 보다>, <우리말 깨달음 사전> 등 다수이며, 최근에는 일본인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책 <한국어로 세상 읽기>를 펴냈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