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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기억과 경험의 가치 존중

오랫동안 소중한 기억과 함께해 온 골목길이 사라지고 그곳의 추억과 함께했던 가게들이 없어지고 있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일이라 치부하기엔 그것과 얽히고설키며 마음속에 혹은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나를 키워온 감각적 주권이기도 하다. 이제 이 감각적 주권을 지켜내는 일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조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정말 오랜만에 종로 피맛골을 찾아 나섰다.
대학생 적에 종종 먹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열차집’ 빈대떡 생각이 난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에 빠져 있다 출출하면 즐겨 찾던 곳인데, 원래는 한국전쟁 후에 황학천 변에 나무판을 기차처럼 늘어놓고 빈대떡을 팔아서 ‘기차집’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천이 복개되면서 1969년에 피맛골로 이사해 이름을 열차집으로 바꾼 곳이다.
피맛골 또는 피맛길은 조선시대 운종가로 불리던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이 탄 말을 피해 서민들이 다니던 길이라는 뜻으로, 그래서인지 골목길을 따라 빈대떡집뿐 아니라, 선술집과 국밥집 등 서민들의 저렴한 먹거리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골목길을 걸으면, 선지와 순대, 빈대떡과 전 냄새가 항상 나를 친절하게 맞아주곤 했다. 그 맛과 향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면, 노릇노릇한 생선전들을 맛깔나게 구워주시던 시골 할머니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순댓국밥을 시장에서 뚝배기째로 사 오신 어머니와, 지글지글 구워지는 빈대떡 소리를 친구 삼아 함께 떠들었던 대학교 친구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피맛골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기억이자, 내 감각이며 내 몸의 일부인 것이다.

열차집도 없고 그 맛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 열차집은 없었다. 아니 피맛골 자체가 없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주상복합 건물이 서 있다. 수많은 사람의 소중한 추억, 그 감각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던 공간에는, 맛도 향도 없는 거대한 유리 건물이 서 있다. 그래도 아쉬워 건물 주변을 서성거리다 보니, 1층 아케이드 입구에 ‘피맛골’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 있던 피맛골의 명맥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1층을 동서로 뚫어내고 아케이드를 만든 것이다. 길가 ‘피맛골의 명소’라는 안내판에는, 청진옥, 미진, 청일집 등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새로 조성된 상가에 옛 가게들이 들어온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음식을 먹어보지만, 왠지 내 기억 속의 맛과 향이 아니었다. 깨끗한 실내 공간에 옛날 대문처럼 가게 앞을 꾸며놓은 청진옥의 선짓국은 옛날의 향이 아니었고, 새로운 가구와 깨끗한 벽으로 바뀐 청일집의 빈대떡은 왠지 무엇인가 빠진 것 같았다. 미진은 그냥 동네 국수집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주인, 같은 재료, 같은 요리인데, 나는 왜 다르게 느끼는 것일까?

소중한 기억, 감각적 주권의 상실

나에게 피맛골의 선짓국과 빈대떡은 단지 맛난 음식이 아니라, 피맛골이라는 장소의 소중한 기억을 담고 있는 내 감각의 기억이자 내 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 장소가 간직한 시간의 맛과 향이 사라진 공간에서 그 음식들은 더는 같은 음식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추억의 공간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주는 감각의 기억 그 자체를 잃은 것이다. 피맛골의 맛과 향기가 자본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로 대체된 그곳에서, 내 몸의 감각 역시 조금씩 조금씩 마비되어, 어느새 나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고 있다.
문화적 정체성은 우리만의 고유한 기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기억이 적층된 공간은, 우리 몸속 감각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줌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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