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으로 은퇴한 정모씨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취미생활로 꽉 짜인 자신의 생활시간표에 만족감을 느낀다. 퇴직 전보다 더 바쁘다고, 한가할 틈이 없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의 말투에는 엄청난 자부심이 느껴진다. 집에서 TV만 보거나 경로당에 나가는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점도 계속 강조한다. 마치 ‘잠시도 한가해서는 안돼. 그러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수퍼 노인들의 일상은 마치 사회 시스템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는 누구나 바쁘게 생활한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은퇴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게 된다. 이제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지? 나홀로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대중매체들은 여기에 목소리를 더한다. 은퇴 후에도 젊은이 못지 않게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쓸모없는 존재가 아님을 끊임없이 증명해 보이려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은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것이다. 다만 그것이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역량 이상으로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미국의 노년학자 데이비드 에커트는 대부분의 은퇴자들에게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을 압박하는 심리가 현대 사회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집에 있고 홀로 있는 것을 사회에서 낙오된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 말이다.
100세 시대가 시작되면서 노후를 즐길 시간도 그만큼 늘어났다. 문제는 젊었을 적부터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노후에도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 헛된 욕구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문제가 우리 사회에 시니어 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라 말하고있다.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들이 정체성을 찾고 인생을 누릴 수 있는 문화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은퇴 후 사람들은 젊은이들 사이를 더욱 기웃거리게 되고 예기치 못한 소외감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칼 융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노년기의 성장은 젊음에만 집착하고 무작정 바쁨의 굴레에 자신을 얽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젊었을 때 사회로부터 억압받았던 자아를 해방시키고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쪽이 가까울 것이다. 또한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면서 삶을 통제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것일 터이다. 여기에 속하는 덕목은 주변에 대한 배려, 공동체에 대한 헌신, 온화한 품격, 삶에 대한 성찰, 통찰력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느림 속에서 자라나는 속성들이다. 우리가 무작정 바쁘기만 한 수퍼노인증후군을 조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스스로도 버겁게 시간표를 짜는 이유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바로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티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은퇴 후 소속감이 사라지게 되면 또 다른 소속을 갖기 위해 빡빡한 일상을 계획하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고독력의 부재’ 때문이라 말한다. 고독력이란‘홀 로 있는 시간을 즐기고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힘’이다. 고독력이 있는 노인은 쓸데없이 바쁜 시간표를 짜지도 않고 자식이나 주변인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100세 시대는 자신의 의지나 바람과 상관없이 홀로 사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혼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힘, 고독력을 길러야 한다. 고독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건강한 체력, 건강한 관계, 건강한 자존감, 건강한 시간관리가 있어야 한다. 너무 바쁜 시간표에 쫓기며 사는 노인이라면 ‘과연 내가 이 네 가지를 일상에서 균형있게 추구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기 바란다. 체력을 관리할 수 있는 시간,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시간, 자존감을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그 외에도 혼자서 자기를 관리할 수 있는 시간까지 일상 안에 넣어야 한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생활을 하고 있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있는 것이므로 다시 한 번 살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