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은 날이 쌀쌀해 두꺼운 옷이 필요하다. 두꺼운 천으로 만들면 두꺼운 옷이 되겠지만 천의 두께는 한계가 있으니 천을 겹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천을 겹쳐 만든 옷을 ‘겹옷’이라 한다. 그럼 천 사이에 솜을 두어 따뜻하게 만든 옷은? ‘솜옷’이란 답은 그저 그렇고 ‘핫옷’이라 해야 어휘력을 인정받는다.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핫바지’ 혹은 ‘핫바지저고리’란 말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오리나 거위의 잔털을 뜻하는 ‘다운(down)’도 결국은 솜을 대신한 것이니 결국 핫옷의 하나이다. 그럼 한 겹으로 지은 옷은? ‘한 겹 옷’이 아닌 ‘홑옷’이라 바로 말할 수 있어야 우리말을 좀 아는 사람축에 낀다.
여기 붉은 색의 살코기와 흰색의 지방이 층층이 겹쳐 있는 좀 특이한 고기가 있다. 그렇다면 세 개의 층이 보이는 이 부위의 이름은? 당연히 ‘삼겹살’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핫바지저고리 수준의 답이다. ‘한 겹’과 ‘두 겹’ 다음은 ‘세 겹’이지 ‘삼 겹’이 아니다. ‘하나, 둘, 셋……’은 고유한 우리말이고 ‘일, 이, 삼……’은 한자에서 온 것이니 ‘세 겹’이라고 해야 할 것을 ‘삼 겹’이라고 하면 ‘다운재킷’을 ‘다운저고리’라고 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질’은 이미 늦었다. 본래 ‘세겹살’이었지만 오늘날 세 살 먹은 아이부터 여든 살 어르신들까지 모두들 ‘삼겹살’이라고 하니 그냥 굳어진 대로 쓸 수밖에 없다.
먹을 것이 귀할 때는 그저 ‘고기’라면 감지덕지다. 그런데 좀 배가 부르고 입맛이 까다로워지면 ‘살코기’와 ‘비계’를 따진다. 그저 기름 덩어리에 불과 한 비계를 좋아할 이가 없으니 이왕 고기를 먹을거면 살코기가 낫다. 하지만 살코기만 있으면 퍽퍽하고, 비계만 있으면 느끼하다. 누군가가 이 틈새를 비집고 살코기와 비계가 적당히 섞여 있는 부위만 따로 발라내서 판매하기 시작한다. 돼지의 머리부터 꼬리는 물론 내장까지 알뜰히 먹고 부위별로 이름이 다 따로 있을 정도였으니 이미 알려진 부위다. 그런데 ‘세겹살’이 아닌 ‘삼겹살’이라 이름이 붙여져 ‘로스구이’란 한영 혼종의 이상한 말과 함께 널리 퍼지게 된다. 그리고는 ‘국민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이름이 삼겹살이든 세겹살이든 고기를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바로 이해가 되지만 낯선 이름도 꽤 있다. ‘갈매기살’은 바닷가의 새 갈매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횡격막’을 뜻하는 ‘가로막이살’에서 왔다는 것은 그나마 알려진 사실이다. ‘꽃살’이니 ‘꼬들살’이니 하는 것들은 접하기 어려운 부위이기는 하지만 모습이나 식감이 예상이 된다. 그러나 ‘가브리살’ 같은 것은 여전히 어원이 불분명한 상태이다.
고기를 부위별로 먹는 것은 알뜰함과 까다로움이 교차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기의 여러 부위를 구별하고 각각의 이름을 붙인 것, 그리고 ‘부속’과 ‘내장’ 등에도 모두 이름을 붙인 것은 알뜰함의 표현이다.
돼지보다 몸집이 큰 소는 더 부위를 세분할 수 있어서 각각을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등심’과 ‘갈비’는 가장 잘 알려진 부위이기도 하고 비싼 부위이기도 하다.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심’에도 익숙할 테고, 국물을 내 본 주부들은 ‘양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름이나 부위가 꽤 낯설다. ‘꽃’을 붙인 ‘꽃등심, 꽃갈비’ 등은 지방이 눈처럼 하얗게 박힌 것을 떠올릴 수 있으니 그나마 쉽다. 그러나 살치살, 홍두깨살, 보섭살, 설깃살, 삼각살, 토시살, 안창살 등은 이름이나 부위가 다 낯설다. 게다가 ‘갈매기살’ 만큼이나 이상한 이름의 ‘제비추리’라고 불리는 부위도 있다. ‘추리’는 다른 ‘회초리’나 ‘눈초리’ 등에도 들어 있는 ‘초리’의 다른 말이다. 물론 ‘초리’는 ‘꼬리’를 뜻한다. 남자 아이들의 뒷머리가 꼬리처럼 모아진 것을 보고 ‘제비추리’라 하는데 결국은 같은 말이다.
같은 돼지나 소라고 하더라도 나라마다 정육을 하는 방법이 다르니 이름도 조금씩 다르다. 우리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삼겹살을 외국에서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저 베이컨을 만드는 부위로만 아는 듯하다. 수입 쇠고기에는 이름도 어려운 척롤(chuck roll), 척 아이 롤(chuck eye roll) 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 고기가 있는데 이것을 등심이라 속여 팔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구이로 인기가 높은 등심을 우리는 따로 발라내는데 서양에서는 목심부터 등심까지 함께 발라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고기를 부위별로 먹는 것은 알뜰함과 까다로움이 교차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기의 여러 부위를 구별하고 각각의 이름을 붙인 것, 그리고 ‘부속’과 ‘내장’ 등에도 모두 이름을 붙인 것은 알뜰함의 표현이다. 어느 부위든 버릴 것 없이 생긴 그대로의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삼겹살과 꽃등심에 집착하는 것은 까다로운 입맛의 표현이기도 하다. 가축의 살코기를 먹으면서도 기름진 맛을 함께 즐기려는 욕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까다로운 입맛으로 특정부위만 즐기다 보면 품귀와 남아도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한다.
삼겹살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엄청난 양의 삼겹살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방과 살코기를 접착제로 붙여서 삼겹살이라 속여서 파는 일까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마블링’이 쇠고기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살코기에 지방이 눈처럼 박히게 하기 위해서는 소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슬프기까지 하다. 까다로움이 아니라 알뜰함으로 먹었던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선인들은 ‘고기로 배를 채우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한 마디 보태야겠다. ‘고기를 가려 먹지 마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