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 슬픈 짐승이 하나 있다. 엄연히 물속의 주인인데도 불구하고 ‘어류’를 인간들은 ‘물고기’ 혹은 ‘생선’이라 부른다. ‘물고기’는 말 그대로 물속에 있는 고기라는 뜻이니 인간은 이 짐승을 오로지 고기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생선’은 한자로 ‘生鮮(살 생, 신선할 선)’이라 쓰니 ‘살아있는 신선한’의 의미이다. 인간이 먹을 수 있도록 살아있으면 더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신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이나 어류나 지구의 구석구석을 나눠 살고 있는 존재일 뿐인데 인간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기심에 가득 찬 이름이긴 하지만 ‘생선’이란 말은 이 먹거리의 중요한 속성을 잘 말해 준다. 이 먹거리는 잡히는 순간부터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늘 생활하던 물을 떠나게 되니 숨이 곧 끊어질 뿐만 아니라 죽는 순간부터 부패가 시작된다. 그러니 인간이 먹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 부패가 되기 전에 먹어야 한다. 물론 부패를 피하거나 늦추는 방법도 있다. 염장, 건조, 냉동, 발효 등이 그것이다. 어느 것이든 ‘살아 있는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먹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패를 늦추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물고기를 재료로 만든 음식의 주된 특성이 되기도 한다. 소금으로 짜게 절인 것은 ‘자반’이란 말이 앞에 붙고, 건조시킨 것은 ‘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어떤 생선이든 얼려서 보관할 수 있지만 명태를 얼린 것은 특별히 ‘동태’란 이름을 따로 받기도 한다. 발효나 부패는 생물학적으로는 유사한 과정이지만 먹을 수 있는, 혹은 먹기에 좋은 상태로 변한 홍어나 과메기 등은 특별한 음식 취급을 받는다. 소금에 절여진 상태로 발효가 진행되는 젓갈 또한 우리의 밥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여겨진다. 소금으로 간을 해 절인 뒤 말리는 것도 있는데 이 중의 대표적인 것이 조기다. 참조기나 수조기를 소금으로 간을 해서 말린 것은 ‘굴비’라는 이름으로 따로 불린다. 특별히 보리 항아리에 넣어서 숙성시킨 굴비는 ‘보리굴비’라고 하여 더 대접을 받는다.
양껏 먹으면 살이 찌고 그로 인해 각종 병에 시달린다.
게다가 싱겁디 싱거운 밥을 고봉으로 먹을 때나 어울리는 맵고 짠 반찬을 마구 먹었다간 건강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눈으로는 즐기되 입으로는 먹지 않는 자린고비가 더 건강할 수도 있다.
이 굴비는 ‘자린고비’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더 유명세를 타게 된다. 구두쇠로 이름난 자린고비란 자가 있었는데 반찬값을 아끼려 굴비를 매달아놓고 쳐다만 보며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에 굴비가 등장한다. 굴비가 자린고비와 엮이다 보니 굴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자린고비’의 뜻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자린고비’는 구두쇠의 별명이지 생선 이름이 아니니 소리가 비슷하다고 해서 ‘절인 굴비’로 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자린고비의 본고장은 충주라 전해지는데 이 지역의 이씨 성을 가진 부자가 부모 제사에 쓰는 지방(紙榜)마저 기름을 먹여 재사용했다는 데서 자린고비라는 말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부모 제사의 지방에는 ‘고비(考妣)’라는 글자가 항상 들어가고, 이 지역에서는 기름을 먹인다는 뜻으로 ‘겯다’를 쓰니 ‘결은 고비’가 ‘자린고비’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결은’이 ‘자린’이 될 가능성은 없지 않은데 ‘고비’가 맘에 걸린다. 굳이 한자어 ‘고비’를 끌어들인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은 잘 쓰지 않는 ‘겯다’를 되살려 설명하는 것에는 귀가 솔깃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없어서 못 먹었지만 요즘은 많아서 다 못 먹는 상황이 되었다. 자린고비의 먹는 방법을 적게 먹으란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요즘에 어울리는 건강한 식습관이 될 법도 하다. 양껏 먹으면 살이 찌고 그로 인해 각종 병에 시달린다. 게다가 싱겁디 싱거운 밥을 고봉으로 먹을 때나 어울리는 맵고 짠 반찬을 마구 먹었다간 건강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눈으로는 즐기되 입으로는 먹지 않는 자린고비가 더 건강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은 머지않아 자린고비 보다 더한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바다에 아무리 물고기가 많다고 하더라도 바닥까지 샅샅이 훑으며 새끼까지 다 잡아버리면 말 그대로 씨가 마를 수밖에 없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살아있는 싱싱한 물고기는커녕 사진으로나마 굴비의 맛을 떠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아껴야 부자가 되고 적당히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것도 누구나 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아끼며 적당히 먹어야 후손들도 먹을 수 있다. 먼 훗날 측은한 자린고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선한 자린고비가 되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