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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너는 내 운명

스포테이너&프로볼러 신수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전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였던 신수지를 마주하기 전까지 말이다. 스포테이너, 리듬체조 해설위원, 프로볼러, 아마추어 골퍼까지. 너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통에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아 ‘씨’라고도 했다가 ‘선수’라고도 했다가 하면서 우왕좌왕 인터뷰를 시작했다. 막상 말문을 터보니 그녀에게 붙여야 할 호칭은 오직 ‘선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육식동물 같은 운동선수의 본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목표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습성,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지독함. 뼛속까지 타고난 운동선수라는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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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Q.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를 지낸 신수지 씨가 프로볼러로 전향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현재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일단 올해 볼링선수로서 성적을 내려는 욕심을 갖게 됐어요. 원래는 즐기려고 프로가 됐는데 하다 보니 잘하고 싶어져서 몇 달 동안 하루도 안 빼고 매일 연습하고 있어요. 시합도 웬만한 스케줄은 다 미루고 빼면서 참가하고 있고요. 골프도 프로는 아니지만 운동선수니까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두가지 모두 아주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병행하긴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운동선수가 된다

Q. 어렸을 때 리듬체조를 시작해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까지 지내셨습니다. 처음 체조를 시작했을 때 이야기도 궁금해요. 어떻게 처음 리듬체조를 접하게 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몸을 가만히 못 뒀어요. 어느 날 우연히 집에서 리듬체조 중계를 보게 된 거에요. 그때 빨간 리본을 들고 아름답게 뛰고 있는 선수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 ‘저거다! 저게 바로 내가 갈 길이다!’ 그랬어요. 막대기에 빨간 줄 묶어서 흔들면서 엄마한테 “나 이거 할거야”라고 그랬어요. 그 장면을 본 게 1학년때니까 3년을 졸라서 초등학교 4학년때 체조를 시작했어요. 굉장히 늦은 편이었죠.

Q.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신수지 선수는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인 만 17세의 나이로 출전했고, 당시 우리나라 리듬체조 선수 중 가장 높이 랭크된 선수입니다. 체조선수로서 은퇴할 때 아쉬움은 없었는지요?

선수시절 목표는 오로지 올림픽이었어요. 왜냐하면 모두가 다 불가능이라고 했거든요. 그걸 깨고 꿈을 이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목표나 동기부여라는 게 없었어요. 또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종목이라 부모님께 더 이상 부담을 드리기 싫었고, ‘나도 다음 인생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컸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처럼 열심히, 열정적으로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얼마나 독하게 했는지, 그래서 미련이 정말 조금도 없어요. 지금 만약 그때 운동량의 1/10만 해도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갈걸요? 워밍업으로 윗몸일으키기 1000개씩하고, 줄넘기 이단 뛰기를 2000개씩 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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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수지 선수, 손연재 선수를 잇는 리듬체조 선수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요. 우리나라 리듬체조의 명맥이 끊기는 건 아닐까 우려되시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우리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조금 더 간절했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요즘 친구들이 정신력이 너무 약해요. 조금 힘들면 힘들다고 안하고 울고 그러죠. 어쨌든 선생님이 이끌어주는 데로 따라가줘야 하거든요. 좀 더 악착같이 끈기 있게 운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Q. 프로볼러로 전향하셨는데 볼링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볼링은 지금 말하기에도 우스운데 승부욕 때문에 프로가 됐어요. 은퇴 후에 뭘 할까 한창 무료해 할 시점에 친구가 볼링장에 데리고 갔어요. 그때 처음 쳐봤는데 50점? 60점? 말도 안 되는 점수가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자존심도 상하는데다가 같이 간 사람들이 못한다고 팀 짤 때 저를 제일 늦게 뽑아가고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래도 내가 운동선순데 이래서 되나’ 싶었죠. 다음날부터 친구 없이 혼자 볼링장에 갔어요. 매일 오픈 할 때 들어가서 마감할 때 나왔거든요. 그렇게 한달 동안 180점까지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이상 올라가질 않았어요. 욕심이 나서 박경신 프로님을 찾아갔죠. “저 좀 제자로 받아달라” 했더니, 선생님이 “목표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10개월 뒤 프로테스트가 있다. 그걸 목표로 삼아보자” 해서 오늘날 이렇게 프로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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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끼니를 거르지 않아요.
화보 촬영이 있어도 더 움직여서 빼지 굶는다는 생각은 안하고요.
잠은 꼭 7시간 정도 자요.
몸에 좋은 음식도 챙겨 먹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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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체조선수 시절과 볼링 선수로서 현재를 비교해 본다면 어떤점이 가장 다른가요?

지금은 심적으로 너무 행복하고 여유로워요. 체조할 때랑 지금이랑 인상 자체가 다르대요. 그때는 진짜 예민해서 폭탄처럼 ‘나 건드리면 터질거야’ 그랬어요. 시합이 다가오면 식단조절도 해야 하고, 못 먹는데 힘은 써야 되고. 손가락 한마디 차이로 기구가 굴러가고 묶이고 하니까 엄청 곤두서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게 아예 없어요. 볼링이나 체조 둘 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지만 체조는 ‘무조건 1등해야 돼, 지켜야 돼’ 이랬다면, 볼링은 그런 압박 없이 밑에서 치고 올라갈 일만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너무 재미있고 시합 다니는 기분 자체가 달라요.

Q. 골프, 볼링 등 신수지 선수는 마치 모든 운동에 능할 것으로 생각돼요. 아무래도 체조의 영향일까요?

일단 체력이 좋잖아요. 많은 연습량을 견딜 수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처음 접하는 운동은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못해요. 자꾸 특정 방향으로만 돌고, 힘까지 세니까(웃음). 처음엔 힘을 빼고 받아들여야 되는데 힘을 쓰니까 잘 안돼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연습량으로 커버를 할 줄 아는 거에요. 이건 무조건 이만큼 연습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평생 걸어온 길이라 경험으로 아니까요. 어찌 보면 타고난 게 없고 노력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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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운동선수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끈기와 인내심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재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노력 안 하는 사람들은 최고가 되지 못해요. 국가대표는 되지만 국가대표 중에서도 1등은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든 노력이 있어야 마지막에 재능이 빛을 발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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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지 선수의 일상&건강관리

Q. 신수지 선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푸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볼링의 세계로 이끈 프로볼러가 있어요. 그 친구들과 맛집탐방 자주 다니고요. 같이 파이팅 넘치게 먹고 운동도 파이팅 넘치게 해요. 또 문화생활도 많이 해요. 영화도 많이 보고요. 오늘도 촬영 마치고 바로 그 친구랑 볼링장 가기로 했어요.

Q.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특별히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저는 끼니를 거르지 않아요. 화보 촬영이 있어도 더 움직여서 빼지 굶는다는 생각은 안하고요. 잠은 꼭 7시간 정도 자요. 몸에 좋은 음식도 챙겨 먹고요. 또 운동으로 노폐물 쫙 빼주고 그런것들이 건강을 지켜주는 것 같아요.

Q. 신수지 선수의 빼어난 몸매는 여성들의 워너비입니다. 체중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체중계에 하루에도 대여섯 번은 올라가요. 자주 체크를 하는 편이고요. 밥은 칼로리 신경 안 쓰고 먹지만 먹고 나면 얼마 정도 쪘을 거라는 걸 몸으로 알아요. 그럼 ‘이건 볼링 몇 게임 치면 빠진다’ 이렇게까지 느껴져요. 실제로 그렇게 맘껏 먹고 운동하고 집에 가서 재보면 어쨌든 같은 체중. 그러니까 거의 1kg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추후 행보

Q.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는 프로볼링에서 성적을 내보는 거, 언제까지 밑에 공기만 마실 수 없으니 본선 진출해보는 게 목표고요.(웃음) 골프도 열심히 연습해서 아마추어 중에서는 무서운 아마추어골퍼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고요. 그리고 스포테이너로서도 현역이면서 방송활동 같이 하는 선수가 많이 없으니까 그런 장점을 살려서 방송활동도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요. •

글 : 백아름 기자
사진 : 최병준 (Mage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