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어져 가는 어느 겨울 저녁, 나는 어머니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며 혹시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또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아버지께서는 새벽 일찍 나가신 후, 아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을 나섰다 길을 잃어버린 일이 또 반복된 것이다.
결국 그날 아버지는 밤 12시가 다 되어 귀가를 하셨다.
집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셨단다.
약 10년 전,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으신 아버지! 그 뒤로 꾸준히 약물치료를 했으나, 3년 전부터 가족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이셨다.
동네 쓰레기들을 매일같이 주워 오거나, 남이 버린 라이터와 고무줄 등에 집착하는 등의 행동들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아버지가 주워 오신 물건을 버리는 일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은 점점 더 심해졌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기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했다. 마당의 큰 나무는 거름으로 써야 한다며 불을 지르거나, 에어컨 실외기가 보기 싫다며 라이터로 태우려고 하였다. 거기다 외출 시 집을 찾지 못해 실종신고만 수차례였고, 무단횡단이나 콧구멍에 휴지를 깊게 쑤셔 박는 등 위험한 행동이 잦아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순히 약물치료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2011년 아버지를 모시고 ○○구 치매지원센터에 방문했다. 인지능력 향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어떨까 했으나, 검사결과 치매의 진행속도가 빨라 주야간보호센터 이용을 권유받았다. 이 선택이 아버지의 여생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며칠 후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인정조사를 위해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선 치매를 제외한 다른 질환을 갖고 있지 않았고, 오랜 교직생활의 습성이 몸에 배어 남들 앞에서는 상당히 조심스럽고 품격을 유지하려는 행동을 하였다. 그 결과, 아버지는 등급외 판정을 받아 주야간보호센터 이용에 제한을 받았다.
그 후 몇 달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이상하고 위험한 행동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더욱 왕성해졌다.
어머니께서도 점점 지쳐만 가셨다. 어머니 또한 환청이 들리고 청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