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H씨는 여름 휴가철이면 스트레스가 커진다. 해마다 새로운 곳을 가려고 미리미리 알아보지만 정작 결정을 못하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정하기 어려운 데다가 겨우 정하고 나면 크고 작은 단점들이 계속 마음에 걸려 결정을 번복하게 된다. 결국 몇 해 동안 여기저기 알아만 보다가 정작 시간에 쫓겨 늘 갔던 곳만 또 가고 있다. 비단 여행뿐이 아니다.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더 싸게 파는 곳이 있을 것 같아 선뜻 집어 들지 못한다. 게다가 친구들과 만나고 싶은데도 약속장소를 정하기가 어려워 먼저 이야기를 못 꺼내고 약속 장소에 나갈 때는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느라 늦기 마련이다. 늘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려다 보니 결정하기가 너무 힘든 것이다. 이렇듯 선택의 상황에서 결정을 하지 못하는 문제를 '결정장애'라고 한다.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 현대사회가 낳은 새로운 정신적 문제이다.
인터넷에는 대신 결정해달라고 하는 고민 글이 넘쳐난다. 사실 옛날에는 중요한 결정이라도 개인이 아닌 가족이나 집단 안에서 이루어졌다.
부모 역시 자신들이 판단했다기보다 웃어른들의 말씀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랐다. 선택할 게 별로 없었다.
출생부터 장례까지 정해진 의례를 따라 일생을 살다 보니 마치 한정식 코스처럼 나오는 대로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은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철저히 변했다. 좋건 싫건 스스로 선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어디서 살고, 어떤 일을 할지 등 중요한 문제는 물론 당장 오늘 점심을 뭘 먹을지부터 선택할 것투성이다. 코스메뉴가 아니라 전식, 메인 메뉴, 후식 등을 다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