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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ON 글로벌

‘평등 진료’와 ‘장소 기반 진료’ 체계를
구축한 영국 장애인 보건의료정책

영국 장애인 보건의료정책은 크게 평등 진료와 장소 기반 건강정책이라는 두 가지 특징으로 나뉜다. 평등진료라는 관점에서 영국의 장애인 보건의료전달체계는 비장애인 보건의료전달체계와 통합된 체계로 구성돼 있으며 평등진료를 위해 국민보건의료서비스(NHS) 산하 의료기관들은 평등 의무, 평등 계획, 평등 교육 등을 시행한다. 장소기반 건강정책 관점에서는 거주지 중심 진료, 지역사회 자원 연계, 전문가 프로그램 등이 강조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도 최대한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하는 쪽으로 장애인 보건의료정책의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동철 동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통합적 평등 진료 추구

    영국은 평등 진료와 장소 기반 건강정책을 장애인 보건의료정책의 근간으로 하여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장애인 보건의료서비스를 갖춘 국가로 평가받는다. 영국의 장애인 보건의료정책은 장애인, 비장애인 차별 없는 통합적 평등 진료라는 큰 특징이 있다. 1948년에 수립된 전 국민 무상의료서비스인 국민보건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의 전통 아래 1995년의 ‘장애인차별금지법’과 2010년 여러 차별 관련법을 통합한 ‘평등법’에 따라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서비스전달체계를 통해 보건의료서비스를 받는다. 장애인들만을 위한 별도의 보건의료전달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장애인 보장구나 재활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장애서비스센터가 NHS 산하 일부 병원에 부속기관으로 설치돼 있다. NHS는 1948년 수립 이후 모든 국민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해 왔다. 하지만 영국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법적으로 명시된 것은 1995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그 후 1999년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여건에서도 동등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 절차나 정책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NHS를 포함한 영국의 의료서비스 제공자들은 서비스 전달에서 장애인들에게 불합리한 어려움을 주는 장벽이 있다면 이를 없앨 수 있는 합리적 수단을 제공해야 했다. 2005년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또 한 차례 개정되면서 모든 공공 단체에 장애 평등 의무가 부여됨으로써, 단순한 차별금지를 넘어 실제적으로 장애인 평등을 증진할 수 있는 법적 요건이 마련됐다.

  • NHS 기관
    장애평등 교육에도 열성적

    영국은 그동안 연령, 성, 장애 등에 대한 차별금지법을 각각 제정하고, 각각의 차별 시정기구를 두었다. 그러다가 2010년 ‘평등법’이 제정되면서 흩어져 있던 차별금지법들과 차별 시정 기구들이 단일한 평등법과 차별 시정 기구로 통합되었다. 주목할 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직접 차별만을 규정했으나 ‘평등법’은 직접 차별뿐만 아니라 간접 차별과 복합적 차별도 다룬다는 것이다. NHS는 그 구성원들에게 장애에 관한 지식과 장애인 지원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증진을 위한 훈련과정에 참여하도록 권고한다. NHS는 실제적인 장애평등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선 종사자들이 장애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인식하에 NHS의 각급 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장애평등(인식)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 전자의뢰서비스가 가능한
    장소 기반 건강정책

    장소 기반 건강정책이란 기존의 시설 중심의 의료서비스는 더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하에 일상생활이 영위되는 거주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지역 자원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장애인이 살고 있는 거주지를 기반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일반 개업의(General Practitioner: GP), 환자의뢰, 지역사회연계, 자기관리, 교육 등이 정책의 주요 틀로 제시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거주지 근처에 있는 복수의 일반 개업의(GP) 진료소 중 본인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GP 진료소를 선택할 수 있다. 거주지 지역에서 장애인의 일차적인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외과 전문의, 산부인과 전문의 등 전문 진료나 특수 장비를 갖춘 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전문의나 의료기기가 있는 병원으로 의뢰된다. 잉글랜드에 사는 장애인은 잉글랜드 지역의 어떤 병원이든 선택할 수 있다. 병원이 선택되면 GP가 전자의뢰서비스를 이용하여 예약을 진행하며 장애인 환자 본인이 예약할 수도 있다. 2015년 이후 모든 전자진료기록이 의무적으로 공유되므로 병원으로 의뢰되어 진료를 받을 시 의료진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확인할 수 있으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본인의 거주지 병원에서 진료받기를 원하나 해당 전문의가 없는 경우 다른 지역의 전문의를 초빙해서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

  •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

    지역자원 연계는 주로 병원에서 퇴원을 앞두고 있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장애인의 퇴원이 가까워지면 퇴원 후 필요한 지원과 보호를 결정하는 복합퇴원 계획을 수립하는데, 여기에는 의료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정신보건전문요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또한 사회적 지원이나 보호가 필요한 경우 의료사회복지사가 지방정부에 서비스를 의뢰하고, 지방정부는 사정을 거쳐 지원·보호계획을 수립한다. 지원·보호계획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따라 최대한 지역사회에서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욕구, 서비스 수급자격과 급여량, 목표, 개인예산, 직접지불제도 수급자격과 급여량, 정보 및 상담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GP는 병원 이외에 NHS 팀으로 운영되는 별도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등에게 서비스를 직접 의뢰하기도 한다. GP에 의해 특정 치료가 의뢰되면 장애인은 치료기관으로부터 예약에 필요한 편지를 수령하고, 이 편지를 토대로 예약을 하고 치료를 받는다. 치료는 일반적으로 6회기 동안 진행되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경우에는 GP의 재의뢰가 필요하다. NHS가 제공하는 치료 이상을 원하는 장애인은 사설 치료기관을 활용하기도 한다. 한편, 2007년부터 영국의 지역공익기업들은 보건부의 지원을 받아 전문가 환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은 GP에 의뢰할 필요 없이 신체에 관한 지식, 질병 예방을 위한 건강관리계획 수립 및 실천, 건강 관련 정보 획득 및 이용법, 의사와 환자의 관계 재구성 등에 관한 무료 교육·훈련을 받아 자기건강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 통합적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의
    기틀 마련 필요

    평등 진료와 장소 기반 진료를 두 축으로 하는 영국의 장애인 보건의료정책을 살펴봄으로써 여러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장애인들도 거주 지역에 있는 의원이나 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설치될 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장애인에 대한 특화된 진료 이외의 일반적인 진료서비스에 너무 치중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법에서 규정한 서비스 이외에도 장애인들에게 평등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지역사회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보건의료센터는 장애인 재활치료 위주로 운영되어서는 안되며 지역의 보건의료 환경에 장애인들이 평등하게 접근하고 다양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 자원 연계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배치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 인력만으로는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지역사회 자원을 개발하고 연계하는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를 충분히 배치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장애인 주치의의 대상을 중증장애인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만성질환 환자 등 건강관리가 필요한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영국의 장애인 보건의료정책은 우리가 한 번쯤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