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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ON 글로벌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독일 질병보험제도의 문제점 

독일은 아직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했고, 개인의 의료비 지출이 높은 편이며 정권 교체 시기마다 의료보장제도 개혁에 힘을 쏟는데도 여전히 문제점이 크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독일의 공적 질병보험제도를 기본 모델로 하여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게 발전시켜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독일의 질병보험제도 개혁이 주는 시사점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현재 독일이 안고 있는 질병보험제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지켜나가야 할 것들과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 과정에 주는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참고문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요국의 사회보장제도_독일>

  • 독일 역시 인구의 노령화와 의료기술의 발전에 의하여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고, 출산율 하락으로 인한 노동인구의 감소가 국가세입을 감소시킴에 따라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재정운영을 위해 최근에 일련의 의료개혁을 단행하였다. 2004년 질병보험 현대화법, 2007년 공적 질병보험 경쟁력 강화법, 2009년 공적질병보험 재정조달법* 등이다. 독일 의료개혁의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공적 질병보험의 재정적자이다. 재정적자의 주요 원인은 세계적인 재정 위기와 맞물린 경기 침체로 인한 보험료 수입의 감소가 가장 크고, 일부 질병보험 급여의 인상, 특히 약제비 인상으로 인한 보험료 지출의 증가에 있다. 독일의 재정개혁은 지출안정 및 재정기반의 강화, 건강기금(Gesundheitsfonds)의 정당한 운용방향 모색을 목표로 단행되었다.

    * 공적질병보험 재정조달법 공식 명칭은 ‘지속적이고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룬 공적 질병보험의 재정조달을 위한 법’이다.
  • 독일 질병보험제도의
    재정적자

    독일의 질병보험은 1883년에 비스마르크에 의해서 도입된 이래 조합주의, 근로자 중심, 그리고 보험원칙에 사회적 연대원칙을 결합한 기본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독일은 1990년대 전후부터 질병보험의 재정안정화를 목적으로 조합주의에서 통합주의로, 근로자 중심에서 전 국민 중심으로, 그리고 개인책임원칙을 강화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면서 사회적 연대원칙이 약화돼 왔다. 독일의 경우, 지난 20여 년간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핵심과제는 공적 질병보험의 시스템 개혁이었다. 이러한 의료개혁을 촉구한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질병보험의 재정안정화, 즉 재정적자의 해소였다. 질병보험의 재정안정화를 위한 독일 정부의 노력을 시기 별로 정리해보면, 우선 1989년에 실시된 『의료개혁법』은 의료비 증가억제, 보험료율 안정화 및 환자 본인부담금의 인상, 급여비 제한 등 수요억제가 목표였다.
    1990년 이후 병원과 약제비를 중심으로 지출이 다시 증가되는 상황에서 실시된 1993년의 『공적 질병보험 구조개혁법(Gesundheitsstrukturgesetz)』은 부문별 총액예산제 도입으로 공급자들이 자율적으로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고, 지역과 직종/직장을 기준으로 보험가입이 제한된 질병보험의 가입구조를 변경하여, 질병금고에 대한 피보험자의 자유선택권을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질병금고들이 보험료율을 인하하여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1995년 이후 질병보험의 진료비는 계속 증가하여 질병보험 전체의 재정은 다시 적자로 전환되었다. 1997년 『공적 질병보험 구조개혁법』은 재정지출 억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먼저 보험료율 안정화를 법제화하여 보험료율을 동결·인하하였고, 일부 항목에 대한 급여제한과 본인부담금 인상을 통해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고자 하였다.
    1998년 『공적 질병보험 연대강화법』은 의약품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금을 인하하여 피보험자의 부담을 경감시키고, 환자 본인부담금과 보험료율의 연동을 폐지하여 공적 질병금고들 간의 경쟁에서 민간보험적 요소를 제거,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다시 강화하였다. 『공적 질병보험 개혁법 2000』은 자유로운 질병금고 선택, 질병금고간의 경쟁, 그리고 위험구조균등과 관련한 개혁들을 진행하는 한편, 질병보험의 재정안정도를 높이기 위해 지출 및 수입구조에 대한 개혁을 추진했다. 지출 측면에서는 의료수가와 의약품 및 병원 부분에 대하여, 수입 측면에서는 보험료율 인상과 급여항목을 조정했다. 그 결과 기존의 총액계약제에서 점진적으로 ‘포괄수가제(DRG)’로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질병보험료의 인상은 공적 질병보험에서 민간보험으로 변경하는 가입자 수의증가와 공적 질병보험 가입자 수의 감소로 나타났다. 이러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독일의 경기침체와 실업률의 증가는 전체 사회보험의 보험료율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켰다. 이후 독일 정부는 보건의료 현대화법(2004), 질병보험 경쟁력강화법(2007), 질병보험 재정조달법(2009) 등 지속적인 재정구조 개혁을 통해 질병보험에 대한 독일 국민의 책임은 물론, 경쟁과 연대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 재정안정화가 부른
    ‘사회적 양극화’

    지난 20여 년 동안 독일 정부가 추진해온 의료영역의 재정안정화 정책의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하여 보험료율 안정화, 환자의 본인부담금 인상, 급여비 등을 제한했다. 둘째, 피보험자가 질병금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공적 질병금고들 간의 경쟁을 강화했다. 셋째,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축소시키고자 피고용인이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을 확대하고 추가보험료를 도입했다.
    넷째, 전 국민에 대한 질병보험 가입 의무화, 질병보험에 대한 정부지원금 증액, 그리고 ‘건강기금’ 도입을 통한 재정관리의 전국화 등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했다. 다섯째, 보험료의 종류와 수준을 다양화하여 가입자 개인의 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건강에 대한 자기책임과 결정권을 강화하였다. 사회적 연대의 원칙에 입각하여 발전해온 독일의 질병보험 제도는 의료비용 확대의 결과를 가져왔고, 이에 경제적이고 재정적인 이해가 보험재정의 안정화정책에 적극 도입되었다.
    그 결과 의료비용의 개인부담 증가, 급여항목의 조정, 질병금고간의 경쟁이 가속화됐다. 이러한 요소가 질병보험제도에 ‘시장 메커니즘’ 도입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야기하였다. 그리고 생산입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의 임금 외 비용을 축소하고자 하는 노력이 질병금고 간의 경쟁을 통해 ‘직장 질병금고’가 경쟁력의 우위를 갖게 하였다. 그 결과 직장 질병보험의 보험료율은 인하된 반면 일반 지역 질병보험 가입자는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질병금고 간의 경쟁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 반면, ‘위험요소’가 적은 젊고 건강한 고소득자를 선별 유치하는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급여항목의 제한과 개인부담의 증가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강화시켜 개인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비용이 증가했다. 의료영역에서 자기책임의 강화는 실제로 현재 의료영역에서 외적 요인들(의료, 의료시설, 의약 등의 보급수준)의 영향을 약화시키고, 환자 개인적인 책임(질병예방, 건강관리)을 강화시킴으로써 사회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계층들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여, 궁극적으로 의료영역에서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 의료비 지출 지속 증가
    낮은 의료서비스 등 문제점

    독일은 최근 20여 년간에 걸친 의료개혁과정을 통하여 질병보험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시장 메커니즘 도입, 질병금고들 간의 경쟁 강화, 개인책임원칙의 강화 등을 통해서 재정안정화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의료비 지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비용효과 대비 낮은 의료 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서 우선 인구의 노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의료비 지출이 보험료 수입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경제성장 저하, 높은 실업률도 현재 공적 질병보험의 재정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일반 노동관계의 변화–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낮은 임금의 일자리 창출–역시 결국은 공적 질병보험의 재정을 더욱더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근로자의 소득에 기초해서 질병보험재정을 조달하는 독일의 질병보험제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선 질병보험의 재정안정화를 위한 제도적 노력과 함께 의료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향상,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의료영역에서의 사회적 양극화를 예방하고, 각 의료행위 주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 한국, 국가의 재정적
    책임 강화 필요

    독일의 공적 질병보험제도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확보에 몇 가지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공적 질병보험제도의 역할과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질병보험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보조금의 확대와 국가에 의한 건강기금의 관리는 다보험자 체계에서 통합주의적 요소가 명시적으로 제도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의 이러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 강화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을 기초보장으로 한정하고, 개인이 선택하는 민간보험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는 건강보험 재정안정화 전략의 재검토를 시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국가의 재정적 책임을 강화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가 주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공적 질병보험제도와 관련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재정적 부담을 나누어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환자, 외래진료를 담당하는 보험계약의사, 병원, 질병금고, 국가의 부담, 그 외에 보험가입자 등 모든 이해 당사자들 중 어느 일방에게 부담이 편중되지 않도록 개혁을 추진했다.

  • 개혁 지체시키는
    합의구조 개선

    특히, 보험료율 안정을 통해 사용자의 부담이 증가되지 않도록 추가적인 재원의 확보를 위한 새로운 부과요소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부과체계의 개편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참고가 될 만하다. 셋째,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주도적 정당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적 질병보험제도가 가지는 기능과 역할 및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혁신적, 또는 점진적인 개혁이 실시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회보장 제도와 달리 의료보장은 성·연령·소득·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그 영향이 즉각적인 사회보장제도이기 때문에 제도개혁의 방향성과 연속성의 유지는 물론, 현행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마찬가지로 의료보장제도에서도 합의구조가 오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의료공급자와 보험자, 정부, 보험가입자 등 관련자들의 이해 갈등으로 보장성 강화 정책 등 개혁 조치들이 지체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