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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답사기
넉넉한 대지의 품에
역사, 잠들다
조선왕릉

수백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묵직한 역사 속을 거닐어본다.
산 자 그리고 죽은 자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섬세한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무려 519년 동안 지속된 조선왕조, 당시 왕과 왕비의 무덤은 조선왕릉으로 남아 여전히 시대의 흥망성쇠를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비밀스러운 폐쇄성과 탁 트인 개방감이 오롯이 포개진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완벽하게 보존된 유일무이한 왕가의 무덤

넓고 울창한 숲 가운데 부드러운 곡선이 드러난다. 겹겹이 둘러싼 산세를 등 뒤에 두니 평안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전히 세상을 굽어보려는 듯 어느 곳으로도 시야가 통하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이다.
공들여 무언가를 가공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태도를 고수했기에 풍경은 한 결 같이 이질감이 없다. 당시에는 풍수사상을 기초로 한반도의 지형을 고려해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 필수였는데, 여기에서 조선 고유의 자연친화적 해석이 여실히 드러난다. 물, 산, 땅, 바람 등 자연 현상이나 지형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믿었기에 궁궐에 버금가는 당대 최고의 위치를 정한 후 주어진 조건에 구조물을 맞춰 가는 방식을 택한 것. 지리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공적 구조물을 배치하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덕분에 그 독창성과 아름다움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깊이를 더했다. 같은 맥락으로, 조선왕릉은 거대한 규모로 주변을 압도하거나 화려한 외관으로 시선을 빼앗는 법이 없다. 따지고 보면 역사도 그리 길지 않지만 그럼에도 가치는 충분하다. 519년 동안 왕조를 이끈 왕가의 무덤이 완벽하게 보존된 사례는 조선왕릉이 세계에서 유일한 까닭이다.

자주 찾아보고 기억하고자 한양 가까이에

1910년, 조선왕조가 막을 내릴 때까지 조성된 왕조의 무덤은 총 119기. 그 중 임금과 왕비가 잠든 왕릉은 42기다. 봉분 조성에 따라 단릉, 쌍릉, 합장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릉, 삼연릉으로 형태도 다양하다. 때문에 이렇다 하고 한 가지로 특정 짓기는 어려우나 기본적으로 유교예법을 근거로 한다는 점은 같다. 바로 효(孝)의 실천, 조상 숭배의 전통, 사람의 근본을 조상이라 여기던 가치관이다.
개성에 있는 2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서울, 당시 도읍지인 한양 주변 한강을 중심으로 위치한 것도 그런 이유다. 후왕들은 선왕의 능을 자주 참배하고자 도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곳에 왕릉을 모셨다. 이는 조선시대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능역은 한양 성 사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고 밝힌 것. 선조에 대한 경외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왕실의 권위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었는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정릉 서측 무석인 정릉 서측 무석인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뚜렷한 영역

조선왕릉의 영역은 크게 속세에 해당하는 ‘진입’, 속세와 성역의 접점인 ‘제향’, 성역인 ‘능침’의 세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각각의 상징성이 명확하다. 진입 공간은 왕릉 관리와 제례 준비가 이루어지던 공간으로 관리인이 머무는 재실, 기물을 보관하는 향대청, 전사청 등이 있다. 이곳에서 금천교를 지나면 제향, 즉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연결된다. 제향의 시작점인 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길은 죽은 자를 위한 향로와 산 자를 위한 어로로 구분이 된다.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건축 형태도 눈여겨 볼만하다.
능침 공간은 장대석을 이용해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위쪽은 죽은 왕의 영혼이 깃드는 상계로 봉분이 있는 곳이다. 그 아래는 문인의 공간인 중계, 마지막은 무인의 공간인 하계다. 여기에서 핵심은 봉분이다. 지형과 산세에 따라 조성 방식을 달리했는데,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봉분을 수호하기 위해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을 세운 것은 기본적으로 같다. 주변에 병풍처럼 소나무를 둘러 심음으로써 존재감이 두드러지게 한 것도 마찬가지. 앞쪽의 낮은 지대에는 습지에 강한 오리나무를 심어 물로 인한 피해에 대비했다.

강릉 항공사진 강릉 항공사진 태릉 전경 태릉 전경

후왕들은 선왕의 능을 자주 참배하고자 도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곳에 왕릉을 모셨다.
이는 조선시대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능역은 한양 성 사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고 밝힌 것.
선조에 대한 경외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왕실의 권위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역사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유산

조선왕릉은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전혀 달라진다. 일단 참배자에게는 위계가 엄격하게 구분되지만 반대로 능의 주인 입장에서 보면 시원스럽게 열려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조성한 곳이 어디인지, 곁에 묻힌 인물이 누구인지에 따라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으며, 왕릉 주변에 배치된 석물을 통해 미학과 미술사의 흐름을 비롯한 선조들의 내세관까지 읽어낼 수 있다.
다만 능이 서울과 경기 여러 곳에 위치해 있어 전부 둘러보고 차이를 느끼려면 시간이 꽤 걸릴 터. 최대 규모의 왕릉군인 구리시 동구릉이 답이 될 수 있다.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을 비롯한 왕릉 9기가 모여 있는데다 조선왕조 500년의 부침과 능 조성 방식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하루에 다녀오기 좋다. 동구릉 다음으로는 고양의 서오릉이 규모가 크다. 서울 안에는 정릉, 의릉, 선릉과 정릉, 태릉과 강릉, 헌릉과 인릉이 있다. 왕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고자 했던 신의 영역. 600여 년 동안 두 번의 큰 전쟁을 겪었음에도 굳건하게 조상숭배의 전통을 잇고 있는 조선왕릉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유산이다.

함께 즐길 거리
정릉·의릉이 나란한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
1 한국가구박물관

가구부터 집, 자연, 사람에 이르기까지 17~18세기 조선시대 생활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치 있는 옛 가옥들을 그대로 옮겨와 현재의 모습을 완성했으며, 한옥 내부에는 지방색이 뚜렷한 고가구가 전시되어 있다. 모든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 진행되므로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이 필수다.
위치: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121 
문의: 02-745-0181

성락원
2 성락원

고종의 아들 의친왕이 살던 별궁의 정원으로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민가의 정원이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 수령 200~300년의 엄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숲을 이루며 수로를 파 조성한 3단 폭포가 시원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후원에는 정자도 남아 있다.
위치: 서울 성북구 선잠로2길 47 

수연산방
3 수연산방

황진이, 왕자호동 등을 집필한 작가 상허 이태준의 고택이자 찻집이다. '산속의 작은 집'이라는 수연산방의 뜻처럼 작은 정원에는 꽃과 나무가 빼곡하고 'ㄱ'자 구조의 고택은 단아하기 그지없다.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대청마루며 손때 묻은 소품을 구경하며 여유를 만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위치: 서울 성북구 성북로26길 8 
문의: 02-764-1736

우리옛돌박물관
4 우리옛돌박물관

옛 돌조각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석조유물을 비롯한 자수, 근현대 한국회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실내는 물론 야외 정원에도 작품들이 다양해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오솔길을 산책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위치: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13길 66 
문의: 02-986-1001

심우장
5 심우장

만해 한용운의 유택이다. 조선총독부와 마주보지 않으려 북향으로 지은 집으로,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사용하던 방에는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글씨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직접 들어가 관람도 가능하다. 심우장에서 위로 조금만 오르면 성곽과 맞닿은 북정마을로 연결되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위치: 서울 성북구 성북로29길 24 

한국의 세계유산
  • 9월) 해인사 장경판전
  • 10월) 남한산성
  • 11월) 백제역사유적지구
  • 12월) 수원 화성
  • 1월) 종묘
  • 2월) 조선왕릉
  • 3월) 하회마을
  • 4월) 경주역사지구
  • 5월) 강화 고인돌 유적
  • 6월) 창덕궁
  • 7월) 석굴암과 불국사
  • 8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글 : 정은주 기자 사진제공 :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성북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