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와 동화는 말 그대로 아이들을 위한 것인데 때로는 과연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귀여운 꼬마가 닭장에 가서......’로 시작되는 동요는 배고픈 여우가 닭을 물고 가는 것을 보며 ‘웃을까 울까 망설였다네’로 끝이 난다. 이 장면을 보고 웃는 아이의 정서가 의심된다. 해와 달이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알 려주는 동화 <해님 달님>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호랑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어떤 버전은 더 이상 줄 떡이 남지 않은 엄마의 팔다리를 하나씩 먹는 것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장면을 삽입한 이야기꾼의 정서 또한 의심된다. 그런데 더 의심이 가는 것은 암탉을 잡으러 가는 아이나 떡을 먹는 호랑이다. ‘닭을 잡는’ 것이 그저 손으로 잡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호랑이는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래도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에는 담배도 먹었다고 우기고 있으니 떡을 먹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사실 이야기 속에서 호랑이가 달라는 것이 떡인가 아니면 고기인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먹을 것’이어야 하는데 옛날의 아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어야 하고, 먹을 것이되 호랑이도 탐낼 만큼 맛있는 것이어야 한다. 떡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밥으로 대체하자니 마땅치 않고, ‘고기’로 대체하자니 현실성이 떨어진다. 과자와 사탕이 없던 시절이니 아무래도 떡이 최고다. 날이면 날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절이나 잔칫날 먹을 수 있는 것이 떡이다. 그러니 호랑이도 탐을 낸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떡’을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라이스 케이크(rice cake)’가 되는데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떡은 쌀로 만든 것이긴 하되 과자와는 재료나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쌀을 재료로 하지만 쌀알이 보이지 않도록 미리 가루를 내어 찌거나 찐 뒤에 메로 쳐서 만드는 것이 떡이다. 갖가지 소를 넣기도 하고, 고물을 묻혀 맛을 더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쌀을 재료로 하되 김을 올려 쪄 내는 것이 떡이다. 밀가루를 오븐에 구워서 만드는 과자는 바삭한 맛으로 먹지만 떡은 촉촉하고도 차진 맛으로 먹으니 과자와 많이 다르다. 결국 서양인들에게 먹어보게 하고 그의 이름을 ‘떡’이라고 알려주지 않는 ‘라이스 케이크’가 초래하는 오해는 바로잡을 길이 없다.
떡을 한자로는 ‘餠(떡 병)’으로 쓰는데 이 한자는 훨씬 더 넓은 뜻으로 쓰인다. 즉, 굽거나 지지거나 쪄서 만든 둥글넓적한 밀가루 음식 전부를 뜻해서 ‘부침개, 전, 전병, 빵, 떡’ 등을 모두 포괄한다. ‘전(煎)’이나 ‘전병(煎餠)’은 우리말에도 들어와 있는데 우리말에서는 떡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음식이다. 우리가 흔히 ‘생과자’ 혹은 ‘센베이’라고 하는 것이 ‘煎餠’의 일본어식 발음인 ‘센베이(せんべい)’에서 온 것이다. 형편없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젬병’도 ‘전병’에서 온 것으로서 전병이 식으면 축 처지면서 그릇에 달라붙어 형편없는 모습이 되니 쓰이는 말이다.
떡 중에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빈대떡’이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란 노래에서도 나오는 서민의 음식 빈대떡, 그런데 ‘부쳐서’ 먹으라고? 녹두와 찹쌀가루 반죽에 숙주와 돼지고기를 넣은 뒤 기름에 지져 먹는 이 음식은 결코 떡이 아니다. 게다가 ‘빈대’의 어원도 알 수가 없다. 사람의 피를 빠는 해충 ‘빈대’에서 유래했을 리도 없고, 빈대떡을 파는 사람들이 덕수궁 뒤의 ‘빈대골’에 살았다는 설명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값비싼 재료가 듬뿍 들어가는 이 음식이 가난한 사람들의 떡을 뜻하는 ‘빈자(貧者) 떡’이었을 가능성도 없다. 결국 떡을 뜻하는 중국어 ‘빙쟈’에서 온 것일 텐데 누군가가 여기에 ‘떡을’ 다시 붙여 오늘날 빈대떡이 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날이면 날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절이나 잔칫날 먹을 수 있는 것이 떡이다.
그러니 호랑이도 탐을 낸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이름이 헷갈리기는 ‘흰떡’도 마찬가지다. 색깔로 떡 이름을 지은 것은 이 떡밖에 없다. 쌀을 찐 뒤 안반에서 떡메로 치면 본래의 흰색이 그대로 유지되니 이것이 흰떡이다. 이 흰떡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개피떡이 되기도 하고, 절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흰떡의 대표는 가래떡이다. 지금은 기계에서 둥글고 길쭉하게 뽑아져 나오지만 예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둥글고 길게 만들었다. 이렇게 갈래갈래 만들어 굳힌 뒤 다시 어슷하게 썬 것이 떡국의 재료가 된다. 떡을 다시 국의 주된 재료로 쓰는 것이 매우 특이하기는 하지만 설날 아침에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알고 있으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바로 이 떡이다. 그래서 ‘흰떡’은 ‘가래떡’을 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밥보다 손이 더 많이 가고, 맛내기 재료도 많이 들어가 있는 떡은 확실히 밥보다 맛있다. 꿩이나 닭, 혹은 쇠고기를 진하게 우려낸 뒤 흰떡을 넣어 끓인 떡국은 일 년에 한 번 먹는 희소성 때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맛있다. 맛난 떡국을 먹을 날이 다가온다. 그런데 그날은 온갖 기름진 전도 넘쳐나는 날이고, 조청을 발라 만든 강정을 비롯한 단 것도 넘쳐나는 날이다. 양력 설날에 세웠던 다이어트 결심이 말 그대로 작심삼일이 된 뒤 완전히 포기하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떡국을 맛있게 먹되 고개마다 엄마를 괴롭히던 호랑이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호랑이는 오로지 ‘떡 하나’만 외쳤다. 그래도 욕심을 부릴 양이면 떡 한 그릇이 나이 한 살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주민등록증에는 그리 기록되지 않아도 우리 몸은 일 년 더 멀리 가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