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램프를 문지르며 주문을 한다. 자~램프의 요정 지니야, 나에게 일용할 걱정거리를 주렴!
요술램프에서 마법의 거인을 불러오듯 잊어버려도 될 만한 걱정거리들을 스스로 만들고 이야기하고 재생산해내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적으로는 범불안장애라고도 불리는 이 증후군은 현대사회 구성원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지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 결과 불과 40여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불안장애’는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흔한 병이 되었다.
전쟁이나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과거와 비교하면 현재는 그야말로 태평성대라 할 수 있다. 딱히 걱정거리가 늘어서 걱정을 더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뭘까? 한 전문가는 그 이유를 불안의 시각화와 공동체의 해체에서 들었다.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 탄핵정국은 불과 몇 년 사이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은 시대적 사건들이다.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뉴스에서 이 모든 것을 시각화된 정보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실시간으로 전달되던 재난의 현장. 그 모습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극심한 불안감을 심어놓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 불안은 SNS를 타고 더 빨리, 그리고 더 깊숙하게 전염됐다. 불안이 깊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역시 공동체의 해체이다. 1인가구가 급속하게 늘고 있고 사회의 변화로 공동체적 연대가 느슨해졌다. 느슨해진 연대는 ‘기댈 곳 하나 없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불안은 이제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에 만연한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불안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키스-도슨 법칙에 따르면 불안감이 적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각성이 높아져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문제는 적절한 수준을 넘어 과도할 때 생긴다. 불안이 심화되면 사소한 일에서 조차도 과도한 불안감을 느껴 일상생활까지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불안감을 만들고 거기에 사로잡혀 현실의 일을 그르치는 패턴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불안이 만연된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이 쉽게 삶의 만족을 얻을 수 없고 정신적 안정을 영위할 수 없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불러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런 때는 과감하게 걱정의 꼬리를 잘라야 한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것들,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는 것들, 22%는 사소한 것들이고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머지 4% 정도가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걱정거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걱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4%에 해당하는 일이라면 문제의 근원적 분석을 통해 당연히 해결해야 한다. 나머지 96%의 걱정은 껴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삶이란 것은 본래 모호한 것임으로 이를 견딜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문제를 안고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일단 무슨 일이든 10분 이상 고민하지 않도록 하자. 또 매사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아무래도 좋다‘는 자기 최면을 걸도록 하자. 산책을 하거나 긍정적 단어를 떠올리는 것도 램프증후군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상은 타인의 시선, 타인의 기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서 벗어나 내 몸과 마음 속을 바라보게 하여 불안을 줄이고 현재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매일 실천하는 5분 명상으로 램프증후군에서 벗어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