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가공된 것이니 그 이름은 만들거나 먹는 사람을 기준으로 짓는다. 반면에 그 재료는 인간과 지구의 공간을 나누어 살고 있는 동식물과 지구의 어디엔가 있는 물질에서 취하니 그 이름을 인간의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말을 살펴보면 유독 물에 사는 어류에게는 가혹한 이름을 붙인다. ‘물에 사는 고기’란 뜻의 ‘물고기’도 그렇고, ‘살아있는 신선한’이란 뜻의 ‘생선(生鮮)’도 그렇다. 오로지 먹거리로만 여겨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중의 몇몇은 만들어진 이야기까지 덧붙어 사람들의 입과 밥상에 동시에 오르내리는데 ‘전어’와 ‘도루묵’이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가을철만 되면 서해안과 남해안의 바닷가 식당, 그리고 큰 어시장 주변은 생선을 굽는 냄새로 가득 찬다. 한자로는 ‘錢魚’라고 쓰니 돈 많은 집에 태어난 ‘금수저’ 물고기로 여겨질 수 있으나 흔하디 흔한 물고기 중 하나이다. 겨울을 나기 위한 지방이 가장 많이 축적된 가을철에 가장 맛있다하여 ‘가을 전어’라고 따로 부르는 물고기다. 크기도 어중간하고 가시도 많아서 특별히 매력적인 것이 없는데 가을이 되면 없어서 못 파는 귀한 몸이 되었다.
이 생선이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 것은 순전히 이름과 이야기 덕분이다. 굳이 영어로 한다면 네이밍(naming)과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인데 그럴듯한 이름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물고기의 몸값을 한껏 높인 것이다. 어부의 주머니를 돈으로 두둑하게 채워주니 그 이름은 ‘돈 고기’란 뜻이다. 맛이 어찌나 고소한지 그 맛을 ‘깨서 말’에 비유되고, 굽는 냄새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 기름이 오른 생선 치고 맛없는 생선이 없지만 전어는 과장된 이 비유 덕에 가을철에 가장 대접 받는 존재가 된다.
이름에 관련된 유명세를 톡톡히 치루는 물고기가 하나 더 있으니 ‘도루묵’이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군에 쫓겨 급히 궁을 떠난 상황이니 임금님이 먹을 것마저 부족한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묵’이란 물고기를 조리해 상에 올렸더니 임금이 그 맛을 칭찬하며 ‘묵’이란 본래 이름 대신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단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궁에 돌아와 그 물고기를 다시 먹은 임금이 평범한 맛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그 이름을 도로 묵이라 하라”고 했다는 물고기다.
물고기로서는 억울할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거짓말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고기의 맛이 몇 년 새 변할 리는 없으니 배고플 땐 맛있다고 하다가 배부르니 맛이 없다고 하는 변덕일 뿐이다. 임금은 한양을 떠나 의주로 피란을 갔는데 이 물고기는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주로 잡히니 앞뒤가 안 맞는다. 본래 ‘묵’이라는 물고기가 있고, 그 중의 하나가 ‘돌묵’이었는데 그것이 변해 ‘도루묵’이 된 것일 뿐이다.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을 치는 오래된 ‘아재 개그’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씨가 말라가는 물고기를 비싼 돈을 들여 탐욕스럽게 먹으면 모두에게 독이 된다. 맛있고 영양가가 높은 생선이라도 배가 부르도록 먹는 것은 바보짓이다.
과장된 표현, 혹은 지어낸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그 덕분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일 수도 있다. 집 나간 며느리 아니었으면 전어는 그저 그런 생선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난리를 만난 임금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도루묵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름과 이야기 덕에 전어는 양식까지 하는 귀한 물고기가 되었고, 도루묵은 누구나 한번쯤 먹어봐야 할 것 같은 생선이 되었다. 그래 봤자 사람들이 더 많이 잡고 더 악착같이 먹는 물고기가 된 것이니 씨가 마를까 걱정이기는 하지만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이름은 어차피 짓는 것이고 지어낸 이야기도 재미를 더해 주니 굳이 탓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온갖 먹거리에 붙여지는 갖가지 이야기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어찌된 일인지 식당마다 붙어 있는 물고기의 효능을 보면 만병통치약이다. 물고기 몇 가지만 먹어도 무병장수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느 물고기든 나름대로의 영양성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은 맞고, 그 물고기를 먹는다고 바로 몸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은 틀리다.
‘살아 있는 싱싱한 물속의 고기’는 모두 우리에게 한없이 고마운 존재들이다. 어느 것이든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니 제철에 제값을 주고 기쁘게 먹으면 모두 약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 때문에 씨가 말라가는 물고기를 비싼 돈을 들여 탐욕스럽게 먹으면 모두에게 독이 된다. 맛있고 영양가가 높은 생선이라도 배가 부르도록 먹는 것은 바보짓이다. 극히 일부는 몸의 자양분이 되지만 나머지는 병의 씨가 된다. 그래서는 말짱 도루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