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가 된 산골짜기 외딴 마을
여유롭게 걷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찍 서둘러야 한다. 서두를 이유와 가치는 충분하다. 산골짜기 외딴 마을에 잘 닦인 도로와 넓은 주차장이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괴산은 동서남북 모두 산에 둘러싸였다. 어느 하나 뚫린 곳 없이 꽉 막혔다. 이러한 가운데 달천이 생명수처럼 흘러 물길을 만든 곳이 산막이 옛길이다. 이 길의 인기는 제주 올레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주말에는 수천 명이 찾는다고 하니, 인기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접근성도 좋아 전국 각처에서 발길이 이어진다. 최소한 오전 10시경에는 도착해야 옛길의 정취를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옛길이 있는 산막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산이 막아선 마을이다. 그런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 알려졌다. 유배 생활을 했던 대표적 인물은 조선 중기 을사사화에 휘말렸던 노수신 선생이다. 그는 정계에 복귀한 뒤 영의정까지 지냈다. 시간이 많이 흘러 10대 후손 노성도가 이곳을 찾았다가 빼어난 절경에 반해 ‘연하구곡가(煙霞九曲歌)’를 읊으며 “가히 신선이 별장으로 삼을 곳”이라 극찬했다고 전한다.
안전과 옛길의 정취,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산막이 마을은 10가구 안팎의 작은 마을이다. 1957년 순수 우리 기술로 준공한 최초의 댐인 괴산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앞 달천(달래강)이 호수로 변했다. 험산준령에 둘러싸였던 마을에 물까지 막아섰으니 진정한 오지가 된 셈이다. 댐이 생기기 전까지 주민들은 달천에 돌다리와 섶다리를 놓고 바깥세상과 소통했다. 그러나 댐 건설로 인해 주민들은 나룻배로 달천을 건너거나 궁여지책으로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따라다녀야 했다. 옛길은 사오랑이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지는 벼랑길 4km 구간의 산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