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휘트니 휴스턴’ 가수 신효범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부터 이 애칭으로 불렸다. 듣는 사람의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사이다 고음, 그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위로하는 따뜻한 기교로 35년 동안 ‘디바’의 자리를 지켰다. 영원한 디바 신효범을 <건강보험>에서 만나본다.
독보적인 가창력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신효범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은 계기는 의외로 예능 프로그램인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여자축구의 중흥기를 일으켰다 평가받는 프로그램에서 그는 FC불나방의 수비수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신효벽’이라는 또 하나의 애칭까지 얻었다.
“처음 섭외가 들어왔을 땐 축구 예능인데다 <불타는 청춘> 출연자들이 참여한다고 해서 안 하겠다고 했어요. 나이 많은 우리가 축구라니요(하하). 그런데 경기에 출전할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PD님이 나와서 앉아있어만 달라고 설득해 출연했죠. 막상 현장에 가보니 배우 박선영 씨와 저를 제외하고 다른 멤버들은 축구를 해본 경험이 없는 거예요. 별수 없이 제가 수비를 맡게 됐죠. 사실 몸도 그리 좋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골 때리는 그녀들>은 제게 신의 한 수가 됐어요.”
이는 첫 시즌부터 우승을 차지한 성취감 때문만은 아니다. 50대 나이로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잊지 못할 신의 한 수였다. 때문에 최근 시즌2에서 준결승행이 좌절된 것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FC불나방 멤버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단합을 보여줬다는 것이 기쁠 따름이다.
“저도 50대는 처음 사는 거잖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축구를 하면서 몸이 많이 회복됐고 최선을 다했기에 행복했어요. 이미 저희에게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하나가 되는 느낌이 정말 좋더라고요. 분명 나이가 주는 여유라고 생각해요. <골 때리는 그녀들>에 참여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신효범은 1988년 제2회 MBC 신인가요제에서 <그대 그림자>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바로 이듬해 정규 1집을 냈고 이후 <난 널 사랑해>, <세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등의 노래가 연이어 사랑받으면서 1990년대 뛰어난 가창력을 앞세운 가수로 유명세를 달렸다. 7집 앨범을 내는 데까지 9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노래만 부른 시절이었다.
“2006년 9집 수록곡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를 부르고 나서 아직 앨범활동이 없어요. 저 스스로 감정적 정체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당시 불혹의 나이에 들어섰는데 ‘그동안 해온 게 뭐지?’라는 생각이 불쑥 찾아왔고, 과연 이 모든 것이 내게 맞는 옷인지 돌아보게 됐죠.”
그런데 스스로를 돌아보며 잠시 앨범 발매를 멈췄던 시간에도 그의 노래들은 대중의 귓가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특히 2006년에 발표한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는 2020년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인공 전미도(채송화 역)의 목소리를 타고 빅히트를 기록했다. 드라마 삽입곡으로 인기를 끈 이후 신효범의 원곡을 듣고 반기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특히 그를 잘 몰랐던 젊은 층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면서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곡 발표 당시 활동과 홍보를 거의 못 해서 개인적으로 미안한 곡이었어요. 좀 지난 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불렀죠. 1년쯤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3년쯤 지나니 방송국에서 비로소 무대에 올리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불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노래)는 그럴 운명이었던 거죠. 요즘은 좋은 노래가 나와도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니까 가수 활동이 쉽지 않아요. 지금도 5년째 멜로디만 붙들고 가사를 붙이지 못한 노래도 있어요. 올해는 꼭 완성해 많은 분들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앨범을 내지 못한 공백기는 신효범의 건강과도 연관이 있다. 2012년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무렵 그는 급성폐렴으로 인해 무대가 아닌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이후 4개월간 치료를 받으면서 몸은 조금씩 무너져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근막협착 통증까지 찾아오자 그를 둘러싼 많은 것이 변했다.
“거의 12년간 아팠던 것 같아요. 급성폐렴을 진단받고 3년 후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가평으로 집을 옮겼어요. 처음 이사 왔을 땐 창가에 의자를 두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봤어요.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을 알 수 없을 거예요. 삶의 터전을 옮길 만큼 건강은 제게 특별한 의미예요.”
현재 가평에서의 삶은 반려동물들을 돌보고 여러 집안일을 챙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최근에는 건강이 부쩍 좋아져 예전에 즐겼던 탁구도 다시 시작했다. 아픈 이후로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그는 <건강보험>과의 만남을 계기로 꼭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겠노라 다짐도 했다.
“누구나 나이 들고 병에 걸리잖아요. 그럴 때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면 굉장히 큰 좌절감이 다가와요. 건강보험은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는 늘 함께 하는 친구처럼 여겨져요. 저는 아파본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효범은 서울 토박이지만 어릴 때부터 전원에서의 삶을 동경했다. 가평은 그의 조부모 그리고 친척들이 살던 곳이다. 도시에서 자랐지만 숲 냄새와 흙 밟는 느낌이 좋았고, 저녁이면 이웃집 밥 짓는 냄새가 풍겨오는 마을 풍경이 사랑스러웠다. 그 풍경 속에 스며든 그는 지금 평화롭고 고요하다. 장마철 구름 사이로 해가 들 듯 그를 휘감았던 아픔이 물러난 자리에 서서히 희망이 깃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어떤 일에 빠지면 정신을 모조리 쏟는 삶을 살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기만 했던 것 같거든요. 20년 동안 그렇게 살았으면 충분하지 않을까요(하하).”
노래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한 곡 한 곡 절절하게 실어 보냈던 사랑과 이별의 감정도 인생이라는 큰 여울 안에서는 곧 지나갈 작은 파동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외로운 사람들이 듣고 위로받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무르익던 청춘 시절 기쁨의 환희도, 슬픔의 좌절도 겸허히 맞이하고 이제 느긋하게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된 사람에게서 보이는 여유와 관조. 영원한 디바 신효범, 그리고 그의 노래에서 바로 그런 모습이 비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