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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NESS OF SENIOR

마이 버킷 리스트

근육은 나이가 없다,
청춘은 계속된다

84세 최고령
보디빌더 서영갑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매 순간 얼마나 나이를 실감하면서 살고 있는가. 무릎이 아프고, 눈이 침침하고, 수시로 찾아오는 건망증에 당혹스러운 나날들이 거듭되면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는 열패감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보디빌더 서영갑 씨는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믿을 수 없는 탄탄한 근육과 활기를 자랑하는 그는 ‘내 몸을 스스로 디자인해서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최고령 보디빌더! 대구에서 만난 그의 청춘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경희 기자 사진 김도형(헬리오포토)

퇴직 그리고 새로운 시작

서영갑 씨는 국내 보디빌딩 계에서 최다출전, 최다입상, 최고령 선수라는 굵직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100세를 넘어 120세 시대가 도래했다고 모두가 떠들어대지만, 수명이 반드시 삶의 질을 담보하는 세상이 아닌 지금, 그가 갖고 있는 ‘최고령’이라는 타이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어요.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고3 담임을 많이 맡다 보니 건강이 말도 못 하게 나빠졌지요. 새벽부터 밤까지 자율학습, 보충수업, 야간학습 등 쉴새 없이 수업이 이어졌으니까요. 40대부터 무릎과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던 그가 지금도 가보 1호로 꼽는 3kg짜리 아령을 산 건 40대 초중반 때였다. 정확한 자세도, 방법도 모르고 그저 들었다 내려놨다 굽혔다 폈다 하면서 아령 운동을 했던 시절이었지만 조금씩 건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허리도 덜 아프고 무릎의 통증도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 근육의 힘을 체감했던 시절이었다. 서영갑 씨가 보디빌딩을 시작한 것은 1999년 8월, 64세에 정년 퇴직을 한 뒤부터였다. 퇴직 4년 전에 우연히 미스터대구 선발대회 포스터를 보고 혼자 찾아가 대회를 본 뒤에 조명을 받아 빛나는 핏줄과 근육들의 움직임을 보고 남몰래 꿈꿔왔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헬스클럽에 등록한 그는 본격적으로 근육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대회 출전을 위해 밤새 포즈를 연습했다.
과정은 즐거웠지만 뜻밖에도 아내의 반대에 직면했다. 대구 토박이로서 교장으로 은퇴한 그가 손바닥(?)만 한 팬티를 입고 무대에 올라 젊은 사람들과 근육을 겨룬다니 “노망났냐”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딛고 보란 듯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염을 토했다.
“자신감과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던 순간이었다”면서 서영갑씨가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목표는 오직 건강이다

우람한 팔뚝과 허벅지, 굵은 종아리로 40대 못지 않은 근육량을 자랑하는 서영갑 씨지만 그의 일상은 뜻밖에도 소박하고 예사롭다. 닭가슴살과 단백질 보충제, 영양제만을 먹으며 온종일 헬스클럽에서 사는 보디빌더를 연상한 것은 온전한 착각이었다.
“저는 생활의 운동화, 운동의 생활화를 실천하면서 지냅니다. 헬스클럽에 다니는 대신 집에서 운동을 하고 집 밖으로 나갈 때는 양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녀요. 웨이트 운동을 할 때도 절대 과욕을 부리지 않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다치게 되니까요.”
서영갑 씨는 자신의 목표가 ‘건강’이지 대회 ‘우승’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언제든지 대회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과도 같다. 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살을 빼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늘 일상 속에서 건강한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꾸준히 운동하면서 일정 수준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노년의 건강에는 근육이 필수입니다. 아픈 몸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건 삶이 아니잖아요.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건강도 투자를 해야 해요. 시간과 노력, 땀이 들어가야 하는 거죠. 우리 몸처럼 솔직하고 정직한 건 없습니다.”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노년의 건강에는
근육이 필수입니다.
아픈 몸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건
삶이 아니잖아요. ”
끝까지 보디빌더로 살고 싶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교육자로 살아온 그의 인생은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보람으로 가득했던 삶이었다. 그러나 정년퇴직 이후 그의 삶은 더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교육자로 살 때는 미처 겪어보지 못했던 무수한 경험 속에서 수많은 자산을 쌓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강의, 운동강습, 대회 출전, 방송 활동, 인터뷰 등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요즘도 무척이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백발’을 뜻하는 그레이(Grey)와 ‘중흥기’를 의미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의 합성어인 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라는 단어가 있는데 퇴직 이후에 저는 다시 찾아온 중흥기를 맞은 기분이에요. 정말 행복합니다.”
대회 우승을 떠나 국민 건강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온전히 자리매김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서영갑 씨가 파안대소한다. 보디빌더로서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이룬 그에게는 아직 소원이 하나 더 남아있다. 바로 90세가 넘어서도,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끝까지 현역 보디빌더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다.
“노년기에 접어들어 몸이 아프다는 사람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운동을 권했을 때 ‘덕분에 건강해졌다’라는 연락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게는 그것처럼 기쁜 일이 없어요. 이 같은 삶의 보람을 끝까지 건강하게 가져가길 바랍니다.”
지금도 매일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몸과 뇌를 함께 움직이는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서영갑 씨. 보디빌더로서의 그의 인생은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고 땀 흘린 만큼 눈부신 결과를 빚어내는 더없이 아름다운 삶임이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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