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여행지가 몇 있다. 경북 청송도 그중 하나다. 주왕산과 주산지를 비롯해 유네스코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한 지질명소까지, 청송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자연박물관이다. 이름마저 푸르고 청량한 청송의 여름 속으로 들어가본다.
서울에서 청송에 가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와 당진영덕고속도로를 지나야 한다. 청송은 왼쪽으로 경북 안동, 의성, 영천과 접하고 오른쪽으로 영덕, 포항과 가깝다. 위쪽은 좁고, 아래로 향할수록 넓게 퍼지는 A라인 치마를 닮은 지형이다. 청송의 중간쯤, 영덕과 인접한 오른편에 청송의 주산이자 경북 제일의 명산 주왕산이 있다.
과거 주왕산 일대에서 아홉 번 이상 화산폭발이 있었다. 고온의 화산재가 용암처럼 흘러내려 굳었다가 거듭되는 폭발로 인해 다시 부서지고 굳기를 반복하며 주왕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암절벽과 암봉을 만들었다. 특히 천년고찰 대전사 뒤편으로 우뚝 솟은 기암은 도공이 깔끔하게 테두리를 정비한 듯, 아름다운 선과 비슷한 결의 웅장한 바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이 역시 뜨거운 화산재가 쌓여 엉겨 붙었다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세로로 틈이 생긴 용결응회암의 결과물이다.
주왕산은 1976년 우리나라의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과거에는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 것 같다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렀는데 신라 말, 중국 당나라 때 반역을 일으키고 청송으로 쫓겨 온 주왕이 은거했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됐다. 기암 역시 주왕의 군사가 깃발을 꽂았다는 전설에 따라 깃발바위, 기암이라 부르게 됐다. 강원도 설악산, 전라도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 중 하나인 주왕산에는 아름다운 계곡과 폭포 등 볼거리가 많다. 병풍바위, 시루봉, 학소대 같은 기암괴봉과 바위 틈으로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의 모습도 한 점 수묵화 같다. 웅장한 암석과 계곡, 폭포, 숲이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와 멋이 있는 주왕산.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상상하게 한다.
천년고찰 대전사 뒤편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주왕산
지금도 그렇지만, 한때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저절로 이끌었던 곳이 바로 주산지다.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해 청송 하면 주산지를 먼저 떠올렸다. 새벽녘 물안개가 새하얗게 피어올라 솜사탕처럼 올라앉은 풍경은 사람을 홀리기 충분하다.
주산지는 1720년(경종 원년) 8월 착공해 이듬해 10월 준공한 저수지다. 평균수심이 약 8m로 준공 이후 300년이 지나는 동안 극심한 가뭄에도 밑바닥을 드러낸 적 없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단단한 암석이 주산지를 받치고 있는 데다 그 위로 형성된 퇴적암층이 물을 스펀지처럼 머금고 있다 흘려 보내기에 풍부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주산지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물에 잠겨 생을 이어온 150여 년 묵은 왕버들 고목이다. 나이의 잣대로 치자면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쓸데없는 욕심들을 내려놓게 된다.
주산지 인근, 고요함 속에 원시적 비경을 간직한 절골계곡도 들러보자. 주왕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절골계곡은 그 길이만 10km에 달한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예전에 절이 있었다 해서 절골이라 이름 붙었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하늘을 향해 누우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청송은 지질유산의 가치를 유네스코가 인정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주왕산을 비롯해 탄산약수, 신성리공룡발자국화석지, 백석탄, 얼음골 등 24곳이 지질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신성계곡 절벽 위에 그림처럼 자리한 방호정은 1619년 조선 중기 학자 조준도가 어머니를 그리며 세운 정자다. 방호정을 받치고 선 퇴적암은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졌다. 자연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아 만든 지질유산과 그리움의 표상인 정자가 어우러진 모습이 잔잔하게 아름답다. 방호정 맞은편 신성리공룡발자국화석지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속에 갇혀 있었던 공룡발자국 지층이 2003년 태풍으로 인한 산사태로 노출됐고 이듬해 당시 포항대흥초 교장이었던 이상원 씨가 발견하면서 학계에 보고됐다. 발견된 400여 개 공룡발자국을 통해 청송에 살았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역사는 물론 한반도 공룡의 역사를 입증할 수 있었다.
신성리공룡발자국화석지에서 길안천을 따라 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안덕면 고와리, 백석탄계곡이다. 짙푸른 녹음 속 청량하게 흐르는 물줄기 사이로 새하얀 바위들이 눈 쌓인 산맥처럼 솟아 있다. 하얀 돌이 반짝거리는 개울이라는 이름의 백석탄계곡에서 낯섦이 주는 아름다운 떨림과 마주한다. 신의 갤러리라 불리는 청송의 푸르름과 청량함이 이 계절 더욱 빛난다.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절경, 얼음골과 백석탄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절경, 얼음골과 백석탄
1일차 08:00 AM
주산지 길이 200m, 평균수심 약 8m의 저수지로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마른 적 없다. 150여 년 된 왕버들이 물속에서 자생하는 모습이 사계절 장관을 이룬다.
1일차 10:00 AM
주왕산국립공원 주왕산의 상징인 우뚝 솟은 기암, 신비로운 자태의 학소대, 자연이 빚어낸 멋진 장관들과 마주하면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싶다.
1일차 15:00 PM
청송백자전시관 청송의 천연자원인 도석을 빻아 만든 생활자기 청송백자를 볼 수 있다. 청아한 빛과 은근한 멋을 간직한 청송의 문화유산이다.
1일차 18:00 PM
산소카페 청송정원 천변 따라 드넓게 펼쳐진 야외정원은 산책하듯 거닐기 좋다. 정원 내 전망대에 오르면 확 트인 전망도 감상할 수 있다.
2일차 09:00 AM
방호정 & 신성리공룡발자국화석지 신성계곡 절벽 위, 정자 방호정에 앉아 계곡의 바람을 느끼고, 400여 개 공룡발자국이 발견된 신성리공룡발자국화석지로 간다.
2일차 13:00 PM
백석탄 포트홀 신성계곡을 지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대표 명소 백석탄계곡에 이르면 감탄이 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