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일명 ‘멍 때리기’가 유행이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이나 향초를 응시하는 ‘불멍’, 어항 속 물고기의 유영을 감상하는 ‘물멍’, 청아한 싱잉볼 소리에 집중하는 ‘소리멍’ 등 다양한 종류의 멍이 그 인기를 말해준다. 이토록 고요한 말줄임표가 바쁜 현대사회에 왜 트렌드가 되었을까? 혹시 그 너머 진짜 필요한 건 쉼표가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휴식에 대해 알아본다.
새해면 늘 뭔가 시작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는 그게 아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 바로 그것이다. 채움의 다른 한 편에 있는 비움의 시간을 ‘휴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휴식은 무엇일까?
휴식이란 글자 속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휴식(休息)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휴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앉아 있는 모양이고, 식(息)은 자신(自)의 마음(心)을 돌아보는 것이다. 해석하면 ‘자연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휴식이라는 뜻이다. 이는 독일의 뇌과학자 에른스트 푀펠이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라고 한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고 이를 철저한 자기비판이나 성찰로 오해해선 안 된다. 끊임없이 내 탓, 내 책임을 상기하는 도덕적 판단은 오히려 뇌를 움직이며 집중시킨다. 휴식에 필요한 것은 반대로 ‘비집중의 시간’이다. 뇌가 스스로 흩어진 기억을 하나로 모으고 충전·조정해서 필요할 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 유행하는 ‘멍 때리기’ 역시 뇌를 비집중 상태로 전환시키는 행위다. 불멍, 물멍, 산멍, 소리멍 등 그 종류는 다양해도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있는 것을 오래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러한 멍 때리기는 온라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잠시나마 오프라인 상태로 만들어주는 탈출구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멍 때리기를 너무 자주 하면 뇌의 활성도와 기능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몸의 회복을 위해선 잠시 쉬더라도 적절하게 쉬는 방법이 필요하겠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휴식은 곧 ‘자기만의 휴식’을 의미한다. 이 말은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휴식법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새해에는 자신만의 휴식법을 하나쯤 찾아보자.
자연과 어울리기
심리학자 레이첼 카플란과 스테판 카플란은 ‘주의 회복이론(ART: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서 집중을 통한 정신적 피로가 누적됐을 땐 자연환경에 노출되는 방법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란 하늘과 산, 나무 등 자연과 어울리며 지친 몸을 회복하자.
덜 쓰던 신체 기관 쓰기
좋은 휴식은 균형을 맞춰가는 시간이다. 평소 많이 쓰는 기관은 쉬게 하고, 덜 쓰던 기관은 쓰게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춤을 추거나 운동을 하면서 몸을 많이 움직여 보자. 앉아서 손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다리를 움직여 걷기를 추천한다.
멍 때리기
아무 생각 없이 휴식할 때 뇌의 비집중 상태가 활성화된다. 하지만 멍 때리기를 너무 자주하면 뇌세포가 빠르게 노화되고 우울증이 생긴다는 사례도 보고되는 만큼 너무 자주 오래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루 1~2번 집중의 스위치를 끈 채 안정을 취하는 것을 추천한다.
명상하기
스티브 잡스, 마크 베니오프 등 세계적인 CEO들이 꼽은 최고의 휴식법이 바로 명상이다. 대체로 바른 자세로 앉아 호흡에 집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따분하고 답답할 수 있지만 훈련이 거듭될수록 내면의 평온이 찾아온다.
아이처럼 놀기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은 “진정한 휴식은 그 활동 자체가 기쁨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과나 보상이 아닌 활동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놀이로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처럼 놀면서 온전히 그 순간에 몰입하다 보면 일종의 명상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참고 자료 문화체육관광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 포럼 ‘지금, 우리의 여가: 진정한 휴식이란?’ KBS <생로병사의 비밀: ‘잘’ 쉬는 방법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