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핫 스타

서울대 1호 개그맨을 넘어 끊임없는 도전의 아이콘으로!

개그맨 서경석

개그맨 서경석이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며 밝게 웃고 있는 이미지

서경석은 1993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으며 방송에 입문했다. 데뷔 당시부터 그를 숱하게 따라다닌 수식어는 ‘서울대 1호 개그맨’. 실제로 그는 지적인 말솜씨와 언어유희를 활용한 개그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기존 이미지의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이어왔다. 공부면 공부, 개그면 개그, 운동이면 운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기울이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개그맨 서경석을 만났다.

그림. 정라희 사진. 이동훈

요금 서경석은 축하 인사를 듣기 바쁘다. 지난해 12월 1일에 발표된 32회 공인중개사 합격자 명단에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올라간 덕분이다. 2020년에 수험생활을 시작해 1년여의 짧은 기간에 이룬 성취. 누군가는 명문대 출신의 외유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오랜 기간 평생학습에 관심을 두었던 그에게는 성패와 상관없이 한 번쯤 도전해야 할 과제였다. 응시 소식을 대외적으로 전하고 나니, 물러설 곳도 없었다. 방송이라는 본업을 이어가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두고 “외로운 싸움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시험에 응시하기 전에는 이만큼 어려운 시험인지 몰랐습니다. 시험 과목 중 하나만 책을 읽어보면 ‘쉬운 시험’이라는 말이 쏙 들어가요.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은 원래도 쉽지 않았는데, 응시자가 몰리면서 난이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올해 중반에 일이 몰려 잠시 책을 놓았더니 바로 백지 상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2차 시험 직전에는 방송 외에는 시험공부에만 몰두했습니다. 가족들이 배려해준 덕분이죠.”

연예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사실 원래 여러 분야에 도전하기를 즐기는 편이었다. 우등생의 진로가 정형화된 한국에서, 그는 분명 다른 길을 걸었다. 20대에는 대학 재학 중 연예계에 데뷔해 개그맨으로서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30대에는 수많은 사업에 도전하며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40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자격증에 도전하며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었다. 스스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자평할 만큼, 그는 새로운 도전에 열려 있는 사람이다.

서울대 1호 개그맨의 희로애락 활동기

반짝인기를 얻었다 대중의 눈에서 사라지는 연예인들도 많지만, 서경석은 여전히 대중과 접점을 유지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성실하게 알리고 있다. 1990년대는 단연 그의 전성기였다. 처음에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로 대중의 눈에 띄게 되었지만, 그러한 화제성을 기회로 살린 배경에는 그의 개그 감각이 크게 자리를 차지했다.

데뷔 이후 김영희 PD의 조언으로 개그맨 이윤석과 콤비를 이루어 무대를 꾸몄던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가 히트하면서 그는 단박에 스타 개그맨으로 부상했다. 데뷔한 해에 MBC 코미디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1996년 우수상, 1997년 최우수상에 이어 1999년에는 대상을 받으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의외로 그가 방송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2014년 방영된 MBC <일밤-진짜 사나이>였다. 사실 그는 서울대 입학 전 육군사관학교에 수석 합격한 전력이 있고, 현역으로 군 생활을 마친 바 있다. 하지만 24시간 돌아가는 카메라 속에서 실제 병영 생활과 같은 일정을 보내는 건 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훈련을 받는 동안 예기치 않은 변수로 큰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베테랑 연예인인 그는 촬영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아 묵묵하게 그 순간을 버텼다. 아직도 그의 팔과 다리에는 그때 입은 영광(?)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프로그램에 담긴 방송 장면은 촬영 분량의 10%도 되지 않아요. 출연자들도 어떤 장면이 어떻게 편집되는지 모르고, 실제 상황 그대로 몰입하며 촬영에 임했습니다. 평소에는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지만, 군대에서는 오롯이 혼자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거지요. 반은 정신력으로, 반은 체력으로 버텼습니다.”

건강관리의 기본은 운동, 검진에도 관심 가질 것

40대에 20대 현역병과 동등하게 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운동에 시간을 많이 쏟은 덕분이었다. 서경석의 오랜 취미는 다름 아닌 축구. 연예인 축구단 FC리베로의 단장인 그는 그라운드를 바쁘게 누비는 공격형 미드필더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즐겨하던 축구를 중단해야 했고, 자신도 모르게 하루하루 몸이 무거워졌다.

“예전에는 건강에 자신 있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축구를 하면서도 몸을 사리게 되더라고요.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도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당연하게 가져야 할 책임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에는 몸무게가 94kg까지 늘어났다. 건강이라면 자신 있던 그도 이때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대외적인 상황과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다이어트. 약 두 달 동안 20kg을 감량했지만, 그의 다이어트 비법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규칙적인 식사와 건강한 식단이다. 그래서 한동안 그의 식탁에는 현미밥과 쌈 채소가 꾸준히 올랐다. 이와 함께 요즘 그는 건강검진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막 50대에 접어든 그에게 건강검진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가건강검진을 받는 건 자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도 건강을 위해 잊지 않고 검진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정기적으로 검진을 챙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양 팔을 벌려 밝고 건강한 포즈를 취해 보이는 서경석 이미지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서경석 이미지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도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당연하게 가져야 할 책임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활동 비결은 꾸준한 성실

연예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은 라디오DJ를 하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15년부터 MBC의 대표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의 DJ로 활약 중인 그는 매일 아침 전국에서 날아오는 청취자의 사연을 나누며 울고 웃는다. 한 구절, 한 구절에 청취자의 삶이 녹아 있는 사연을 읽으면서 인생을 다시금 깨닫기도 한다.

“청취자들이 <여성시대>를 <여성시大>라고 자주 말씀하시거든요. 정말로 ‘인생 교수님’들이 전국 각지에서 진솔한 사연을 보내주세요. 그래서 처음에 <여성시대>를 맡았을 때 부담이 컸습니다. 초창기에는 사연을 읽다가 터지는 눈물을 못 참기도 했고요. 계속 사연으로 청취자와 소통하면서 이제는 마음이 많이 강해졌죠. 감동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사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지금도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어요.”

어느덧 데뷔한지도 3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방송 경력에도 그는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실 이제까지 수많은 도전이 항상 성공의 결실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조금씩 변화하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아진다”는 말을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강점을 명석한 두뇌나 능란한 입담이 아닌 ‘꾸준한 성실’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는 좀 더 ‘괜찮은 개그맨’이 되고 싶다. 단순히 ‘사람 좋다’는 평을 넘어 방송 활동에서도 두루두루 일정 수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싶다. 앞으로의 1차 목표는 MBC 라디오에서 10년 차 DJ에게 수여하는 ‘브론즈 마우스’를 받는 것. 화려하게 보이던 연예인의 삶도 매일 아침 시간을 지켜 출근하는 성실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그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즐거운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양 팔을 벌려 건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경석 이미지

“국가건강검진을 받는 건 자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도 건강을 위해 잊지 않고 검진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보는 페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