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트래블

화려하고 우아한 꽃의 향연
봄날의 고궁

봄이 되면 경복궁·창경궁·창덕궁 등 조선의 궁궐에는 꽃이 한창이다.
창덕궁 후원 관람지와 창경궁 경춘전 뒤편 화계 일원에 자생하는 노란 생강나무꽃을 시작으로 창덕궁 낙선재의 매화, 경복궁 경회루와 덕수궁의 벚꽃이 잇따라 핀다.
바야흐로 꽃 대궐이 펼쳐지는 것이다.

강은진

/

사진 제공 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

참고 자료 문화재청

왕이 누렸을 봄날

봄날의 궁궐은 그야말로 꽃 대궐이다. 3월 중순 창덕궁 후원 관람지(觀纜池)와 창경궁 경춘전 뒤편 화계(花階, 계단식 화단) 일원의 노란 생강나무꽃을 시작으로, 궁궐 정원과 연지(蓮池) 주변, 조선 왕릉 산책로 곳곳에 산수유꽃, 매화, 복사꽃, 진달래꽃, 앵두꽃 등 아름다운 꽃나무와 들꽃이 봄의 기운과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활짝 피어난다. 고궁의 봄꽃은 3월 중순을 시작으로 4월에 절정을 이루고 5월 말까지 지속된다. 개화 기간에 궁궐과 조선 왕릉을 찾으면 향긋한 봄 내음 가득한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살구나무꽃, 앵두나무꽃, 진달래꽃, 매화, 벚꽃 등 우리에게 익숙한 꽃이라 더욱 정겹다. 게다가 저마다 진귀한 사연이 더해지니 상서롭기까지 하다. 왕이 누렸을 화사한 봄이 숨겨진 곳, 궁궐로 가보자.

고종 임금이 특히 좋아했다는 향원정은 진달래꽃 명소다.
경회루의 우아한 능수벚나무

왕이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화려한 경회루에서 봄꽃 나들이를 시작해보자. 경회루 연못 주변 버드나무 사이사이에는 능수벚나무가 그윽하게 물가에 가지를 떨어뜨리고 있다. 거대한 군락은 아니지만, 물가로 축 처진 화사한 꽃자루가 경회루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경회루 연못을 만들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아미산 정원이 백미다.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의 꽃담을 따라가면 아미산 정원과 굴뚝을 배경으로 앵두나무꽃, 진달래꽃, 철쭉꽃 등 화사한 봄꽃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세종이 좋아했다는 앵두꽃이 유명하다. 아들 문종이 후원에 직접 앵두나무를 기르고 열매가 열리면 아버지 세종에게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고종 임금이 좋아한 경복궁 향원정은 진달래꽃 명소다.

아미산은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 후원에 만든 작은 인공 동산이다. 앵두꽃과 옥매화는
비교적 늦게 피는 편이라 가장 늦게까지 궁궐의 봄꽃을 볼 수 있다.
덕수궁 석조전 앞의 능수벚나무. 근대건축과 서양식 분수가 어우러져 색다른 감흥을 안긴다.
덕수궁에서 봄밤의 정취까지

궁궐 봄꽃 구경은 덕수궁에서 마무리하자. 봄꽃 개화 시기야 대동소이하지만, 덕수궁은 다른 궁에 비해 늦은 개방 시간이 장점이라 봄밤의 정취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어당 주변에는 덕수궁의 봄을 대표하는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조선 궁궐로는 보기 드문 2층 목조건물인 석어당의 살구꽃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에서 언급해 더욱 유명해졌다. 현재 4대 궁은 코로나19 감염 예방과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모두 비대면 입장 시스템으로 운영 중이다. 무료입장이 가능한 사람은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또 방역 강화 차원에서 현재 1인 최대 매표 매수가 4매 이하로 조정되었고, 각 궁마다 진행하는 특별 관람은 예약이 잠정 중단된 경우가 많으니 사전에 반드시 문의해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누리집(royal.ch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낙선재는 매화와 산수유꽃으로 시작해 벚꽃과 철쭉꽃, 그리고 5월 모란꽃까지 봄꽃이 피고 지는 곳이다.
문화재해설사가 추천하는 궁궐·왕릉 봄꽃 명소 6선
❶ 경복궁 교태전 일원

경복궁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여인의 공간이다. 전각 창으로 보이는 화계의 아름다움은 네모반듯하게 잘 찍은 아름다운 사진을 보는 듯하다. 교태전의 꽃담을 따라가면 ‘아미산 정원과 굴뚝’(보물 811호)을 배경으로 세종이 좋아하던 앵두꽃을 비롯해 옥매화, 해당화꽃, 진달래꽃 등 화사한 봄꽃도 만나볼 수 있다.(4월 초 절정)

❷ 창덕궁 성정각 일원

창덕궁 성정각 동쪽 누각에 위치한 희우루(喜雨樓)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는 뜻으로 정조가 이 누각을 중건하자 비가 내렸다고 한다. 희우루 앞으로는 오래된 살구나무가 있는데 흩날리는 하얀 꽃이 마치 가뭄 뒤 내리는 단비를 연상케 한다. 또 희우루 담장 밖 자시문 주변에는 빨간 매화(만첩홍매) 고목이 전각과 돌담을 배경으로 고풍스러운 멋을 연출한다.(3월 말 절정)

❸ 창경궁 옥천교 일원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옥천교가 보이는데, 옥천교를 중심으로 좌우 어구를 따라 펼쳐진 살구나무, 앵두나무, 자두나무 등의 다양한 봄꽃이 옥천(玉川, 구슬과 같이 맑은 물이 흐름)의 뜻만큼이나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봄꽃 가득한 옥천교를 거닐다 보면 영화에서나 보던 왕의 모습이 연상된다.(3월 말 절정)

❹ 덕수궁 대한문, 석조전 일원

과거와 근대, 현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덕수궁 대한문부터 석조전까지 이어지는 벚꽃, 살구꽃, 진달래꽃의 향연은 복잡한 도심에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최적의 장소로 추천할 만하다.(4월 중순 절정)

❺ 융릉과 건릉 산책로

수원팔경 중 하나인 화산두견(花山杜鵑)은 지리적으로 융릉과 건릉을 말한다. 봄에 우는 두견새의 메아리와 화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두견화, 杜鵑花)는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을 느끼게 한다.(4월 초 절정)

❻ 덕혜옹주 묘(홍릉과 유릉 일원) 산책로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잠들어 있는 덕혜옹주 묘역으로 향하는 길은 벚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봄길이다.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는 밝고 화사한 느낌보다는 비바람에도 쉽게 지는 연약한 벚꽃잎과 ‘삶의 덧없음’이라는 벚꽃의 꽃말처럼 외로운 삶을 살다 간 덕혜옹주의 쓸쓸함이 느껴진다.(4월 초 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