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핫 스타

신축년 새신랑으로 신고한
개그계의 대부 엄영수
“웃음으로 건강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았죠”

개그맨 엄영수가 일흔의 나이에 새신랑 타이틀을 얻었다. 두 번의 이혼 끝에 만난 귀한 사랑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도 불사한 시니어 로맨스의 주인공을 만났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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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다영

‘뼈그맨’은 뼛속까지 개그맨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엄영수를 소개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듯하다. 그는 인생의 아픔인 두 번의 이혼, 탈모, 사업 실패 등을 소재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굴곡진 인생사로 이름을 엄용수에서 ‘엄영수’로 개명하면서도 잘못 발음하는 사람들을 위한 팬 서비스라며 웃어넘긴다. 웃기지만 슬픈 그의 ‘웃픈’ 인생사에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것은 그 안에 열정과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일 터. 연이은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인생 역전을 도모했기에 황혼의 나이에 활짝 필 수 있었으리라. 인생의 비포장길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엄영수의 마이웨이는 그래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희극인 엄영수가 사는 법

인생의 상처를 웃음 소재로 삼는 것은 자기 학대에 가까운 일이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 개그맨이라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엄영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친구에게 사업 자금을 대주려고 했는데, 전 부인이 가압류를 걸어놔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며 “이혼이 나를 살렸다”고 말한다. 탈모에도 위축되지 않고 “가발 모델로 생계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저 같은 모델을 구하기 어렵죠. 화제의 중심에 있는 데다 결혼과 이혼은 형사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모델료를 반납할 일이 없거든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그의 유머에 사람들은 결국 웃을 수밖에 없다. 엄영수는 “내 실수담이나 실패한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즐거워하면 그 자체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반전은 여기서 일어난다. 일반적 기준에서는 흠 많은(!) 인생임에도 그에게 결혼식 주례나 사회를 부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결혼 최대 금기인 이혼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주례사를 청한다. 그래서 주례를 할 때도 살신성인하는 마음으로 “신랑, 신부는 저같이 살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두 번 이혼했다’고 하지 말고 ‘두 번 결혼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얼마나 아름답냐”며 천생 희극인의 면모를 뽐낸다.

병원 문턱을 낮춘 건강보험이 있어 다행이에요.
입원할 때는 울어도 퇴원할 때 웃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위로와 힐링의 건강 전도사

엄영수의 건강 철학은 ‘웃어야 산다’는 것이다. 실제로 웃음은 면역력을 강화하는 건강 물질의 원천으로 꼽힌다.

“갓난아기는 하루에 400번 정도 웃는데, 한 번 웃을 때마다 1200가지의 건강 물질이 만들어진다고 해요. 웃으면서 백일과 돌을 보내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거죠. 그런데 성인이 되면 하루에 20번 정도밖에 웃지 않는대요. 웃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저항 물질이 마르는 거예요.”

엄영수는 웃음을 잃는다는 건 건강을 잃는 것과도 같다고 강조했다. 열 살 연하의 예비 신부와 만난 계기도 웃음 덕분이다. 사별 후 큰 슬픔에 빠진 그녀가 엄영수의 코미디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내 코미디로 힐링을 했다며 생명의 은인이라고 미국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미국 공연 갔을 때 직접 만나면서 인연이 시작됐죠.”

엄영수는 웃음이 정신건강의 비결이라면, 건강보험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리면 치료비를 2억 원씩 청구해요. 코로나19보다 무서운 것이 병원비라니까요. 그 정도 금액이 청구되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죠.”

건강보험이 건강을 지키는 마지노선 역할을 담당하기에 병원도 못 가는 처참한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는 미국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다 더욱 절감한 사실이기도 하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이혼과 결혼으로 관심을 받고 있지만, 엄영수는 가슴 따뜻한 부정(父情)으로도 유명하다. 총각 시절 어머니의 권유로 남매를 입양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시골집에 세 들어 살던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보육 시설에 맡겨졌다가 예전 집을 찾아오면서 시작된 인연이다. 엄영수는 방황하는 남매에게 “아저씨랑 같이 살자”고 제안하며 가족을 꾸렸다.

결혼 후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었지만, 결혼을 후회한 적은 있어도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것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싱글 대디로 입양한 남매와 자신이 낳은 아들, 결혼으로 얻은 아이 등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10년 살다 이혼하면 저 사람은 10년 동안 불행했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9년 9개월 동안 행복했고, 마지막 3개월이 좀 불행했던 거예요. 9년 9개월을 회상하면 즐겁고 재미난 역사죠. 그 자체로 자기 역사고 추억이니까 그것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는 그렇게 추억과 상처를 구분하며 인생의 지혜를 터득했다. 다시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것도 후회 없이 사랑했기 때문이리라.

망하면 좀 어때요?

엄영수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망하면 좀 어때요?”라고 말한다.

“강연을 듣다 보면 죄다 성공 신화잖아요. ‘나는 이렇게 해서 애들을 명문대에 보냈고, 판매왕이 됐고, 사업에 성공했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강연에서 망한 얘기를 했어요. 첫 번째 결혼은 이래서 망했고, 전셋돈은 이렇게 뜯겼고, 방송은 이렇게 하다 망했다고요.”

사람들은 웃기지만 처절한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웃음 속에 담긴 진실을 알아챘다.

“아직도 망할 게 남았다는 것은 옛날에는 되게 괜찮은 사람이었나 보다 하는 소리도 돼요.”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망신스럽다고 여기면 망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엄영수의 말처럼 ‘망하면 좀 어때?’라고 생각하면 무겁게 느껴지던 삶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힘들 때 울면 삼류, 참으면 이류, 웃으면 일류”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는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승자다. 실패해도 웃는 그는 이미 일류다. 넘어지고 깨지는 엄영수의 인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엄영수의 주문, “좀 망해도 괜찮습디다!”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