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성 강화 우수 사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체험 수기 공모 수상작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
나의 이야기’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 경감을 위한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성과를 알리고 이해를 돕고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체험 수기’를 공모했다.
생생한 경험담이 담긴 공모작 중 공정한 심사를 거쳐 최우수상과 우수상, 장려상 등 모두 17편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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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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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 서울아산병원 백균섭 교수

“우리 가족의 걱정인형”
최우수상 최정은

저는 아픈 아기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생후 70일경 황달 검사에서 ‘간부전’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시도 지체 말고 입원하라고 해 지방의 한 종합병원에서 OO대 어린이병원까지 구급차로 급히 전원되어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병명은 ‘시트룰린혈증 2형’으로 선천적으로 간 효소가 결핍되어 발생하는 병으로 영양소 일부(탄수화물)가 분해되지 못해 체내에 독으로 쌓이는 희귀 난치성 대사 질환입니다. 주로 20대 이후 발현할 가능성이 있고, 간성혼수 등으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평생 병원을 다니며 관리해야 합니다. 저희 부부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병원에 다니고,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육아휴직 중이었지만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지, 그렇다면 남편 월급으로 아이 병원비까지 충당될지 현실적인 고민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퇴원 시 받은 진료비 계산서를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저희 부부가 낸 본인부담금은 공단부담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으로, 건강보험이 아니었다면 한 달 월급보다 많은 금액을 열흘 정도 입원비로 내야 했습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놀라움 반 안도감 반이었지만 퇴원 후 외래를 갈 생각을 하니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질환 특성상 매주 채혈을 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하는 채혈도 수가가 높은 검사 항목이 많아 한 번 내원하면 보통 10만 원 정도, 대사 이상 확인 검사를 하면 항상 그 이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확진 후 외래에 간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채혈 후 수납을 하려는데 병원 직원이 “산정특례를 등록하셨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비 감면 혜택을 준다는 간호사의 안내에 정신없이 등록한 기억이 났지만 병원 마케팅으로 보험료를 더 내는 줄 알고 취소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희귀 난치성 질환이거나 중증질환처럼 장기 요양을 해야 하는 환자들의 병원비를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제도라며, 직원 분이 앞으로는 본인부담금의 10%만 내면 된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국가에서 내 병원비의 90%를 내준다. 평생 아이가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10%만 내면 된다.’ 도움이 절박했던 저는 생각지 못한 지원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건강을 잃은 가족이 있는 가정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생활이 무너지는 것은 하루아침입니다. 삶의 재난을 국가가 좌시하지 않고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절망에 빠진 이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저희 가족은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국가로부터 참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산정특례 덕분에 외래를 가면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1만 원 내외의 금액만 병원비로 냅니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병원을 옮겨 학계에서 손꼽히는 권위 있는 교수님에게 진료를 받아도 선택 진료비가 폐지되어 큰돈이 들지 않습니다. 아이는 앞으로도 건강보험제도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오래전 어느 광고에 나온 말이 생각납니다. “걱정은 저희가 할게요. 당신은 행복하기만 하세요.”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아이에게 걱정인형이 하는 말입니다.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모든 것이 두렵고 내가 계획했던 삶을 포기해야 할까 걱정하던 바로 그때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저에게 걱정인형이 되어주었습니다.

“재난 속에 찾아온 선물”
장려상 손미희

2018년 9월 10일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달리 긴장한 목소리로 병원으로 와달라는 아빠의 전화를 받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경비로 일하는 회사에서 가볍게 넘어졌다는데, 그때 오른쪽 무릎 옆에 입은 타박상이 말썽이었다. 상처는 가벼운데 하루, 이틀 사이에 다리가 퉁퉁 부어버린 것이다.
아빠의 병명은 치사율이 40% 바이러스로 인한 괴사성 근막염이었다. 의사는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뼈에는 전이되지 않아 절단은 하지 않았지만 연거푸 1, 2차 수술을 받고서야 겨우 염증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다리는 뼈와 근육만 남아 있는 상태로 피부를 덮어주는 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수술 시 필요한 생체 밴드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아빠의 종아리를 모두 감싸는 데 밴드 비용만 1000만 원 정도였다. 아빠는 병으로, 엄마는 병간호로 모두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에 있는 상태라 병원비가 걱정됐다. 병원의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해봤지만 아빠, 엄마가 소유한 작은 아파트가 걸림돌이었다. 병원비를 결제하기 전이었지만, 아빠 입맛에 맞는 음식을 사 나르고 각종 소모품 등을 구입하다 보니 병원을 오가는 일은 매일 돈이었다. 직장 내 근무 중 사고로 산재 신청도 했지만 불가 판정을 받고, 내 카드 여러 개로 할부 분할 결제를 하고서야 퇴원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우리는 사회복지사를 통해 알게 된 재난적 의료비 신청을 했다. 병원에 있을 때 비급여 항목에 대한 50% 지원이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받았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방문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신청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건강보험공단에서 우편물이 날아왔고 같은 날 아빠 통장에 재난적 의료비가 입금되었다. 우리는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다. 병원비를 분할한 카드 대금으로 나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직장도 잃고 아직은 통원 치료가 필요한 아빠에게 더는 병원비를 얘기할 수도 없던 차였다. 그렇게 어둡고 막막한 곳에서 희망의 빛을 보았고, 나는 그 빛을 따라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아빠의 병원비는 퇴원 당시 2000만 원이 넘었고, 통원 비용까지 합치면 2400만 원 정도 되는데 그중 770만여 원이 입금되었다. 우리는 행운의 숫자라며 기뻐했다.
1년 정도 후에 230만 원이 추가 입금되었고, 총 1000만 원이 지원되었다. 아빠는 퇴원 후 엄청난 노력으로 운동을 하며 수술한 다리 근력을 키웠고 71세에 당당히 재취업에 성공했다. 나는 그 뒤로 재난적 의료비 홍보대사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재난적 의료비에 대해 안내하고 도움을 받을 것을 권했다. 우리 가족처럼 막막한 상황 속에서 지쳐 있을 많은 환자가 재난적 의료비 지원으로 희망을 얻기를 바라본다.

“가난한 바닷가 소년의 여정(旅程), 나와 가족을 붙잡아 준 건강보험”
장려상 김승환

철없는 일곱 살, 친구들과 ‘말타기 놀이’를 하다 다친 후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홀어머니에 5남 1녀의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해 나를 병원에 데려갈 형편이 아니었다. 이듬해 읍내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이미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후 나는 꼽추 아닌 꼽추가 되었다. 또 가난 때문에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해 오랜 시간 방황했다. 그 후, 셋째 형의 권유로 목욕탕 수납 일을 시작으로 구두 닦는 기술도 배워 성실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서예 공부를 권유하신 인생의 스승을 만나 한문과 서예를 공부하고 한문서예학원을 운영하며 결혼도 하고 딸도 한 명 낳아 안정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운명은 내게 다시 한번 큰 시련을 주었다. 3~4년 전부터 하체가 점점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남은 생은 휠체어에 의지하며 사는 게 숙명이라고 받아들일 즈음, 저명한 척추신경외과 선생님으로부터 수술이 가능하며 예후가 좋으면 등이 펴지고 가벼운 조깅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희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역시 수술비가 문제였다. 내게 몇천만 원의 수술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꼽추’의 한을 풀 기회였지만 나의 현실은 역시 가난한 장애인일 뿐이었다. 눈물을 삼키며 아내와 함께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병원에 알아봤더니, 예전 같으면 1억 원가량 되던 수술비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이 시행되어 대폭 줄었다고 했다.

2019년 1월, 마침내 장장 12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지금은 재활병원에서 치료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인 내가 1년 넘게 치료를 받고, 아내마저 내 간호를 하느라 일을 하지 못해 세 식구의 생계가 막막했다. 그런데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대에 국가에서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지원금은 막혔던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다. 또 입원한 지 1 년이 넘어가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본인부담상한제에 의해 내가 낸 의료비 일부를 되돌려주었다. 이러한 제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2019년 7월부터 차상위계층으로 선정되어 입원비 감면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정부의 복지정책, 즉 비급여의 급여화, 재난적 의료비, 본인부담금상한제 등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우리 가족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기를 막아주었다. 1년 넘게 입원, 수술, 재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 지인, 그리고 우리나라 복지정책에 거듭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