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핫 스타

나이 오십에 머슬 퀸으로 등극한
배우 황석정
“건강할 수 있다면,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개성 있는 연기로 눈길을 끄는 배우 황석정이 또다시 일을 냈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닌 운동이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중년의 나이에 피트니스 선수로 도전한 것이다. 크로스핏 대회로 인생 최대 노출 신을 감행한 그녀를 만났다.

강보라

/

사진 황창원, SPOFIT

황석정

크로스핏 대회 후폭풍은 거셌다. 손바닥만 한 비키니를 입고 이두근을 자랑하는 배우 황석정의 모습은 신선하다 못해 낯설었다. ‘대단하다’, ‘멋지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예쁘지 않다’는 악플에도 시달려야 했다. 배우 황석정은 “건강할 수 있다면,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이전과 다른 신세계를 맛봤기 때문이다. 활력을 넘어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한 운동은 황석정의 몸과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미용을 포기하고 얻은 건강

2020년은 황석정에게 힘든 한 해였다. 방송 중 다친 허리와 발목 때문에 2년 동안 통증에 시달린 데다가 꾹 참고 준비하던 공연이 코로나19로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마음까지 무너져내렸다.

“속상할 때 몸까지 아프면 안 돼요. 그러면 진짜 전부 다 아파요. 나락까지 떨어진 느낌이랄까.”

가장이라 부담도 컸고, 몸이 계속 아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책임져야 할 식구도 있어 어떻게든 힘을 내야겠다 싶었지만, 상황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변화의 계기는 의외의 곳에서 시작됐다. “놀러 오라”는 양치승 관장의 말에 체육관에 들렀다가 PT 등록까지 하면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허리를 다치면서 찐 살을 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점차 운동의 묘미에 빠지며 크로스핏 대회에 나가겠다고 선언하자 주변의 반응이 예상보다 거셌다. “우리 엄마는 ‘미쳤다’고 했고, 지인들은 진지하게 ‘배우 이미지 상한다’며 만류했다”고 고백했다. 황석정은 주변의 반대 덕에 오히려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 이미지란 게 뭘까 생각했어요. 성형을 하고 예뻐져서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것? 배우도 인간인데, 열심히 살아온 나의 땀과 주름도 아름다운 것 아닐까 싶었죠.”

그렇게 결론 내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황석정은 도전과 용기가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고 안내자라고 말했다.

황석정
땀으로 기록된 노력의 시간

황석정은 지난 7월 26일 스포츠 채널 스포티비(SPOTV)가 주최하는 피트니스 대회 ‘예스킨 스포핏 그랑프리(YESKIN SPOFIT GRANDPRIX)’의 비키니 노비스와 핏 모델 종목에 출전했지만, 입상에는 실패했다. 그녀는 입상 실패의 경험을 ‘실연의 아픔’에 비유했다.

“짝사랑하던 상대에게 용기 내서 고백했는데 ‘너는 내 타입이 아니야’라고 거절당한 기분이랄까요? 또 대회를 준비하면서 주변에서 ‘꼭 상 타세요’라고 독려해줘서 ‘상을 타야 보답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여겼나 봐요. 입상을 하지 못하니까 같이 대회 준비를 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더라고요.”

드라마틱한 결과는 만들지 못했지만, 현실적인 결과에 용기를 얻은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 돌아보면 그녀의 인생 자체가 도전이었다.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한 황석정은 음악인으로서 탄탄대로를 포기하고 연기를 시작한 전력이 있다.

“저는 익숙한 인간형이 아니에요. 이 나이에도 처음 겪는 게 많은 사람이니까요. 적응이 잘 안 되고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 뭐든 애쓰면서 획득하며 살아왔어요. 역설적으로 그렇게 살아서 새로운 도전이 조금 쉬웠을까요?(웃음)”

본인 스스로 밝히는 매력은 ‘그나마’ 포기하지 않는 것이란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하게 되고, 마침표를 찍게 되죠. 잠시 쉬었다가 마침표를 찍어도 괜찮아요. 나를 잘 다독이며 내 흐름대로 움직이면 되죠. 굳이 남과 비교해서 스스로 다그치지 마세요. 우리가 1등 하려고 사는 건 아니니까.”

황석정
콤플렉스 극복의 지름길이 되어준 운동

단단하게 잡힌 근육에 감탄하며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저도 이런 몸은 처음이라…”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사실 거울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 근육이 울퉁불퉁한 몸은 처음이라 ‘이 몸으로 어떻게 살지?’ 싶을 정도로 낯설거든요. 근데 예뻐지려고 운동한 게 아니라 잘 살기 위해 도전한 것이라 결과에 만족하고 있어요.”

근력으로 달라진 일상도 체감하고 있다. 30분도 걷지 못하던 그녀가 3시간을 걸어도 끄떡없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근육의 힘은 활력을 넘어 삶의 자신감까지 찾아줬다. 그래서 황석정은 “힘을 내서 다시 한번 살아보겠다는 마인드 컨트롤에는 운동이 최고”라고 말한다.

운동은 콤플렉스 치유 효과까지 불러왔다. 노출이 부끄러워 반팔 옷도 안 입고 목욕탕도 가지 않는 그녀가 대회에 출전하며 비키니라는 생애 최대의 노출을 감행한 것이다.

“팔 짧고, 엉덩이 없는 옷. 제가 너무 창피해하는 부분인데, 비키니를 입어야 된다네요? 그래서 그냥 ‘에잇!’ 하고 했어요.”

절대 드러낼 수 없다고 여기던 심리적 저항선을 넘으니 마음의 결함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콤플렉스가 있으면 가리려고 애쓰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게 진짜 결함이 되고 비밀이 되는데, 드러내고 나니까 내 일부가 되면서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밝힌다고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었어요.”

거울 앞에서 운동하면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도 했다.

“예전에는 집에 거울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얼굴 보는 걸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제 몸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나 자신을 직면할 수 있게 되었죠. 그래서 집에 큰 거울을 갖다놨어요.”

도전을 했기에 더 아름다웠다

운동 자체도 힘들지만, 대회 출전을 준비하면 체중 관리를 위해 음식을 조절하고 근질을 다듬기 위해 수분도 제한할 정도로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황석정은 “먹으면 먹은 만큼 운동하면 된다”는 말을 기억했다. 그 말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운동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음식 조절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좋아하는 과자를 먹지 못한 것이었다고. 그래서 대회가 끝나자마자 마트로 달려가 폭풍 과자 쇼핑을 했단다. 지금은 방 안 가득 채운 과자로 그동안 못 먹은 한풀이를 원 없이 하는 중이다.

황석정은 운동을 하며 만난 새로운 인연과 환경에도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사람은 갑자기 슈퍼맨이 될 수는 없어요. 끊임없이 에너지를 교류해야 합니다. 침체된 나 스스로를 단련하고 운동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과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이 나이에 뭐 하겠어?’라는 자포자기 감정에 빠질수록 진짜 도전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이제 인생의 반 살았고 앞으로 반이나 남았잖아요. 갈 길이 머니까 침체되고 힘들수록 움직일 수 있는 길을 터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힘이 생기거든요. 자학하거나 채찍질을 하면 마음이 어두워지지만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고 움직이는 것만으로 밝아질 수 있어요.”

황석정은 지금까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될 때 도전을 택했다. 실패를 하더라도 과정 자체가 공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기가 노트와 같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실패 같아도 나를 적어 내려간 시간과 공기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어요. 누가 알아보지 않아도 내가 한 모든 행적은 고스란히 남을 테니까요.”

대단한 결과가 아니라도 황석정이 열심히 부딪히고 깨지며 도전하는 이유다. 중년의 머슬 퀸으로 등극한 그녀의 노력과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