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핫 스타

5년 만에 위암 완치 판정받은 배우 이정섭 “챔기름 한 방울이면
시아버지 손맛 완성이죠”

‘원조 요리남’ 이정섭. 지금이야 시대를 앞선 사람으로 평가하지만 당시에는 별종 취급을 받았다.
나긋한 말투 때문에 유약하다는 오해도 사지만 이정섭만큼 강한 사람도 드물 터. 그는 시대의 편견을 깨고, 나이 일흔에 위암도 극복해냈다.
외유내강의 산증인 이정섭을 만났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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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다영

배우 이정섭

이정섭의 말투는 독특하다. 그의 말투를 흉내 내며 “댁개슴살과 챔치를 챔기름에 버무려 먹는다”고 말할 정도로 유행하기도 했다. 이정섭은 요즘 그 말투 그대로 요리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이름하여 ‘챔기름TV’. 한 번만 들어도 잊히지 않는 작명이다. 구독자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특유의 손맛으로 뚝딱 만들어낸다. 완성한 음식은 촬영 스태프와 나눠 먹는데,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간 기자에게도 밥 먹고 가라며 붙든다. “밥정()만큼 끈끈하고 좋은 것도 없다”며 숟가락을 쥐여주는 그에게 푸근함을 느꼈다.

‘챔기름TV’로 소통하는 발랄한 70대

이정섭은 단정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한다. 요리도 제철 재료를 사용한 간단한 조리로 눈길을 끈다. 이른바 내공 깊은 고수의 요리다. 방법은 단순하지만 입담만큼은 화려하다. 재료를 설명할 때도 “일곱 살 먹은 사내애 주먹만 한 양파 2개를 준비하세요”, “남의 살(고기나 생선)을 쓸 때는 고추보다는 후추로 매운맛을 내야 덜 비려요”처럼 이정섭 특유의 감칠맛 나는 비유로 가득하다. 그의 또 다른 매력은 열정적이면서도 고집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촬영하다 “맛보는 숟가락 따로 쓰라고 해서 바꿨어!”라며 새침하게 대꾸한다. 맛보는 숟가락을 따로 쓰라는 구독자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나이가 들면 특유의 아집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처럼 깔끔하고 정확한 소통으로 보는 재미를 더한다.

넘치는 열정과 솔직함으로 설명하다 발끈할 때도 있다. 간장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정확히 알려달라는 요청에 “사람마다 간이 다른데 어떻게 맞추냐”며 “옛말에 짜면 조금 먹고 물켜고, 싱거우면 많이 먹으라 했다”고 버럭 한다. 애정이 실린 버럭이라 호통을 쳐도 밉지가 않다. 실제로 그는 ‘소고기 200g, 간장 2큰술’처럼 측량된 레시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후 탓에 북으로 올라갈수록 심심하고, 남으로 내려갈수록 간이 센 특징에 집집마다 다른데 이것을 어떻게 천편일률적으로 계량하느냐는 반론이다. 지역과 각 가정의 매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유일한 계량 단위는 ‘챔기름 한 방울, 똑!’이다. 이토록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요리 연구가를 어느 누가 미워할까.

배우 이정섭
며느리 입맛 사로잡은 시아버지 김치

그의 유별난 음식 사랑 덕분에 가족 모두 미식가 뺨치는 수준이다. 아들인 이진규 씨는 친구들 사이에 “입맛만 청와대”라 불릴 정도다. 어린 시절부터 “섭생이 중요하다”는 아버지 말씀대로 가격에 상관없이 맛있는 걸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식구들에게 좋은 것, 맛있는 것만 먹이고 싶던 아버지 이정섭의 마음이 그렇게 발현된 셈이다. 음식에 대한 엄격한 그의 기준은 예외가 없다. 시집온 며느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맘에 없는 소리를 못 해요. 특히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하려면 목소리가 안 나와. 요리 프로그램 리포터도 그래서 그만뒀거든.”

시부모 생신상에 올린 며느리의 미역국을 맛보고도 한마디 보탰다. “에미야, 국이 짜다” 정도의 일갈이 아니라 “미역은 너른하게 볶고, 매운맛은 후추로 내야 제맛”이라고 조목조목 일러주는 것이다. 기왕 해 먹는 거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트집이라면 기함할 일이지만, 갖은 반찬을 싸주며 건네는 조언이라 며느리도 고마운 마음으로 수긍한다.

“사위 사랑은 장모,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처럼 이정섭은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김치를 담근다. 서울 토박이가 만드는 중부식 김치는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그는 김치를 담글 때 강원도 영월의 고랭지 배추에 당도 높고 빛깔 좋은 비가림 고춧가루, 그냥 먹기에도 아까운 육젓을 쓴다. 그의 음식 사전에 ‘대충’이라는 말은 없다. 이정섭의 ‘시아버지 김치’는 제품으로도 출시했다. 이정섭의 손맛을 인정한 며느리가 김치 사업을 권한 것이다. 제품 출시 후 “시아버지 김치에서 친정엄마의 손맛이 느껴진다”는 웃지 못할 후기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부엌을 사랑한 종갓집 종손

지금이야 편하게 “내 요리 솜씨가 어머니보다 낫다”고 말하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시대였으니까. 게다가 이정섭의 집안은 종갓집 종손에 조선 11대 임금 중종의 후손으로 가풍이 엄했다.

4대가 함께 살며 증조할아버지와 일곱 살 때부터 겸상을 했다는 이정섭은 ‘어른이 세 번 권하기 전까지는 먹지 않는다’, ‘뚝배기는 어른의 오른쪽에 놓는다’는 밥상머리 교육을 착실히 받았다. 큰살림이라 굴비도 한 지게씩 구입해 손질했고, 미식가인 할아버지 덕에 민어와 도미 같은 고급 식재료도 자주 접하는 환경이었다. 문제는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해보기로 나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자는 생각이었는데,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나중에는 내가 만든 게 더 맛있으니까 할머니랑 어머니도 놔두시더라고요.(웃음) 물론 아버지한테는 많이 맞았어요. 사내 녀석이 부엌에 드나든다고….”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손맛 덕분에 요리책을 내기도 했다. 1998년에 집필한 첫 번째 요리책 <이정섭의 맛있는 우리음식>은 20만 부나 팔리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IMF 외환 위기 시기라 외식 대신 집에서 밥해 먹을 때라 더 인기였죠. 이모 친구들이 딸 준다고 제 요리책을 그렇게들 사더래요. 왜 사냐고 물으니 자기들이 해 먹는 거랑 똑같은 맛이 난다고 그랬대요.”

미국의 하와이 도서관에서는 이정섭의 요리책을 찢어가는 사람이 많아 ‘프린트해줄 테니 뜯어가지 말라’는 공지가 붙을 정도였다.

배우 이정섭
위암으로 체감한 국민건강보험의 힘

건강을 자신하던 이정섭은 2015년 위암 진단(1기 초기)을 받고 큰 충격에 빠졌다. 아흔이 넘은 노모에게 행여 불효가 될까 싶어 입도 뻥끗하지 않고 수술대에 올랐다. 그렇게 위의 4분의 3을 잘라낸 뒤에는 체중이 13kg 정도 빠졌다. 이후 좋아하는 요리로 기력을 회복한 이정섭은 암을 극복하며 국민건강보험의 힘을 피부로 체감했다고 한다.

“완치를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 내시경검사를 하는데, 담당 의사가 연수 때문에 오래 걸린다는 거예요. 암으로 등록한 지 5년 넘어가면 검사비가 열 배로 뛴다고 하네? 그래서 얼른 의사 바꿔서 검사했죠.” (*‘중증질환 산정특례’ 제도로 암을 비롯한 희귀‧중증난치질환자는 5년간 진료와 검사, 입원비 등 요양급여 비용 총액의 본인부담금을 5~10%만 부담하면 된다. 산정특례 등록된 질환으로 계속 치료가 필요한 경우 재등록을 신청할 수 있다.)
“예전에는 큰 병 걸리면 기둥뿌리 뽑혔는데, 지금은 세상 많이 좋아졌어요. 암도 부담 없이 치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암에 걸린 이후부터는 먹는 데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 고기와 달걀, 두부 등 단백질 위주로 섭취하고 밥은 현미와 보리, 서리태를 섞은 후 쌀은 20분의 1 정도만 넣어 찰기를 더하는 식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 꼭꼭 씹어 먹는 것. 오래 씹으면 소화도 잘될 뿐 아니라 어떤 음식이라도 단맛이 난다고.

건강 유지 비결로는 등산을 꼽았다. “올라가려고 애쓰지 않고 내려오려고 애쓰지 않으며, 내 템포와 속도대로 천천히 즐기는 것”이 포인트다.

“젊을 때는 앞서가는 사람 제치려고 기를 썼는데 힘만 들고 운동이 안 돼요. 등산 고수 친구가 ‘등산은 쉬는 맛’에 하는 거라고 알려주더군요. 그 뒤로는 버둥대지 않고 놀며 쉬며 오르고 있어요.”

이정섭은 “정상을 밟지 않아도 등산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의 등산 철학은 우리 인생에 건네는 귀한 조언 같다. 그의 말대로 각자 속도와 템포를 유지한다면 산등성이 어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맛있는 오늘을 사는 이정섭. 그 인생에 ‘챔기름’ 한 방울의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