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개선 1

우리나라 범죄 피해자 지원의 산증인,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김갑식 회장
“범죄 피해자를 보듬어야 진짜
건강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범죄 피해자 지원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앞장서온 이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강력 범죄의 피해자가 된 우리 이웃을 단단히 잡아주며 다시 힘을 내자고 용기를 북돋운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해온 사람, 바로 김갑식 회장이다.

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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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종범

범죄 피해자 위한 최초·최대 민간단체

지난달 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안에 있는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이하 연합회) 사무실에서 김갑식 회장을 만났다. 연합회는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 당시 국내 최초 민간이 주도하는 피해자지원단체 ‘김천구미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 전국 센터의 원활한 통합 업무를 위해 공식 출범했다.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최초이자 최대 민간단체인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범피센터)는 현재 전국에 59개 있다. 민간단체이지만 국가적 사업이고, 의무이므로 정부의 지원을 일부 받고 있는데다 검찰과 긴밀한 협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대검찰청 안에 자리한다. 김갑식 회장은 2007년부터 서울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으로 활동하다 2013년 연합회 회장직을 맡아 오늘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각 지역에 있는 범죄예방위원회 위원이었어요. 그때 범피센터와 사무실을 같이 썼는데… 센터 상황이 너무 어려웠죠. 범죄 가해자는 나라에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자활하라고 교육까지 시키는데… 정작 영문도 모르고 졸지에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상처를 추스르기는커녕 온갖 사회 편견에 시달리며 숨어 살기 바쁘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워 나라도 돕는 데까지 돕자 싶었어요.”

강력 범죄 피해자가 주 대상

범피센터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개인·가족·집단 상담과 병원 후송, 의료비 지원, 생계비·학자금 지원, 수사기관·법정 동행 등 피해자 지원에 대한 전반적 업무를 수행한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불안한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며,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지원 대상은 강력 범죄 피해자다.
“우리나라는 강력 범죄에 대한 규정이 있어요. 살인, 강도, 강간, 5주 이상 중상해, 방화 등이 해당하죠. 전국 59개 센터에서 우리 직원들이 피해자들을 직접 대면하는데, 강력 범죄다 보니 직원들조차 2차 트라우마가 생기는 고충이 있어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직접 피해를 당한 분들은 어떨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죠.”
사실 김갑식 회장은 의사로서 현재 동신병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보통 사람들보다는 심리적으로 단련되어 있는데도 늘 강력 범죄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적응하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김갑식 회장의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피해자들의 아픈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김갑식 회장이 이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 뜻이 아닌 일로 갑자기
피해자가 되었는데, 사회에서
외면받고 숨어 살아야 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보듬어야 우리 모두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 촉구를 위한 한국범죄피해자 인권대회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식, 턱없이 부족해

범죄 피해자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일반적으로 범죄 피해자라고 하면 당사자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 가족과 이웃에게도 범죄 피해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마련이다. 가해자는 한 명일 수 있지만 피해자는 한 명일 수 없는 게 바로 강력 범죄다.
“2008년 안양 초등학생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결국 세상을 떠났어요. 안타까운 사건 중 하나죠.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다 국가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불안감이나 상실감에 치를 떨죠. 나중에는 바깥출입도 못 하고, 전화만 걸려와도 놀라요. 일상으로 복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죠.”
김갑식 회장은 우리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범죄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때 선량한 이웃이던 모든 범죄 피해자가 그렇게 영문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졸지에 피해자가 된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이들을 보듬기는커녕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무엇보다 인식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아파트 우편함에 범피센터 우편물이 있으면 ‘저 집 몇 호가 범죄 피해자구나’ 하고 수군거려요. 그래서 우편물에 단체명을 쓰지 않습니다. 이처럼 범죄 피해자 지원은 조용히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해자 인권을 챙기다 피해자 인권을 잊은 건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볼 때입니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다링’ 안심 캠페인 행사 모습
피해자의 노후된 주거 환경 개선 사업 모습
범죄 피해자 치료 급여도 확대되길

김갑식 회장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인연은 깊다. 오랫동안 서울시병원회장을 맡으면서 공단과 함께 상생협의회를 통해 많은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다. 김갑식 회장은 <건강보험>과의 인터뷰에서도 범죄피해자에 대한 공단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현재 흉터 치료에 요양급여가 지급되지 않고 있어요. 피해자가 완전히 회복된다는 것은 결국 사회로의 복귀거든요. 그런데 황산 테러를 당해 얼굴이나 몸에 흉터가 있으면 사회에 제대로 복귀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범죄 피해로 생긴 흉터 제거 수술은 일반적 외모 개선 목적이 아닌 만큼 범죄 피해에 대한 회복 차원에서 하루빨리 건강보험 급여화가 되면 좋겠어요.”
김갑식 회장은 범죄 피해자를 돕는 방법을 하나라도 더 찾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갑식 회장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사회로 복귀해 선량하던 우리 이웃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피해자는 우리의 소중한 이웃입니다. 자기 뜻이 아닌 일로 갑자기 피해자가 되고, 사회에서 외면받고 숨어 살아야 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보듬어야 우리 모두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김갑식 회장은 마지막까지 범죄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앞으로도 계속 범죄 피해자들을 응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의 모든 말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