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트래블

천만 송이 연꽃의 향연,
부여

연꽃으로 이름난 곳은 많지만 그중 으뜸은 단연 부여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인공 연못인 궁남지에 가면 50여 종의 연꽃이 무려 1000만 송이나 피어 있다.
7월 이맘때면 형형색색 연꽃이 만개해 저마다 고운 자태를 뽐내며 보는 이를 황홀경에 빠뜨린다.

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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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한국관광공사 부여군

연꽃 가득한 부여의 여름
부여 10경 중 제7경인 백제 역사를 재현해놓은 백제문화단지 전경

천년 고도 부여는 사계절 내내 아름답지만, 여름의 한가운데 7월은 연꽃이 있어 더욱 수려하다. 연꽃으로 유명한 지역이야 많지만, 그중 으뜸은 단연 부여다. 부여의 연꽃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 궁남지로 가야 한다. 부여읍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삼국사기>에 “무왕 36년(634년)에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여 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들였고…”라는 기록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정원과 연못을 조성했다는 최초의 기록이다. 경주 안압지보다 40년이나 앞서 조성됐다. 당시 백제는 정원 조경 기술이 뛰어나 궁남지를 만든 백제 사람 노자공(路子工)이 일본으로 건너가 황궁의 정원을 꾸며 일본 정원 문화의 기원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또 궁남지는 백제 무왕의 탄생 설화와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런 궁남지가 7월이면 연꽃으로 뒤덮인다. 궁남지 일원 1만여 평의 너른 땅에 ‘전설의 연꽃’이라 알려진 세계 최고(最古)의 꽃 ‘대하연’과 새벽에만 꽃이 피는 ‘수련’, 연분홍 빛깔의 ‘홍련’까지 50여 종의 1000만 송이 연꽃이 형형색색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백제 예술의 최고봉, 금동대향로

궁남지의 여러 연꽃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대하연이다. 대하연은 1951년 일본 도쿄 대학교 운동장 유적지에서 발굴된 연꽃 씨앗 세 개를 발아시킨 것으로 발굴자 이름을 따 ‘오오가하스’라고도 불린다. 이 연꽃은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무려 2000년 전으로 확인돼 ‘전설의 연꽃’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10여 년 전 부여에 기증돼 우리나라에서는 궁남지에 최초로 심어졌다. 정리하자면, 1500년 된 인공 연못에 2000년 전 연꽃을 심은 것이다. 궁남지는 특히 아침 안개에 덮여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으니, 부여읍에 숙소를 잡고 아침 산책길에 둘러보길 권한다. 궁남지의 연꽃으로 부여의 여름을 만끽했다면 국립부여박물관으로 가보자. 부여는 잘 알다시피 백제의 혼이 담긴 고도로 어느 곳보다 문화·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군 전체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부여군에 있는 문화재는 245개에 이르고, 국가지정문화재만 52개이며, 이 중 4개는 국보다. 부여에서 꼭 봐야 할 곳을 선정한 ‘부여 10경’도 줄이고 줄인 게 열 군데인 거다. 그럼에도 그중 꼭 하나만 봐야 한다면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 전시하고 있는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다. 1996년 백제 왕실 절터였던 능산리사지 주차장 조성 공사 중 발견됐는데, 백제인의 탁월한 예술 감각과 공예 기술은 물론, 종교와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대표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2000년 전 연꽃 씨앗을 발아시켜 전설의 꽃이라 불리는 대하연
세계적 걸작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백제왕릉원
연꽃이 만개한 여름 궁남지의 아름다운 야경
천년 약수 한 모금으로 마무리

박물관은 복제품을 전시하는 경우도 많은데, 국립부여박물관의 금동대향로는 진품이다. 관람객이 금동대향로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을 따로 마련해두었는데, 직접 보면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괜히 백제 예술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오로지 금동대향로 하나를 보기 위해 부여를 방문한다고 해도 충분할 정도다. 연꽃도 만끽하고, 대향로로 감동도 받았다면 이제 시원하고 신비한 천년 약수 한 모금으로 부여의 여름 여행을 마무리해보자. 부여읍 서쪽의 백마강을 낀 부소산은 부소산성을 비롯해 낙화암, 고란사 등 여러 유적과 유물이 산재한 곳으로, 이곳 부소산성 숲은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삼천궁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낙화암(落花岩) 아래 절벽에 세운 고란사는 잊지 말고 찾아가보자. 고란사 뒤편에는 한 잔 마실 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고란약수’가 있다. 이곳 고란사 절벽에만 자라는 희귀 식물 고란초도 유명한데, 당시 백제의 궁녀들은 왕이 마실 물을 떠갈 때면 반드시 고란초 잎을 띄워 고란약수임을 증명했다고 한다. 고란사 가는 길은 얼마간 구불구불하고 가파르지만 고란초 한 잎 띄운 백제왕들의 시원한 천년 약수 한 모금은 이 여름 무더위에 잠시나마 해갈을 선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삼천궁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낙화암 근처 고란사 전경
국립부여박물관에는 백제금동대향로 진품이 전시돼 있다.
뿌리부터 꽃까지
부여 대표 연 요리 삼대장
  • 은은한 향이 매력적인 연잎밥
    사찰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며 먹던 음식으로 알려진 연잎밥은 대표적인 연 요리다. 연잎에 찹쌀과 연근, 잣 등 다양한 곡식과 열매를 넣고 쪄낸다. 부여의 식당들은 은은한 향이 매력적인 연잎밥을 주인공으로 건강한 밥상을 차려내는데, 연의 뿌리인 연근과 연잎으로 만든 다양한 찬을 선보인다. 연을 가장 풍성하게 맛볼 수 있는 방법이다.
  • 연꽃 한 송이를 온전하게, 연꽃차
    궁남지 근처에 ‘백제향’이라는 찻집이 있다. 이곳에 가면 새벽 해 뜨기 전 한 번도 피지 않은 연꽃의 봉오리를 따 연꽃 한 송이를 온전하게 음미할 수 있는 차를 마실 수 있다. 일명 새벽연꽃차라 불리는데, 한 송이가 큰 찻그릇 안에 활짝 피어 있다. 연꽃의 가장 깨끗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차로 손꼽힌다.
  • 부여에만 있는 연꽃빵
    연꽃무늬 기와 모양의 연꽃빵도 빼놓을 수 없는 부여의 여름 별미 중 하나다. 연꽃빵은 유일하게 연꽃차를 파는 백제향 찻집에서만 맛볼 수 있다. 이곳 주인이 특허받은 빵이기 때문이다. 부여 연꽃빵은 모양만 연꽃이 아니라 주인이 직접 무농약으로 재배하는 연꽃과 연잎을 끓여 우려낸 물에 연잎 분말과 찹쌀가루 등을 반죽해 만든 빵이다. 연꽃 향을 빵에 담기 위해 반드시 오전 8시 이전 연꽃이 꽃잎을 벌리기 전에 따서 사용한다.

백제향 충남 부여군 부여읍 사비로30번길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