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상식 노트

기온이 1℃씩 오를 때마다 저혈압 환자가 1.1%씩 늘어난다?더울수록 위험한 ‘여름 저혈압’

저혈압 환자에게 여름은 위험한 계절이다.
무덥고 습한 날씨로 혈관이 이완해 혈압이
떨어지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서
몸속 수분이 빠져나가 혈압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름 저혈압’이란
오명까지 붙었을까.

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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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 홍윤철 서울대학병원 예방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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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기온과 밀접한
저혈압

더운 여름이면 극심한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갑자기 픽 쓰러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옛날, 땡볕 아래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일장 연설을 들을 때면 학생 한 명은 꼭 쓰러지던 기억이나 폭염에 외출한 노인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뉴스, 그리고 사우나에서 장시간 땀 흘리다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는 경험 등도 말이다. 모두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어지럼증이나 의식 소실이 발생한 사례다. 고혈압은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이나 겨울에 위험한 반면, 저혈압은 기온이 오르는 여름에 더 위험하다. 더운 날씨에 많은 양의 땀을 흘리면서 체내 수분량이 줄고, 그로 인해 혈류량 감소나 탈수 증상이 일어나 혈압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혈압이 있는 사람은 여름철에 더 자주 어지럼증을 느끼고, 심하면 쓰러지기도 한다. 기온의 영향을 받기에 ‘여름 저혈압’이라고까지 일컫는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서울대학교 의대 예방의학과 홍윤철 교수팀은 서울·부산 등 국내 7대 도시 시민의 저혈압으로 인한 병원 방문 기록을 분석한 결과, 기온이 1℃씩 오를 때마다 병원을 방문하는 저혈압 환자 수가 1.1%씩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Environment International) 최근호에 소개되기도 했다.

심하면 호흡곤란,
구역질… 실신까지

혈압이 낮은 정도와 원인에 따라 다양한 예후와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부분 혈압이 수축기 혈압 90mmHg보다 낮으면 저혈압이라고 한다. 확장기 혈압은 수축기 혈압에 비해 환자의 기능장애를 동반하는 저혈압 상태를 잘 반영하지 않지만, 60mmHg 미만을 저혈압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수치보다는 환자 개개인의 나이, 동반 질환, 생리 기능에 따라 혈압이 낮아지는 것에 대한 적응이나 증상과 예후도 달라진다. 우리 몸은 혈압이 감소하면 피부나 근육 등 생명 유지에 중요하지 않은 장기에 대한 혈액 공급을 줄이고, 뇌나 심장·신장 등 중요한 장기로 보내는 혈액량을 늘리는 보상 작용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런 보상 작용도 한계에 도달하면 중요 장기로 혈액 공급이 감소하고, 기능장애로 이어져 생명이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이를 쇼크(shock)라고 한다. 주로 혈액 또는 체액 감소, 혈관 확장, 임신, 알레르기 쇼크, 약제 복용 등에 의해 발생한다. 자율신경계 장애를 유발하는 심근염, 심근경색증, 당뇨병, 만성신부전, 파킨슨병 등 기저 질환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저혈압의 주요 증상은 어지럼증, 두통, 피로감, 가슴 답답, 미열, 불규칙한 맥 등이다. 심하면 호흡곤란이나 발작, 구역질에 실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폭염에 외출
자제하고,
수분 보충 필수

저혈압은 크게 기립성 저혈압, 식후 저혈압, 신경 매개 저혈압으로 나뉜다. 가장 흔한 기립성 저혈압은 누워 있거나 앉았다 갑자기 일어날 때 어지럼을 느낀다. 식후 저혈압은 식사 후 많은 혈액이 소화를 돕기 위해 장으로 이동해 상대적으로 다른 장기의 혈액량이 감소함으로써 생긴다. 건강한 사람은 식후 장운동으로 혈액량이 감소하지는 않지만, 고령자나 특정 질환을 앓는 경우 나타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중년 여성이 충격적 소식을 듣거나 심하게 화를 내다 잠시 쓰러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신경 매개 저혈압 때문이다. 심장과 뇌 사이의 자율신경계 기능장애에 의한 것이다. 저혈압은 고혈압과 달리 출혈이나 탈수 등 일시적 이유로 발생하고 증상도 금방 호전되지만, 드물게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무더운 여름, 저혈압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수분을 지속적으로 충분히 보충해주는 것이 좋다. 만성질환이 있는 환자라면 주치의와 상의해 물을 마시는 것과 어느 정도 마셔도 되는지 꼭 상담해야 한다. 식사 또한 규칙적으로 해야 하며, 식후 고혈압의 경우 적은 양을 자주 먹되 탄수화물이 적은 식단이 좋다. 누워 있거나 앉았다 일어날 때는 천천히 움직이고, 일어나도 어지럽다면 증상이 사라진 뒤에 움직이는 것이 좋다.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면 무더운 날씨에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무리한 운동은 탈진과 쇼크 위험이 있으므로 현기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맨손체조나 필라테스 등 가벼운 실내 운동이 좋다.

“저혈압은 질병 아닌 상태, 꾸준히 관리해야 합니다”

Q 기온이 1℃ 오르면 저혈압 환자도 1.1% 증가한다는 사실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해 확인하셨다.
사실 저혈압과 관련해 기온이 높아지면 혈관이 확장되고 혈관이 확장되면 혈액이 확장된 혈관에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혈압 자체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물학적 가정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도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름 저혈압’이란 말을 당연하게 쓰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어 이번에 우리 연구팀이 정량적으로 확인 작업을 했다.

Q 연구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나?
기온이 1℃씩 오를 때마다 저혈압 환자도 증가하고 응급실이나 의료 이용이 많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전에는 이런 연구를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과학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Q 그렇다면 왜 기온이 저혈압에 영향을 주는 걸까, 땀도 저혈압에 위험한 요소라고 하던데.
당연한 거지만 우선 기온이 높아지면 체온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체온이 높아지지 않도록 열을 발산해야 한다. 열을 발산하기 위해서는 체표면 혈관이 확장되어야 열을 밖으로 전달하기 쉬워진다. 땀이라는 게 수증기의 기화력을 이용해 열을 배출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땀이 증발하면 열은 밖으로 전달되고, 체온이 유지될 수 있는 거다. 혈관 확장과 땀 증발로 인한 수분 손실은 모두 다 연결돼 있다. 혈관이 확장된다는 말은 중앙의 혈액이 체표면으로 많이 이동하는 거니까 그 중심의 혈압은 떨어지고, 수분이 많이 손실되면 혈액이 줄어드니까 혈압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홍윤철 서울대학병원 예방의학과 교수

Q 저혈압과 빈혈, 증상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고 혼동하기 쉽다.
증상만으로 구분하긴 어렵다. 빈혈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서 산소를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진 거고, 저혈압은 혈압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혈압이 떨어지면 우리 몸속 각 기관에 혈액을 공급해야 하는데, 펌프 작용이 덜 되니까 마치 빈혈처럼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 효과를 내다 보니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다.

Q 자가진단 방법은 없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빈혈을 일으키는 헤모글로빈 값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저혈압은 수시로 변한다. 사실 저혈압이라는 질병은 없다. 적정 혈압을 유지하는 기능이 떨어진 상태일 뿐이다.

Q 질병이 아닌 상태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관리를 잘해야 한다. 저혈압은 관리하는 거지, 약을 먹고 치료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고온의 날씨라면 고온에 노출되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저혈압이 잘 생기니 이런 경우 기저 질환을 치료하는 게 우선이다.

Q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더 위험하다는 말도 있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나?
훨씬 위험한 건 맞다. 역설적이지만, 고혈압 환자에게 발생하는 저혈압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고혈압이라고 하면 대개 동맥경화가 원인이다. 동맥경화증이라는 것은 혈관이라는 파이프관이 굳은 거다. 같은 혈액이라도 관이 굳고 탄력이 없으니, 물을 넣었다고 가정해보면 물을 조금만 넣어도 확 높아지고 조금만 빼도 확 떨어진다. 따라서 고혈압 환자에게 저혈압증 현상이 생기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Q 여름이 코앞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올해도 폭염이 예상된다. 따뜻한 날씨는 건강에 좋지만, 더운 날씨는 건강에 나쁘다. 특히 노인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데, 어르신들에게는 무더위가 위험할 수도 있다. 기온이 높을 때는 야외 작업을 삼간다든지,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한다든지, 쉼터를 찾는다든지 하는 등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도 이런 부분을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고, 국민도 기온이 건강에 영향을 마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