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핫 스타

베스티안 재단 설수진 대표“9년의 난임 스트레스,
봉사 활동으로 극복했어요”

화상 전문 재단 베스티안 설수진 대표는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화상 환자를 위해
뛴 10년의 세월 속에서도 미스코리아 설수진을
지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미스코리아
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간의 착한 행보가 이해된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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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다영

설수진

“아이를 기다리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죠.
요즘은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이 늘었다니 다행이에요.”

흔히 건강의 척도를 신체에 두지만, 마음 건강도 신체 못지않게 중요하다. 설수진 대표는 그런 점에서 진정한 건강 미인이라 할 수 있다.
“예뻐서 눈에 띄는 것은 순간이죠. 옆에 있을 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공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할까요.”
이런 철학 덕분에 화상 환자의 상처를 보듬으며 “당신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었다.

추리닝을 입은 우리 동네 미스코리아

설수진 대표는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답변할 때도 이미지를 신경 쓰느라 망설이거나 뜸 들이는 법이 없다. 어떤 질문을 해도 거침없고 솔직하다. 방송에서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는 바람에 남편 박길배 검사가 “방송에 그만 좀 나가라”고 만류할 정도다. 마치 가녀린 미스코리아에서 여장부로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그녀의 솔직함은 답변에 그치지 않는다. 동네에서도 민낯에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을 입고 활보한다. 생활인으로서 자연스러운 행동일 터.

“제아무리 미스코리아라도 100% 꾸민 모습으로만 살 수는 없잖아요. 저도 아이 키우는 엄마다 보니 급할 때는 집에 있던 차림 그대로 나서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보는 사람들이 더 놀라요. 미스코리아가 이러고 나가도 되느냐고 하면서요.(웃음)”

미스코리아 출신인 그녀가 노화와 갱년기를 대비해 챙겨 먹는 것은 석류 제품과 콜라겐이다. 운동도 가볍게 뒷산을 오르거나 맨손체조처럼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즐긴다.

나이 마흔을 기점으로 ‘외모의 평준화’가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나이가 들면 미모가 빛을 바랜다는 뜻이다. 설수진 대표도 아들을 통해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한번은 아들이 어떤 선생님이 예쁘다고 칭찬하기에 ‘엄마는?’ 그랬더니 ‘엄마는 오래된 사람이잖아’라고 하는 거예요.(웃음) 늙었다는 표현 대신 오래된 사람이라고 말해서 그냥 웃고 말았죠.”

임신을 포기한 순간 찾아온 아이

설수진 대표는 자신의 여러 타이틀 중 ‘엄마’라는 호칭을 가장 좋아한다. 휴대폰에도 자신의 이름을 ‘설연맘’으로 저장해두었다. 가장 친한 친구로 아들 박설연(12) 군을 꼽을 정도다. 설 대표는 결혼하고 9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오히려 임신을 잊고 화상 환자를 지원하는 활동에 매달릴 때 아이가 찾아왔다고 고백했다.

“난임 부부에게 임신에 대한 감정적 에너지를 다른 곳에 사용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저도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어른들이 권하는 대로 민간요법부터 안 해본 게 없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아이 낳는 데만 집중하면 그 문제에 함몰돼 다른 것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은 환경은 임신을 저해하는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요즘은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이 늘어서 다행이에요.”

(2020년부터 시술비가 비싼 신선 배아 체외수정 1회 최대 지원금이 기존 50만 원에서 11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중위 소득 180% 이하에 해당 시 지원)

“임신 스트레스 때문에 살이 많이 쪘을 때 동생(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설수현)의 임신 소식을 들은 아주머니들이 제 얘긴 줄 알고 제 배를 만지면서 축하한다고 하신 적도 있어요.”

임신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화상 전문 재단 베스티안 대표를 맡아 전국을 돌아다닐 때 설연이가 찾아왔다. 이미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한 터라 설 대표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한다.

“5개월 됐을 때 유산한 적도 있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나와 만나게 될 아이라면 호들갑 떨거나 애걸복걸하지 않아도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죠. ‘잘 버티다 올 수 있을 때 와라’ 하는 심정이었다고 할까요.”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엄마의 화상 지원 활동에 따라다닌 아이는 화상 환자들의 멋진 친구로 성장했다.

화상 환자와 함께한 10년

화상 재단을 맡기 전 설수진 대표는 EBS에서 독거노인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우연히 반신불수 독거노인의 사연을 접했다. 연탄불을 갈다 연탄재가 떨어져 다리에 불이 붙었는데, 마비 때문에 모르고 있다가 대퇴부까지 불이 올라왔을 때 손으로 털어내다 팔다리를 절단한 사연을 들은 것이다. 화재가 몸과 마음, 재산까지 앗아갔다며 절규하는 노인을 보면서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게 화상의 참혹함을 목도했고, 누군가 앞장서서 신경 쓰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설 대표의 사촌 동생이 베스티안 병원에서 의사로 재직한 것도 인연의 끈이 되었다. 화상 환자를 위한 활동을 시작한 뒤 처음에는 환자를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환자를 보고 처음엔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일회성이 아닌 제 진심을 알리고 싶어 방송 활동을 접고 이 일에만 매달렸어요. 그 덕에 지금은 이식수술한 환자들의 손을 잡고 ‘어디를 손봤기에 이렇게 예뻐졌어?’ 하는 농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죠.”

화상은 상처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럽지만, 환자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에 더 큰 상처를 받곤 한다. 과거에는 화상으로 피부가 뭉개진 것을 보고 나병 환자로 오해해 멸시하기도 했다. 성인의 경우 화상을 당하면 구축(화상에 의해 근육이 오그라드는 현상)이 오지만, 어릴 때 화상을 당하면 성장하면서 뒤틀림 현상이 일어나 계속 수술해야 한다. 아이들은 화상으로 흉터가 생기거나 뒤틀린 친구를 보면 징그럽다며 피하고 놀리는 일도 많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인식 개선 교육이다. 설 대표는 재단과 함께 인식 개선 교육부터 화상 환자의 치료비 지원, 어린이 예방 교육 등 사업에 힘쓰고 있다. 화상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는 것이다.

소방공무원의 노고에 감사하고 힐링 시간을 가진 ‘설수진의 콘서트 아름답게 with 소방119’행사 모습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때가 있다

미스코리아와 방송인으로 화려한 시간을 보낸 것 같지만, 설수진 대표의 인생 그래프에도 굴곡의 시간이 있었다.

“남편이 지방 발령으로 인간관계를 물갈이하는 시점이 있었어요. 유산도 계속되었고, 일도 잘 풀리지 않았죠.”

설수진 대표는 “인생에도 체로 거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구나. 미래를 준비하며 시간을 알차게 보내자고 마음을 다독였죠. 차를 마시거나 서예와 명상을 하며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어요.”

돌이켜보니, 임신으로 고생하던 9년의 시간도 육아에 묶이지 않고 혼자 가뿐하게 모든 것을 즐기는 기간이었다. 설 대표는 해와 달이 뜨고 지듯이 사람마다 자신만의 흐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당부한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무게를 지며 인생을 살잖아요.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니까 스스로를 가장 많이 사랑하고 격려해줘야죠.”

흔히 미인을 예쁜 꽃에 비유하곤 한다. 미스코리아 설수진은 온실의 화려한 장미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온 지금은 그윽한 향을 품은 들장미가 되었다. 고난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내면의 향기를 얻은 것이다. 선한 향기로 화상 환자의 아픔을 함께할 그녀의 앞날을 응원한다.

설수진 대표가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위험한 물건 익히기, 화상 시 응급 대처법, 화상 친구 긍정적으로 보기 등 교육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