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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박기량이 전하는 긍정 바이러스“배구 코트에서 인생 2막을 엽니다”

찰진 내레이션으로 사랑받는 국민 성우 박기량.
그가 <VJ특공대> 톤으로 “맛있는 육수가
콸콸콸~”이라고 외치면 당장이라도 식당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TV에서 듣던 박기량의 목소리를 요즘은 배구
코트에서도 들을 수 있다. 아마추어 배구 클럽
감독과 코치로 활약하며 인생 2막을 연 것이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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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다영

박기량
배구를 사랑한 남자, 성우 박기량

토요일 오후 3시, 서울 성동구의 한 실내 체육관은 서브와 스파이크 마찰음으로 가득 찬다. 배구공이 코트 바닥에 튕기는 소리를 가르며 “블로킹!”, “서브!”라고 외치는 박기량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명쾌한 발음과 발성으로 지시 내용이 고막에 꽂히는 기분이다. 국민 성우다운 특급 전달력이다.

박기량이 코치로 활동하는 성동하나클럽은 20여 명의 멤버로 구성된 생활체육 배구 클럽이다. 엘살바도르부터 중국, 한국 등 다양한 국적과 연령의 사람들이 배구 하나로 뭉쳤다. 이들은 온몸으로 공을 받고, 때리고, 막으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것이 배구의 묘미다. 박기량은 그런 배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성동하나클럽 코치로, 일요일에는 용마배구클럽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배구는 제가 미국에서 살 때부터 즐기던 운동이에요. 미군 부대에서 근무할 때 배구 대회에 주 공격수로 참가해 2위까지 올라 미 공군 참모총장상을 받기도 했죠.”

미국에서 정통 배구를 즐기던 박기량은 한동안 배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KBS 2 예능 프로 <우리동네 예체능> 배구 편에 출연하면서 배구의 즐거움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조기 축구도 즐겼는데 마흔이 넘으면서 몸 대 몸을 부딪으며 뛰는 게 버겁더라고요. 배구는 블로킹을 할 때 부상당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면 되니까 부담이 훨씬 덜해요.”

강스파이크는 인내와 헌신으로 만든다

배구의 꽃은 스파이크다. 힘차게 바닥을 차고 올라가 공중에서 상대 코트로 내리꽂는 강스파이크는 탄성을 자아낸다. 스파이크는 화려한 개인기처럼 보이지만 팀원 모두가 협력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배구는 바닥에 공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세 번 안에 상대 코트로 넘기는 것이 기본 경기 규칙이다. 한 사람이 공을 연속으로 접촉하면 반칙으로 실점하기 때문에 동료가 디그(또는 서브리시브)를 하고 이어 세터가 토스를 올려줘야 비로소 공격이 이루어진다. 리시브와 토스, 그리고 공격. 삼박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한순간에 무너진다. 아름다운 한 방의 공격을 위해 모두가 희생하고 헌신하는 믿음과 배려의 스포츠인 것이다.

“스타플레이어가 되려는 욕심이 경기를 망쳐요.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동료를 믿고 기다리며 버텨야 공격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배구는 우리 인생과 닮은 것 같아요.”

성동하나클럽 팀원들은 박기량 코치를 ‘꾸준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그는 창단 후 2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배구 코칭을 했다. 현역 성우로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배구 코치로서도 성실하게 역할을 다해온 것이다. 팀원들이 “매주 체육관에서 보는데 유명한 분이라 깜짝 놀랐다”고 말할 정도로 소탈하고 친근한 배구 코치다. 박기량은 배구와 닮은 구석이 많다. 기량 좋은 스타플레이어지만 협동하고 조화를 이룰 줄 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그에게 배구는 필연인지 모른다.

언제나 현역, 성우로 살아온 38년 세월

박기량은 성우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신경 써야 하는 연기자와 달리 성우는 대본과 마이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이 되거나, 팔이 쭉쭉 늘어나는 가제트 형사로 변신할 수 있고, 때로는 한 마리 표범이 되어 세렝게티 초원을 달릴 수도 있다. 이처럼 연기의 한계가 없다.

“연기자는 얼굴이 알려지면 행동에 제약이 따르지만, 성우는 입만 열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거든요. 일상생활을 할 때는 아주 큰 장점이죠.”

박기량은 KBS 2 인기 프로 <VJ특공대>를 진행하는 18년 동안 출연료를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청자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성우의 공익성을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IMF 외환 위기 시절 장문의 사연을 보낸 실직 가장의 편지를 지금도 기억한다.

“사업 실패로 하루에도 수십 번 죽음을 생각하는 가장인데 MBC <성공시대>에 나오는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일주일만 버텨보자’고 다짐한다는 거예요. 편지를 읽으면서 펑펑 울었죠. 어떤 마음으로 마이크 앞에 서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신 분이에요.”

박기량은 그 후로 녹음을 허투루 한 적이 없다.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마이크 앞에 선다.

실력으로 승부하면 미련이 없다

박기량은 성우로서 시대를 대표하는 88올림픽 특집, 강변가요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쟁쟁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최정점에 섰지만, 과거와 달라진 지금의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좋아하는 자동차에 비유해서 이야기한다.

“편도 8차선 도로에서 1차선으로 쌩쌩 달리더라도 신형 엔진을 단 성능 좋은 자동차가 나타나면 2차선, 3차선으로 비 키는 게 당연해요. 나를 추월했다고 해서 상향등을 켜거나 버티고 있으면 둘 다 위험하죠. 미련 없이 비켜주고 2차선, 3차선에서 내 속도로 정정당당하게 달려가면 됩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늘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스스로도 지금까지의 경력이나 인기를 이용해서 이익을 취할 생각이 없다.

“제작진이 후회하지 않는 매력적인 상품이 되려고 노력해요.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그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긍정맨’이다. 모친이 위독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안면 마비가 온 상태에서도 <건강보험> 인터뷰에 응할 정도다.

“구안와사가 오면 스케줄을 취소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얼굴로 앙드레 김 패션쇼 MC도 본 걸요. 발음이 조금 샐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진행하니까 다들 격려해주시더라고요.”

이렇듯 세상만사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안면 마비로 싸매고 누우면 큰 병이 되지만, 아무 일 아니라고 툭툭 털고 나서면 정말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박기량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그의 목소리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성우 박기량의 긍정 바이러스

물처럼 순리대로 살자 살다 보면 거슬러 오르지 못하는 일도 있다. 커다란 바위는 옆으로 비켜서며 지나가도 된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집안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짜증 나지만,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활기차고 건강해진다. 운동을 할수록 집안이 화목해지고 깨끗해지는 기적이 콸콸콸~.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애정 표현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 자주 표현해야 일상이 된다. 인생의 동반자,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