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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오정해의 행복학개론“인생은 소리가 꽃피는 무대 같아요”

소리꾼의 소리에는 인생이 담긴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소리의 빛깔이 달라지는 것이다.
오정해의 소리는 이른 봄날의 진달래 같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화사하게 피는
강인한 분홍 꽃말이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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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대원

소리꾼 오정해

오정해를 만난 곳은 고양시 명지병원 대강당이었다. 병원에 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10년 넘게 환자들을 위한 송년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친정어머니가 치료를 받은 병원이고, 여기서 돌아가셔서 친정 같고 외가 같은 느낌이에요. 이제는 송년 음악회에 와야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분이 들어요.”

치유 음악회로 세운 10년의 기록

오정해는 명지병원 외에 의료기관의 순회공연에도 자주 참여한다. 암 투병하는 친정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병원 생활의 고달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정해는 병원에서 웃고 박수치며 즐기는 것만으로도 보약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음악의 치유 능력을 경험한 적도 있다.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한국무용 전공자에게 살풀이 음악을 들려주자 오른팔이 저절로 반응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어떤 물리치료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살풀이 음악이 해낸 것이다. 앞의 사례처럼 기적을 바라지는 않지만, 병원 생활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면 하는 마음을 담는다.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링거를 꽂고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좌석 옆에 링거 줄이 주렁주렁 매달린 채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시작 전 “박수는 안 치셔도 된다”는 주의 사항도 잊지 않았다. 링거 맞는 것을 잊고 열렬히 박수를 치다 주삿바늘이 빠지는 일이 다반사이 기 때문이다.

“환자들이라 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고,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하세요. 그래서 천천히 시작하고 공연 시간도 가능한 한 시간을 넘기지 않으려 해요.”

환자들을 위한 치유 음악회는 비운 것을 채우는 특징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어 있던 좌석이 서서히 차고, 비어 있던 마음도 서서히 차오르기 때문이다. 링거 줄과 간간이 들리는 환자들의 기침 소리마저 감동으로 느껴지는, 참 이상한 콘서트였다. 헤어질 때는 ‘다음 송년 음악회에선 절대 만나지 말자’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소리꾼 오정해
눈칫밥으로 배운 소통의 짬밥

오정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목포시립국악원에서 판소리, 가야금, 무용을 배웠다. 중학교 1학년 때 전주대사습 놀이에서 최연소 장원을 차지하면서 명창 김소희 선생의 제자가 됐다. 중1부터 고3까지 스승의 집에서 기거하며 소리를 배웠다. 오정해는 김소희 명창이 직접 가르친 마지막 제자이기도 하지만 쫓겨나거나 도망가지 않은 유일한 제자이기도 하다. ‘사람이 되어야 소리도 할 수 있다’는 가르침 아래 모든 것을 솔선수범하는 스승이었다. 스승이 빗자루를 들고 먼저 방바닥을 쓰는 식이다. 아차 싶어 “선생님, 빗자루 주세요” 하고 따르면 “늦었다”고 말하며 직접 집 안 구석구석을 쓸며 엄한 가르침을 줬다. 어린 오정해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쫓아다니며 스승 곁에 섰다. 그렇게 인간 오정해가 만들어졌다.

“그때 먹은 눈칫밥 덕분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눈이 생겼죠. 남의 부모 밑에서는 내 목소리를 내기보다 다른 사람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거든요.”

그 덕에 오정해는 관객과 출연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눈치 빠르게 알아채는 소리꾼이 되었다. 좋은 소리를 하려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속 응어리를 제대로 풀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궤도를 바꿔놓은 영화

<서편제> 오정해의 인생에서 <서편제>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목포 출신인 오정해는 1992년 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서 진으로 뽑힌 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소리꾼 ‘송화’ 역을 연기하며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와 뮤지컬 무대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서편제>의 흥행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사람들이 “판소리가 어렵지 않고 좋다”고 말해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촬영 당시부터 또래 스태프들이 “가사가 이게 맞나요?”라며 쭈뼛거리며 물었다. 소리가 너무 좋아서 들리는 대로 가사를 적어봤다는 것이다. 소리를 하던 그조차도 판소리는 나이 지긋한 어른이나 마니아층의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젊은 사람들의 긍정적 반응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정해는 <서편제> 이후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이 좋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행동이었다. “형식을 벗어나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판소리는 왜 항상 한복 입고 멍석 바닥에 병풍 앞에서 노래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죠. 편한 차림으로 좀 더 가깝게 대중 앞에 선다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어요.” 판소리를 하기 위해 출연한 TV 프로그램 <열린음악회>에 앙드레김의 투피스를 입고 간 적도 있다. 당시 담당 PD가 오정해의 차림새를 보고 경악했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소리는 바르게 하되 옷은 편하게’가 오정해의 철학이다. 탄탄한 기본기 때문에 그 어떤 변주와 변형에도 자유로울 수 있다. 오정해는 그렇게 대중 속 깊이 스며들었다.

오정해가 전하는 행복학개론

오정해는 진도아리랑을 부르기 전 “이 노래는 웃으면 즐거운 노래, 울면 슬픈 노래”라고 소개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하는 후렴구는 우울할 때는 구슬프게, 기쁠 때는 흥겹게 들렸다. 같은 노래인데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 삶도 어쩌면 진도아리랑과 같다.

“저는 만족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발로 걷고, 밥을 잘 먹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한 일이죠. 지금에 만족하고 감사하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아요.”

사실 우리는 만족하는 삶에 익숙지 않다. 만족을 나태함과 동일하게 여겨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고 채찍질하는 분위기다. 오정해는 ‘이것만 해도 좋구나’ 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때 인생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때는 병원 로비에 앉아보라는 조언도 한다. 저마다 다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면 건강 하나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프더라도 치유할 수 있으면 축복인 것이죠.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어요.” 오정해가 내는 소리의 근원은 여기에 있다. 환자들도 어깨 춤을 추게 만드는 긍정과 치유의 소리. 그의 소리가 오늘따라 더 귀하게 느껴진다.

소리꾼 오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