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핫 스타

시니어 모델 곽용근 ‘대기업 임원에서 런웨이 주인공으로’

그는 프로였다. 셔터 소리에 맞춰 시시각각
포즈를 달리했다.
이제 그만 찍자고 손사래를 치는
여느 시니어와는 확연히 달랐다. 누가 뭐래도
그는 완벽한 프로였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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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다영

모델 곽용근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는 곽용근(81) 씨는 ‘실버계의 차승원’으로 불린다. 177cm 키에 70kg, 허리둘레 32인치를 팔십 평생 유지하고 있다. 긴 팔다리에 우월한 비율,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은 모델을 하기에 완벽한 체형이다. 지금도 배가 나오면 안 된다며 헬스장에서 매일 운동하고 소식을 하며 식단 조절을 한다. 경력 15년 차 시니어 모델 곽용근 씨는 자양강장제, 유명 통신사 브랜드, 가전제품 등 다양한 CF를 거치며 실버 모델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프로 모델이 사는 법

그가 대중에게 ‘할아버지 모델’로 각인된 광고는 여럿이다.
자양강장제 광고에서는 설레는 마음으로 손주들을 기다리다가 장난꾸러기 손주들이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자 망연자실하는 할아버지로 등장했고, 통신사 광고에서는 “할아버지 집에는 <뽀로로> 안 나오잖아”라며 집에 가는 손주를 보며 눈물 흘리는 감정 연기까지 선보였다. 한창때는 가수 이효리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기도 했다. 2004년 지면 광고로 모델 활동을 시작한 곽용근 씨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자가 드문 시니어 모델계의 보석이라 할 수 있다. 시니어 모델이라고 우습게 여겼다가는 큰코다친다.
“체격 조건은 기본이지. 시니어 모델이라도 등이 굽거나 다리가 휘면 탈락이야.”
나이가 들면서 퇴행성관절염으로 등이 굽거나 다리가 휘는 경우가 있는데, 모델로는 치명적 조건이다. 곽용근 씨가 헬스장에 가고, 매일 3~4시간씩 열심히 산보를 하는 것도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특수한 근무 조건으로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의류 광고는 두 계절 빨리 가니까 겨울에 여름옷 입고 촬영하는데, 노인네들한테는 무서운 일이지. 촬영 끝나면 꼭 찜질방에 가서 몸을 뜨겁게 지져야 해.”
프로다운 깔끔한 일 처리로 모델료도 처음보다 10배 정도 올랐다.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으니 일을 할 때도 신바람이 난다.
“늙어서도 일을 한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지. 내가 번 돈으로 손주들에게 용돈 주는 것이 참 즐거워. 그 녀석들 대학 입학할 때도 등록금 척척 낼 수 있으니 좀 좋아?”

예순이 넘어서 뒤바뀐 인생

곽용근 씨는 ROTC 장교 출신으로 한양대학교 화공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임원까지 지냈다. 한때는 강남에 40억 원 상당의 빌딩을 소유할 정도로 큰돈을 벌기도 했다. 모델의 길로 들어선 것은 IMF 외환 위기로 회사에서 퇴직한 뒤였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컴퓨터나 배워볼까 하고 집 근처 서초노인복지관을 찾았다. 그러다 운명처럼 모델 교육 프로그램을 본 것이다. 그 뒤로 아내에게는 컴퓨터를 배우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모델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그곳에서 워킹, 표정, 연기, 패션 등을 익히며 과거에는 느끼지 못한 행복을 느꼈다. 모델 활동을 하면서도 한동안은 아내에게 비밀로 했다. 연예 활동을 ‘딴따라’로 인식하던 세대라 아내의 반감을 이해했다.
“처음에는 사돈댁에서 알까 봐 반대하더라고. 근데 내가 재미있게 활동하고, 모델료도 갖다주니까 이제는 섭외 들어오면 ‘이번에는 얼마짜리예요?’ 하고 물어봐. 허허허.”
손주들에게도 모델 할아버지는 선망의 대상이다. 연예인을 꿈꾸는 손주 녀석은 촬영장에 따라오기도 한다고. 양복 입고 회사원으로 근무하던 과거를 생각하면 모델로 일하는 지금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모델로 인생 2막을 사는 그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곽용근 씨가 출연한 통신사 광고의 한 장면

여든이 넘은 촬영장 막내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 행세를 해야지, 늙었다고 늙은이 행세하면 안 돼!”
곽용근 씨의 머릿속에는 ‘어른 대접’이라는 게 없다. 일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이다. 촬영장에서도 그의 철칙은 ‘감독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이다.
“출연자를 나무라고 하면, 많은 나무가 모여서 숲을 만드는 거잖아. 감독은 전체 그림(숲)을 보고 만드는 사람이니까 출연자인 내가 맞추는 게 당연하지.”
그는 젊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일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한다. 어른 대접도 누군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교만하지 않고 나를 내려놓으면 저절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마인드를 지니고 있기에 곽용근 씨는 현장에서 인기 만점이다. 일을 하다 보면 메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도 있다.
“의욕은 가져도 욕심은 내지 말자고 생각해. 욕심낸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노인네들 얼굴 나와봐야 2~3초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불태우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100명에 가까운 사람이 한 작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한다. 곽용근 씨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촬영장에서 인생을 배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은 건강

시니어 모델로 승승장구하다가 건강 문제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대상포진이 와서 약을 먹었는데, 약이 너무 셌는지 에스컬레이터 타고 가다가 정신을 잃고 고꾸라지고 말았어. 그 과정에서 머리를 부딪쳐 뇌 혈전으로 응급수술을 했지.”
모델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몸이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상포진과 뇌 수술로 잠정적인 휴식기에 들어갔다. 여든을 앞둔 나이라 언제 다시 모델 활동을 하게 될지 미지수였다. 다들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곽용근 씨는 다시 일어섰다. 남양주 자택과 가까운 광릉수목원으로 매일 3~4시간씩 걸으며 재활 치료를 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정신이 없었지만, 빠른 조치로 큰 후유증 없이 일어선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으로 건강을 꼽았다.
“우리나라 국민은 진짜 복 받은 거야.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사람이 없잖아. 건강보험이 잘되어 있으니까 큰 수술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고 말이야.”
대상포진의 통증과 뇌 수술 흔적은 남았지만 그래도 그는 웃는다.
“사람은 누구도 앞을 내다볼 수 없지. 부도 맞을 줄 알면 누가 사업하고 일하겠어. 내 잘못이 아니라도 누구든 어려워질 수 있지. 그래도 알 수 없기에 인생이 재미있는 거야. 나도 내가 모델로 활동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깜깜한 어둠에도 빛은 찾아오고, 낭떠러지에서도 꽃은 핀다. 곽용근 씨의 인생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병원에 자주 드나드는 나이가 되면
저절로 대한민국 만세가 나와.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사람이 있나,
약이 비싸서못 먹기를 하나.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정말 세계 최고야.”
모델 곽용근
시니어 모델 곽용근의 패션 시크릿

젊은 감각으로 입어라 패션에는 나이가 없다. 노년에 입는 청바지는 더 멋지다.

패션 소품을 활용하자 모자와 머플러는 보온에도 좋지만, 패션 효과도 만점이다.

편한 옷보다 멋진 옷을 입자 옷을 잘 입는 것은 스스로를 대우하는 일이다. 가끔은 멋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