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키니스장난감병원장난감 수리 어벤저스,
고장 난 장난감은 우리에게 맡겨라!

만화영화를 보면 로봇을 만들고 고치는 백발의 박사가 종종 등장한다.
키니스장난감병원에 가면 이런 박사들이 계신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장난감 박사들이다

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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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다영

장난감 수리 어벤저스 단체사진
SOS, 장난감이 고장 났어요!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안다. 망가진 장난감을 고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비싼 수리비도 문제지만, 비용은 차치하고 수리를 맡아주는 곳이 없다. 일반 전자 제품이야 다른 상품으로 바꾸면 되지만 아이가 애착하는 장난감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파는 곳은 많지만 고치는 곳은 드문 것이 장난감 시장의 현실이다. 장난감 AS를 문의하면 키니스장난감병원을 안내해주는 업체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키니스 장난감병원의 게시판은 “다시 구할 수도 없는 장난감이라 못 고치면 어떡하나 마음 졸였는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는 부모들의 감사와 응원이 쏟아진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은 2011년 인하공업전문대 교수 출신 김종일(73) 이사장이 은퇴 후 동료 교수들과 의기투합해 세운 곳이다. 키니스(kinis)라는 이름도 철학적 사유를 거쳐 정했다. 키드(kid)에서 ‘ki’를 따고, 실버(silver)에서 가져온 ‘si’는 ‘is’로 글자 순서를 뒤집었다. 여기에 어린이와 실버 세대가 함께한다는 뜻으로 가운데 ‘n(and)’을 넣어 연결했다. 특히 가운데 ‘n’은 로봇의 몸체 모양 로고로 형상화해 장난감을 매개로 이뤄지는 세대 간 공존의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도 65세 이상 실버 인력이 어린이들의 장난감을 수리하고 있다. 장난감이 ‘아프다’고 표현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병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난감 수리 절차도 병원 접수 절차와 비슷하다. 수리를 의뢰하기 위해서는 ‘장난감 진료 ROOM’에서 ‘입원 치료 의뢰서’ 양식에 따라 고장 난 장난감의 사진과 증상을 올려야 하고, 진료 예약 번호에 따라 수리 절차가 진행되는 식이다.
모든 진료는 실명제로 운영되는데 장난감을 치료한 박사가 수리를 마치고 직접 서명까지 한다. 만약 고치지 못하더라도 이유를 적고 서명을 한다. 무료 진료지만 책임감은 전문의 못지않다.
김종일 이사장은 “국내 장난감업체는 중국에서 장난감을 수입하거나 유통만 해 수리 서비스를 잘 하지 않는다”며 “정든 장난감이 망가져 속상해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난감 없이 자라는 아이가 없도록 하자’라는 다짐으로 동료들과 시작한 장난감 병원은 어느새 규모가 커져 지금은 8명의 박사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용자는 매년 늘어 지난해 수리한 장난감만 1만 개가 넘는다. 장난감 병원의 박사들은 하루에 10건 안팎의 수리 의뢰를 해결하고 있다. 장난감 수리점이 흔치 않은 탓에 전국에서 몰려드는 의뢰로 쉴 틈이 없다. 봉사로 시작한 일이고 무료 수리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박사들의 보수는 게시판의 댓글과 택배 상자 안에 있는 감사 편지가 전부다. 감사 편지를 들어 올리며 함박웃음을 짓는 백발의 박사들을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공구가 가득한 장난감 진료실 모습
진료 대기 중인 장난감
장난감 병원에서 만난 고학력 박사님들

키니스장난감병원 박사들은 공학 교수, 고등학교 교장, 전자 업체 연구원 등 화려한 전직을 자랑한다. 장난감 박사들은 은퇴 후 평안한 삶을 누리는 대신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분해하고, 납땜을 하며 수리에 몰두한다. 왕년에 익힌 기술을 응용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고치는 것이다.
전자업체 연구원 출신인 하영선(73) 박사는 “요즘 장난감은 옛날과 달리 복잡하고 전기로 작동하는 것이 많아 전자 제품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곳에 오는 장난감은 전기회로가 고장 났거나 건전지가 부식된 것이 많다. 물려받거나 중고품을 구입해 내구성이 약한 것도 있지만, 아이들의 장난감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전자 제품으로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고장이 나기도 한다.
“아이들이니까 물고 빨고, 쉬하고 던지고, 물속에 푹 담그기도 하고… 애들한테는 그게 노는 거지 뭐.”
그래서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뜯어보면 엉망인 장난감이 많다.
물론 구조적 결함을 가진 장난감도 있다. 원덕희(65) 박사는 “수리 확률이 낮은 요주의 장난감이 있어요. 전자회로가 잘못 설계되었더라고요. 고장 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라고 말했다. 부천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서 2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그의 눈에 장난감 전자회로는 그야말로 장난감이다. 장난감 병원의 박사들은 전자 제품 고수들이기 때문에 고쳤을 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도 사랑한다. 수리를 마친 뒤 불빛과 음악이 나오면서 장난감이 움직이면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고쳤을 때의 성취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고치지 못했을 때는 장난감 주인 못지않게 아쉬워한다. 원 박사는 장난감 중에서도 “모빌을 고칠 때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모빌은 가장 어린 아기들의 장난감이잖아요. 없으면 아기들이 울어대고 엄마들도 힘드니까 모빌이 오면 빨리 고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김종일 이사장의 동료 교수였던 김영봉(74) 박사는 장난감이 소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애들에게 돈을 주면 좋아하나요? 돈을 모를 때는 돈이 바닥에서 뒹굴어도 상관 안 하잖아요. 그런데 장난감은 누가 가져가면 내 것이라고 울고불고 난리가 나죠. 장난감은 아이들이 ‘내 것’이라고 인식하는 첫 번째 재산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김 이사장은 “아이들은 자기 나이에 맞는 장난감을 갖고 놀 때 제일 행복하다”라며 “장난감 수리는 재활용이나 자원 순환의 의미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추억을 선물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 박사님들은 세상 살면서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행복해하는 대상이 아주 어린 아이들이라는 것, 그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것이 의미 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서 보람되다고 입을 모은다.

만들고 고치는 것이 박사들의 일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뽀로로는 장난감 병원에 자주 다녀간다.
진료비를 대신하는 감사의 쪽지
어린이들의 꿈을 수리합니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은 1년에 수천 건에 이르는 장난감 수리 의뢰를 받지만 재정이 넉넉지 않다. 무상으로 수리하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후원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재정이 좋지 않은 편이다. 한때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했지만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봉사라는 설립 취지와 맞지 않아 원래 의도 대로 비영리 민간단체로 돌아갔다.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이 부족해 사비로 충당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 희생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김 이사장은 “봉사는 본래 내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죠. 물론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줄 알았으면 시작 못했을 거예요.(웃음)”
장난감 박사들은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1년 동안 기증받은 장난감이나 수리를 마친 중고 장난감을 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것이다. 한 번에 기부하는 장난감은 수백 개에서 수 톤에 이른다. 장난감 기부계의 큰손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장난감 없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형편이 어려워 장난감을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은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보육시설과 소외계층 가정에 꾸준히 장난감을 기증하고 있다. 환경과 여건이 어려운 아이들도 동심을 잃지 않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키니스의 목표는 전국에 지사를 세워 더 많은 아이들이 장난감 수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듯 경험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하겠다는 사람이 나서면 모든 수리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고 말한다. 전국에 장난감 병원 지사나 지부 같은 게 세워져 더 많은 아이들이 장난감 수리를 빠르고 편하게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키니스장난감병원 게시판은 퇴원(!)한 장난감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로 가득하다. 장난감 병원이 있으니 마음껏 가지고 놀아도 된다는 엄마의 말에 아이들은 안심한다. 그렇다. 아프지 않아도 병원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안도한다. 아이들도 그런 마음인 것이다. 이것은 키니스장난감병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